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바꾼 위대한 천재라는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떴다.
아직 죽기에는 이른 나이인인데 수많은 성공신화를 가진 그도 병 앞에는 어쩔수 없었나 보다.
*스티브 잡스는 디자이너인가? 엔지니어인가?
내가 아이티 전문가도 크게 관심을 가진 분야도 아니지만 스티브 잡스는 자주 들어야하는 이름이었고
호불호를 떠나 인상은 깊다.
스티브 잡스와 함께 떠오르는 단어 애플 또는 맥킨토시.
막연히 디자이너들이 쓰는 컴퓨터, 뭔가 전문적이고 앙징맞은 기계.
어쩌면 이게 애플과 맥킨토시가 나에게 주입한(의도했든 안했든) 선입관이고
그쪽 세계와 다른 IBM계열의 PC나 쓰는 나는 스티브잡스의 일련의 행위가 나와는 다른 세계로 여겨졌다
-솔직히 가끔씩 보도되는 애플의 신상품들이 세상을 놀라게 한다지만 나는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줄 잘 모른다
다만 그의 신상품이 항상 기술적인 것과 디자인의 문제로 화제에 오르는 것을 보며 가끔씩 드는 생각.
-스티브 잡스 이 사람은 디자이너인가? 엔지니어인가?
나는 아직도 그의 정체를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스티브 잡스에 관심을 가진 이유.
첫째로 그가 추구한 미니멀리즘-단순과 여백이 주는 잡스럽지 않은 제품디자인이다
그의 제품에는 참 여백이 많다. 거기에 애플 마크만 덜렁. 더구나 색들도 거의 무채색 계열.
그런데 나는 그게 마음에 들었다.
번잡하지 않고 단순화 시킨 디자인에 포인트 만을 살짝 주는 제품 외관들.
어찌보면 심심할 정도인데 그 컨셉은 애플의 모든 제품에 적용된다.
심플하고 밋밋하는 듯 하나, 제품의 성능은 막강해 매니야 층을 형성하고 있는 그의 제품들.
제품에서 무념무상의 선적인 이미지 마저 불러일으키게 하는,
기계에 그것이 가능하게 하는 그의 고집스러운 철학이 나는 마음에 들었다.
둘째는 그의 자유스러운(?) 복장이다.
검정 터틀넥 스웨터와 리바이스 청바지, 뉴밸런스 스니커즈 신발 만의 복장으로 그는 항상 나타난다.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프리젠테이션에도, 빌게이츠와의 만남에도 그는 항상 그 복장이다.
그가 간편한 복장을 하는 이유는 자신 보다는 애플과 제품이 더 관심을 받게 하려는 의도였다고도 하지만
어찌보면 지루할 정도로 색깔마저도 한번 변하지 않던 그의 스타일.
그런데 그 누구도 그의 복장에 예의 등을 따지며 딴지를 걸지 못한다.
그 중에서도 내가 제일 마음에 들어하는 노상카페에서의 장면(오른쪽이 빌게이츠이다)
이 얼마나 편안하고 자유스러운가? 아! 좋다 이렇게 대화하는 모습
스티브 잡스가 그런 복장을 왜 그토록 끝까지 고집했는지 모르지만 나는 이상하게 이 점이 마음에 든다.
일반적으로 세계적인 명사들이 화려하거나 잘 갖추어진 정장을 차려입는데 비해
그런 복장으로 세상과 당당히 프리젠테이션 할 수 있다는 거.
그래도 어색하거나 이상하게 보이지 않은 그만의 독특한 아우라는 늘 관심을 가지게 한다.
어찌보면 스티브 잡스, 그는 자신의 스타일 만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것 같다.
제품도, 디자인도, 심지어 복장 스타일까지....
단순하고 간결하지만 각광받는 디자인과 막강한 기술력을 내재한 그의 제품은
어쩌면 그의 정신이자 분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자유로운 복장과 자신만의 스타일로 세상을 살다간 스티브 잡스.
다르게 볼 줄 알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줄 알았던 사람.
비록 병으로 단명했지만 나는 그런 그가 부럽다.
*스티브 잡스의 2005년 6월 12일 미국 스탠포드대학교 졸업식의 축사
-그의 인생과 철학을 엿볼 수 있어 첨부한다
저는 오늘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대학 중 하나를 졸업하는 여러분과 함께 이 자리에 선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저는 대학을 나온 적이 없습니다. 사실대로 말씀드리자면 저로서는 이 자리가 대학 졸업에 가장 가깝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께 제 인생의 세 가지 이야기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별 것 아닙니다. 그냥 세 가지 이야기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점의 연결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리드 칼리지를 6개월 다니고는 그만뒀습니다. 바로 그만둔 것은 아닙니다. 18개월 정도 청강생으로 주변을 맴돌았습니다.
