벌써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30년이 되었다.
올초부터 동문회에서 30주년 모교방문준비위가 꾸려지고 동기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행사가 있던 주초까지만 해도 참석이 여의치 않았는데
마지막 권유에 갑자기 재경동창들과 함께 내려가기로 했다.
행사는 10월 22일이었는데 게으름 피우다가 그래도 기억할 만 일이어서 이제라도 포스팅한다
(잘 나온 사진은 동기카페에 올라 온 것이고 색감이 처지는 것은 내가 찍은 것이다)
광주일고 제56회 졸업30주년 기념 어울림한마당
일반적으로 홈커밍데이인데 한글로 쓰자고 해서 행사명칭을 그렇게 정했다고 한다.
은사님들의 등장과 함께 행사는 시작되고...
이미 고인이 되신 은사님은 사모님을 대신 모시어기도 했는데
슬프게도 아래 사진에 등장하신 장종일 선생님은 며칠 후 돌아가셨다는 부음을 들어야만 했다
대부분의 동기들 대략 70%이상이 30년 만에 본 친구들이다-고교졸업 후 한번도 못 본 친구들이 대부분.
졸업 후 바로 광주를 떠나고 그곳에 연고가 없다보니 자연히 거의 안 내려가게 되고, 이래저래 어떡하다 그렇게 되었다.
졸업할 때 우리가 30년 동안이나 못 볼거라고 누가 생각했을까?
그래도 그 긴 기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옛 기억의 속의 모습이 보자마자 바로 나온다.
이렇게 반가운 모습일 수도 있는데 우리는 세월 속에 스스로들 흘려보낸듯 하다.
3학년때 담임선생님을 모시고 반별로 테이블을 하였다.
아쉽게도 우리 담임선생님은 이미 고인이 되셔서 다른 학년때 지리를 가르치시던 분이 대신해주셨다.
지금은 은퇴하시고 반포에 사신다는데 그때는 한덩치 하신분인데 많이 여의셨다.
처음에는 몰라보았는데 자세히 보니 눈매가 당시의 모습을 알게 해준다.
끝까지 갈까말까 미적거렸는데 이제 생각해 보니 잘 간 거 같다.
지금까지 내 습관으로 보아 특별한 상황이 없는 한 아마도 30년을 또 이럴지도 모르겠고
더 늦기전에 한번쯤 얼굴이라도 봐야 될 듯도 하여 부지런을 떤 것인데,
만나보니 늘 그렇지만 남들의 살아온 인생은 다들 신기하다.
다음 날 모교 방문-대략 25년만에 모교를 밟아보는 것 같다.
모교에 대해 특별한 불만이 있거나 개인적으로 안 갈 수밖에 없는 사연이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떡하다 보니 대학때 마지막으로 모교를 가보고 이후 한번도 못갔다.
교문은 그 자리인데 문주는 바뀌었고 선동렬이 이번에 기아타이거즈 감독이 되었다는 현수막이...
아마도 우리 동기 중에 제일 알려진 애가 선동렬인것 같다.
교문 드나들며 항상 함께 했던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우린 그냥 약칭으로 학생탑이라 불렀다)
광주학생운동의 발상지였던 모교라서 교내에 기념탑이 자리잡고 전통을 이어주는 가장 큰 연결고리를 한다.
학생탑의 비문과 정신은 알게 모르게 우리 동문들의 가치관에 큰 영향를 주는 요소였을 것이다.
"우리는 피끊는 학생이다. 오직 바른 길 만이 우리의 생명이다"
천하제일 광주일고와 이 비문을 3년 동안 보고 다닌 덕에 동문들이 독재시대에 많은 고생을 했다.
몇회인가 선배들은 한 기수에서 100명 가까이나 학생운동과 민주화운동으로 감옥에 가기도 했다더라.
재미있는게 또 그 숫자만큼 그 기수에서 고시를 패스했다고 하니 전통을 잇는 방식도 다양하다
모교는 학생탑을 빼고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운동장을 중심으로 건물이 모두 반대편으로 새로 세워지고 당시의 건물은 이제 체육관 밖에 남아있지 않다.
그나마 추억을 자극하는 것은 지금도 본관에 똑같은 방식으로 새겨진 교훈.
"자랑스러운 一高人 " 다하라 忠孝! 이어라 傳統! 길러라 實力!
명령체로 되어 있는 이 교훈이 처음 볼 때에도 무척 독특하고 멋드러져 보였는데 지금도 역시 멋있다.
잠시 시간을 내어 들려 본 고등학교 때 써클실.
우리가 2학년 때 정식 출범시켜 기틀을 마련하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문예부원시림.
아직까지 해체되지 않고 전통을 이어주는 후배들이 그저 고맙다.
전면 오른 쪽에 있는 것은 합판에 스치로폴로 만든 학생탑 모형.
해년마다 보수해 가며 무등제 문학의 밤 행사때 무대소품으로 썼던 건데 지금도 쓰나보다.
새 건물로 들어와 옛 추억의 흔적은 없는데
유일하게 그 시절을 알려주는 책꽂이 위의 상판-보는 순간 감격의 신음이 새어나온다.
한문으로 쓰여진 저 고색창연한 상판이 고등학교 2학년때 처음 부실을 마련하고 걸어놓았던 건데
지금까지 남아있다-무려 30년 이상을 버틴 저 상판(아마 저게 유일한 그 때의 흔적이리라)
이번 행사를 계기로 집행부가 동기들의 소재를 대대적으로 수소문하여 동문수첩을 나누어주었는데
소재파악이 안되어 연락불가능한 숫자가 약 15%. 이미 세상을 뜬 동기도 파악된 숫자만 25명 정도였다.
앞으로 30년 후에는 몇 %나 살아있을런지. 그전에 우리는 몇 번이나 더 볼 수 있을런지...
갈수록 이런저런 문제때문에 나타나지 않는 친구들이 많아져 앞으로는 이런 대대적인 행사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아마도 세속적인 문제가 알게 모르게 작용하여 관계의 끈을 놓게 하는 듯 싶다.
잘나면 얼마나 잘나고 못나면 얼마나 못 났으랴.
세월의 흐름앞에 주눅들어가기 시작하는 이 때, 그 파릇한 시절의 빛남이 추억이 아닌 또 한번의 현실이길 바래볼 때
문득 떠오르는 동기들이 있으면 서로에게 값진 인연이고 위안이지 않겠는가.
어쩔수 없이 밀려나는 세대로 이제 슬슬 떠밀려가지만 그래도 부디 모든 세파 이겨내고 잘 들 살길...
그리고 추억 속의 인물이 아닌 현실 속에 인연을 이어가는 서로가 되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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