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UM 블로그 폐쇄로 TISTORY에 이주당함 자세히보기

*영화와 잡설(雜說)

동사서독 (1994) 東邪西毒 Ashes Of Time

리매진 2011. 8. 3. 03:09

 

난 할 일이 없을 땐 백타산쪽을 바라보았다
옛날에 그곳엔 날 기다리는 여인이 있었다.
취생몽사는 그녀가 내게 던진 농담이었다
'잊으려고 노력할수록 더욱 선명하게 기억난다'
그녀는 전에 늘 말했었다  '가질 수 없더라도 잊지는 말자'고...

 

난 매일 같은 꿈을 꾸었고 얼마 안 가서 그 곳을 떠났다 

 

 

 

동사서독을 리덕스판으로 다시 봤다.
15년 전인가에 처음에 접했을때 그냥 나를 멍하게 만들었던 영화.
볼 때마다 감탄했던 영화-역시 이번에도 보고나서 멍했던 영화.
이 영화는 무협영화일까?  멜로영화일까?

 

왕가위 감독의 스타일리시한 연출력과 영상미가 그대로 응축된 동사서독.
모든게 절제되어 있는듯 하면서도 장면장면 하나하나가 다 꽉 짜여진 구성으로

하나의 빈틈도 없이 다 채워진 듯한 영화
인간의 오욕칠정을 이렇게 냉소적으로, 그러나 가슴 저리게 전달할 수 있을까?

 

 

동사서독에 나오는 이들은 모두가 상처받은, 깊숙한 한으로 번뇌하고 아파하는 이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그 상처를 가슴 깊숙히 담아두고

새어나오는 신음소리를 간신히 참아가며 세상을 산다.
그러나 그 꾸욱 꾹 눌러 놓은 감정 사이사이에 삐집고 나오는 단말마적인 흐느낌을
영화에서는 냉정할 정도로 무시해 버리며 바람처럼 만들어 버린다.
그래서 더 아프고 안타까운....

실타래처럼 얽히고 얽힌 인연과 번민, 애정이 모두 남의 이야기처럼 담백하게 지나가려 하지만
그속에는 용광로보다 더 뜨거운 연민과 애간장의 울음이 뚝뚝 떨어진다
단지 보이지 않을 뿐....

 

대사도, 누군가의 독백이나 방백처럼 나오는 나레이션도 기막힌 영화.
선문답처럼 또는 무심코 내뱉는 말들은 바로 시가 된다.

(특히 후반부 장만옥이가 무념무상의 표정으로 남 이야기처럼 말하는 장면은 압권이다) 

 

 

 

신기하게도 이 영화에서는 그 다이알로그나 멘트에 대한 장면이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아도
순간적으로 영화속의 영화처럼 그 대사에 대한 장면이 있었던 것처럼 전해온다.
별거 아닌 신파적인 대사도 이 영화에서는 무겁고 절절하게 다가오고....
이게 동사서독의 영화가 주는 힘일 것이다.

 

 

 

 *영화속 대사 중에서 발췌(영화를 직접 봐야 실감이 더 나겠지만 그래도 잉여짓꺼릴 한번 해보았다)

 

움직이는 것은 깃발도 바람도 아니요. 그대의 마음이다

 

술을 한 병 주었는데 술 이름이 취생몽사(醉生夢死)야. 마시면 지난 일을 모두 잊는다고 하더군
난 그런 술이 있다는 게 믿어지질 않았어
인간이 번뇌가 많은 까닭은 기억력 때문이라고 하더군
잊을 수만 있다면 매일 매일이 새로울 거라 했어. 그렇다면 얼마나 좋겠어?

효과가 있었던 걸까? 그날 이후로 황약사는 많은 일을 잊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기억나?  / 기억 안나.
여기에 어떻게 왔는지는? / 모르겠어.
왜 자꾸 새장을 쳐다봐? / 무척 낯이 익어.
그날 그는 잔뜩 취했고 다음날 아침 일찍 떠났다

 

내가 죽기전에는 벗어날 수가 없을 것이오. 사랑을 못이루는 고통을 느끼게 할거여요
남자는 연인이 죽어가는 것을 볼 때 가장 고통스럽다.


어떤 사람들은 떠난 뒤에야 사랑했었다는 걸 깨닫게 되죠

당신의 그 한마디 때문에 전 지금까지 기다렸어요

 

당신이 그 여자를 사랑한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었어요
당신이 정말 날 사랑하는지 수없이 자문해 봤었지만 이젠 알고 싶지도 않아요
제가 못 견디고 물어 보면 거짓말이라도 해주세요. '당신은 내 사랑이 아니야' 라는 말만은 하지 마세요

 

그후에 매일밤 복사꽃이 핀 고향꿈을 꾸었다
그때서야 백타산에 오랫동안 안 가보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를 보면 누군가가 생각나. / 그렇게 그리워하면서 왜 떠도는가?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자제할 수가 없었다
내 얼굴에 묻은 그녀의 눈물이 마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 여자가 날 위해 울어 줄까?