제가 왜 중퇴했을까요?
얘기하자면 제가 태어나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저의 생모는 젊은 미혼의 대학원생이었는데, 저를 입양 보내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대졸자 가정에 보내고 싶은 마음이 매우 강했던 것 같습니다. 변호사와 그의 부인이 제가 태어나면 바로 입양하려고 모든 준비를 끝냈습니다. 그런데 제가 태어나는 순간 이들이 딸을 갖고 싶다며 마음을 바꿨습니다. 그래서 대기자명단에 이름을 올려놓은 저의 부모님한테 한밤중에 전화가 갔습니다. “예상과 달리 아들이라서 그런데요, 입양하실래요?” 그들은 “물론이죠”라고 대답했습니다. 생모는 저의 어머니가 대학을 나오지 않았고 저의 아버지는 고등학교조차 졸업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그래서 막판에 입양동의서에 서명하길 거부했습니다. 생모는 수개월 후 저의 부모님이 애가 크면 대학에 보내겠다고 약속한 뒤에야 마음이 누그러졌습니다. 제 인생은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17년 후 저는 정말로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바보 같이 스탠포드만큼이나 학비가 비싼 대학을 선택했습니다. 이 바람에 근로자 신분인 저의 부모님은 저축해둔 돈을 탈탈 털어 제 학비를 대야 했습니다. 6개월 다녀보니 저는 그럴 만한 가치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나중에 무엇을 하고 살지, 대학을 나오면 그게 무슨 도움이 될지 알 수 없었습니다. 저는 부모님이 평생 모은 돈을 몽땅 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중퇴하기로 결심했고 아무 문제 가 없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상당히 불안했지만 되돌아보면 제가 내린 최고의 결정 중 하나입니다. 중퇴한 순간부터는 재미없는 필수과목을 듣지 않아도 됐고, 훨씬 더 흥미 있는 과목들을 청강하기 시작했습니다.
낭만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저한테는 잘 곳이 없었습니다. 저는 친구들의 방바닥에서 잤습니다. 먹을 것을 사기 위해 콜라병을 모아 한 병에 5센트씩 받고 팔았습니다. 그 당시 헤어 크리쉬나 템플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괜찮은 식사를 제공했는데 그걸 얻어먹으려고 일요일 밤마다 시내를 가로질러 7마일이나 걸어가곤 했습니다. 저는 그게 좋았습니다. 제가 호기심과 직관대로 하는 바람에 고생도 했지만 대부분 나중에 소중한 자산이 됐습니다.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그 당시 리드 칼리지에는 아마 국내 최고의 서체학 강좌가 개설돼 있었습니다. 캠퍼스 곳곳에 붙이는 포스터랄지 모든 서랍에 붙이는 라벨에는 손으로 예쁘게 글씨를 썼습니다. 저는 중퇴를 했기 때문에 정규 수업을 들을 필요가 없었죠. 그래서 어떻게 글씨를 쓰는지 배우려고 서체학 강의를 듣기로 했습니다. 저는 세리프가 뭔지 배웠고, 산 세리프 서체도 배웠습니다. 글자 조합에 따라 자간을 어떻게 조정하는지도 배웠고, 어떻게 해야 멋진 서체가 멋지게 나오는지도 배웠습니다. 그게 참 아름답고, 역사가 있고, 예술적으로 오묘해서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여기에 매료됐습니다.
이런 걸 배워서 나중에 실제로 활용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안했습니다. 그런데 10년 후 우리가 첫 번째 매킨토시 컴퓨터를 설계할 때 뜬금없이 그게 필요해졌습니다. 우리는 서체에 관해 배운 걸 맥 설계에 반영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맥은 서체가 아름다운 최초의 컴퓨터가 됐습니다. 제가 대학에서 그 강좌를 듣지 않았다면 맥은 다양한 서체, 적절한 폰트 간격을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윈도는 맥을 베낀 것이기 때문에 어떤 퍼스널 컴퓨터도 이런 것을 갖지 못할 뻔했습니다. 제가 중퇴하지 않았다면 서체학 강의를 듣지 않았을 테고, 퍼스널 컴퓨터는 현재와 같은 아름다운 서체를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제가 대학 다닐 때는 앞을 내다보고 점을 연결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10년 후에 뒤돌아보면 아주 매우 명확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여러분은 앞을 내다보고 점을 연결할 수는 없습니다. 나중에 회고하면서 연결할 수 있을 뿐이죠.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각각의 점이 미래에 어떻게든 연결될 거라고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뭔가를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소화기관이든 운명이든 인생이든 업보든 뭐든지 믿어야 합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버린 적이 없었고 그게 제 인생을 바꿔놓았습니다.
저의 두 번째 이야기는 사랑과 상실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운이 좋았습니다. 일찌감치 무얼 사랑해야 할지 깨달았습니다. 저는 스무 살 때 워즈(스티브 워즈니악)와 함께 부모님 차고에서 애플을 창업했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일했습니다. 두 사람이 차고에서 일하는 회사에 불과했던 애플은 10년 후 직원 4천명을 거느린 20억 달러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우리는 제가 서른 살 되기 한 해 전에 최고의 작품인 매킨토시를 내놓았습니다. 그 이듬해 저는 쫓겨났습니다. 어떻게 자기가 설립한 회사에서 쫓겨날 수 있습니까? 글쎄요. 애플이 성장하자 우리는 저와 함께 회사를 운영할 아주 재능 있다고 생각한 사람을 고용했습니다. 처음 1년 남짓은 잘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비전은 엇갈리기 시작했고 결국 우리는 추락했습니다. 이사회는 그 사람 편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이 서른에 저는 쫓겨났습니다. 아주 공개적으로 쫓겨났죠. 제가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것을 잃었습니다. 절망적이었습니다.
몇 달 동안 무엇을 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더군요. 창업가정신을 잃어버렸다고 느꼈습니다. 저한테 바통이 전해졌는데 제가 떨어뜨렸다고 생각했습니다. 데이비드 패커드와 밥 노이스를 만나 이렇게 엉망으로 망친데 대해 사과하려고 했습니다. 제가 실패했다는 것은 다 알려졌고 저는 도망칠까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 속에서 뭔가가 천천히 꿈틀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전에 하던 일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애플에서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쫓겨났지만 저는 여전히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결과적으로 애플에서 쫓겨난 게 저한테는 최상의 일이었습니다. 성공에 걸맞게 해야 한다는 중압감에서 벗어나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었고 모든 게 덜 확실했습니다. 그래서 제 인생의 가장 창의적인 시기 중 하나로 편하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 후 5년 동안 저는 넥스트라는 회사를 창업했고 픽사란 이름의 회사도 운영했습니다. 그리고 놀란 만한 여인과 사랑에 빠져 그 여인과 결혼했습니다. 픽사는 세계 최초의 극장배급용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화인 토이스토리를 만들어냈습니다. 픽사는 이제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입니다. 상황이 놀랍게 바뀌어 애플이 넥스트를 인수했고 저는 애플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넥스트에서 개발한 기술은 애플이 지금 부활하는데 중심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로린과 저는 멋진 가정을 꾸렸습니다.
이 가운데 어떤 것도 제가 애플에서 쫓겨나지 않았더라면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참으로 끔찍한 약인데 제 생각으로는 환자한테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살다 보면 벽돌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신념을 잃지 마십시오. 제가 계속 앞으로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제가 하는 일에 대한 애정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확신합니다. 여러분도 사랑할 것을 찾아야 합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일일 수도 있고 여러분 애인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일은 여러분 인생의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대단한 일이라고 믿는 것을 해야만 진정으로 만족할 수 있습니다. 대단한 일을 하는 유일한 방법은 여러분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직 그걸 발견하지 못하셨다면 계속 찾으십시오. 안주해서는 안 됩니다. 마음에 관한 일이 다 그렇듯이 그걸 발견해내면 여러분은 알게 됩니다. 그리고 좋은 관계라는 게 그렇듯이 그것은 해가 거듭할수록 점점 좋아질 것입니다. 그러니 찾아낼 때까지 계속 찾으십시오. 안주해서는 안 됩니다.
저의 세 번째 이야기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열일곱 살 때 이런 구절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는 생각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라. 그러면 언젠가는 제대로 될 것이다.” 이 말은 저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날 이래 33년 동안 저는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저 자신한테 물었습니다. “오늘이 내 생의 마지막 날이라고 해도 오늘 하려고 했던 일을 하겠느냐?” 이에 대한 대답이 여러 날 잇따라 “노(No)”일 때는 뭔가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경험으로는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내가 곧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가장 큰 도움이 됩니다. 왜냐하면 외부의 기대, 온갖 자존심, 당황하거나 실패할까 두려워하는 마음, 이런 모든 것은 죽음 앞에서 떨어져 나가고 진정으로 중요한 것만 남게 됩니다. 죽는다는 사실을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뭔가를 잃을까 두려워하는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이미 발가벗겨졌습니다. 마음이 내키는 대로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저는 1년쯤 전에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오전 7시30분에 정밀검사를 받았는데 췌장에 종양이 또렷하게 보이더군요. 저는 췌장이 뭔지도 몰랐습니다. 의사들은 치료할 수 없는 암의 일종이 거의 확실하다면서 3개월 내지 6개월밖에 못산다고 저한테 말했습니다. 의사는 집에 가서 일을 정리하라고 권유했습니다. 죽을 준비를 하라는 말을 의사들은 이런 식으로 하죠. 앞으로 10년 동안 하려고 했던 모든 것을 애들한테 수개월 안에 다 말하라는 얘기입니다. 모든 것을 정리해 가족들을 최대한 편하게 해주라는 얘기입니다. 유언을 하라는 얘기입니다.
하루 종일 진단을 받았고 그날 저녁 늦게 조직 절개를 했습니다. 의사들은 제 목으로 내시경을 넣어 위를 거쳐 장까지 밀어 넣었습니다. 주사바늘을 췌장까지 집어넣어 암에서 조직을 약간 떼에 냈습니다. 저는 진정제를 맞은 상태였는데 옆에 있던 아내가 그러더군요. 의사들이 조직을 현미경으로 살펴보더니 큰소리로 말하더랍니다. 수술로 치료할 수 있는 매우 드문 종류의 췌장암이라고. 저는 수술을 받았고 다행스럽게도 이제는 건강합니다.
이때가 제가 죽음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때입니다.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이런 일이 없기를 저는 희망합니다. 암을 이겨냈기에 저는 죽음에 대해 좀 더 확신을 갖고 여러분한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아무도 죽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천당에 가길 원하는 사람도 천당에 가기 위해 죽기를 바라진 않습니다. 죽음은 우리 모두가 맞아야 하는 종착지입니다. 어느 누구도 죽음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삶에 있어 최고의 발명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삶을 바꾸는 대리인입니다. 죽음은 낡은 것을 치워 새로운 것에 길을 열어줍니다. 지금 이 순간 새로운 것은 여러분이지만 머잖아 여러분도 낡은 것이 되고 치워질 것입니다. 이렇게 극적으로 말씀드려 미안하지만 그게 엄연한 진실입니다.
여러분한테 주어진 시간은 제한돼 있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 삶을 사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도그마(독단적인 신념이나 학설)의 함정에 빠지지 마십시오. 그건 다른 사람이 생각한 대로 사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시끄러운 의견으로 여러분 내부의 소리가 묻히지 않게 하십시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용기 있게 여러분의 마음과 직관을 따르십시오. 여러분이 진짜 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나머지 것들은 모두 부차적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지구 전체 카탈로그(Whole Earth Catalog)”라는 멋진 책이 있었습니다. 우리 세대한테는 바이블 같은 책 중 하나였죠. 이곳 멘로파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는 스티어트 브랜드란 사람이 썼습니다. 이 사람은 시적인 솜씨로 책에 생명을 불어넣었습니다. 그때가 60년대 후반이었는데, 퍼스널 컴퓨터나 데스크톱 출판이 나오기 전이라서 타자기로 치고 가위로 자르고 즉석카메라로 찍어야 했습니다. 구글이 등장하기 35년 전에 페이퍼백 형태로 구글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죠. 이상적인 책이었는데 방법과 개념 정리가 잘돼 있었습니다.
스티어트와 그의 팀은 ‘지구 전체 카탈로그’를 여러 판 찍었습니다. 작업이 다 끝났을 때 최종판을 냈습니다. 그게 1970년대 중반인데 제가 여러분 나이쯤 됐을 때였습니다. 최종판 뒤쪽 표지에는 이른 아침 시골길 사진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그 길을 걸었더라면 차가 지나갈 때 얻어 탔을 법한 그런 길입니다. 사진 밑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배고픈 상태로 남아 있으라. 어리석은 상태로 남아 있으라(Stay hungry, Stay foolish).” 이것이 그들이 남긴 마지막 메시지였습니다. 배고픈 상태로 남아 있으라. 어리석은 상태로 남아 있으라. 저는 항상 이렇게 되고 싶었습니다. 이제 졸업하고 새로 시작하는 여러분도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 배고픈 상태로 남아 있으라. 어리석은 상태로 남아 있으라. 대단히 감사합니다.
'*사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교황 프란치스코-넓이와 깊이가 다르구나 (0) | 2014.08.24 |
---|---|
한장의 글로 전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삶 (0) | 2012.06.29 |
스스로가 전태일이 되신 이소선 여사 (0) | 2011.09.09 |
꿈꾸는 카메라-자나 브리스키(Zana Briski) (0) | 2011.07.09 |
강원도지사 후보-최문순 (0) | 2011.04.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