 

검이 빠르면 피가 솟을 때 바람소리처럼 듣기 좋다던데 내 피로 그 소리를 듣게 될 줄이야

시간낭비라고 할지라도 누구에게나 집착하는게 있다
옛날에 검이 빨랐던 건 옳다고 믿고 했기 때문이다

 

누구나 산을 보면 그 너머엔 뭐가 있나 궁금해 한다
막상 산 너머에 가보면 별것 없다는 걸 알게 되고 차라리 여기가 낫다고 여긴다
하지만 그는 안 믿을 것이다. 그는 직접 보기 전에는 포기하지 않는 성격이다.

 

복사꽃을 본 지 오래돼서 다음 해에 그의 고향에 갔다. 하지만 그곳엔 복사꽃이 없었다

그건 이제 소용없어요 / 복사꽃은 처음부터 없었다는 걸 떠날 때야 깨달았다

 

날 사랑한다고 말을 안했어요 / 굳이 말이 필요 없을 때도 있소
난 그 말을 듣고 싶었는데 그는 자존심 때문에 말을 안했어요.
왜, 잃고 나서야 얻으려고 하죠?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사랑에 승부가 있다고 해도 그녀가 이겼다고는 생각 안한다.
하지만 난 처음부터 졌다

 

 

 

당신 아들 아니오?  / 옛날엔 그렇게 생각했죠.
하지만 아이가 크면 언젠간 떠나 버리겠죠? 그래서 모든게 허망해요.
전엔 사랑이란 말을 중시해서 말로 해야만 영원한 줄 알았죠.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하든 안하든 차이가 없어요. 사랑 역시 변하니까요

난 이겼다고 생각해 왔어요. 그러던 어느 날 거울을 보고 졌다는 걸 깨달았어요

내가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없었죠.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어요.

 

난 이틀 동안 문 앞에 앉아서 하늘이 변하는 걸 보고서야
이곳에 오랫동안 있었으면서도 사막도 제대로 못 본 걸 알았다.

거절당하기 싫으면 먼저 거절하는 게 최선이다. 그래서 돌아가지 않았다
그 곳이 좋긴 하지만 이젠 돌아갈 수가 없다

 

난 할 일이 없을 땐 백타산쪽을 바라보았다. 옛날에 그곳엔 날 기다리는 여인이 있었다
취생몽사는 그녀가 내게 던진 농담이었다. '잊으려고 노력할수록 더욱 선명하게 기억난다'
그녀는 전에 늘 말했었다 '가질 수 없더라도 잊지는 말자'고


난 매일 같은 꿈을 꾸었고 얼마 안 가서 그 곳을 떠났다

 

 -------------------------------------------------------------------------------------------------------

 

[Soundtrack] Ashes of time (1994) - Track 01 - Prelude - A lonely heart

 

 

 

보고나서는 저절로 담배을 물게 하는 영화.

그리고 저 먼 곳을 한번 쳐다보며 한동안 멍하니 있게 하는 영화.
복사꽃 피는 백타산을 그들은 죽어서라도 볼 수 있을까?
그 아래에서 이승에서 못다한 인연을 다시 이을수 있을까?


인간의 감정을 대단한 영상미와 유려한 구성으로 명작이 된 동사서독.

가질수 없었지만 잊지도 못한 상처받은 영혼들의 애증과 번뇌

-그 끝에서 들리는 신음이 내 것인듯 들려온다 

 

 

 

--------------------------------<DAUM의 영화정보>-----------------------------------

 

액션, 무협 | 홍콩, 대만, 중국 | 100 분 | 개봉 1995-11-18 |
감독; 왕가위
출연; 장국영(서독 구약봉 역), 양가휘(동사 황약사 역), 임청하(모용연/모용언 역), 양조위(맹무살수 역),
        장학우(홍칠 역), 유가령(도화역), 양채니(달갈소녀역). 장만옥(구양봉의 형수역)

 

백타산의 원주민인 구양봉(장국영 분)은 일찍 부모를 여의고 형이 그를 키웠다.
구양봉의 꿈은 유명한 검객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무술연마를 위해 고향을 떠날 것인가,
아니면 사랑하는 여인(장만옥 분)과 고향에 남을 것인가의 선택의 기로에서 그는 사랑하는 여인 대신 무사로서의 길을 택한다.
결국 그녀는 그의 형과 결혼한다. 10년 후, 냉소적이고 돈만 알게 된 구양봉은 사막으로 가서 그곳에 여관을 개업한다.


구양봉은 황약사(양가휘 분)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역시 사랑에 관한 슬픈 상처를 가지고 있다.
그는 한때 가장 친했던 친구의 부인과 불륜의 관계를 맺고 도화림을 떠나게 된다.
매년 복사꽃이 피는 시절이면 구양봉에게 찾아와 같이 술을 마시고는 백타산으로 구양봉이 사랑했던 여인을 방문하러 떠난다.
10살난 아들을 가진 그녀는 아직도 구양봉을 사랑하고 그를 잊지 못하고 있다.
일년전 황약사는 고소성 밖에서 자칭 모룡연(임청하 분)이라는 남자와 친구가 된다.
그의 여동생과 결혼할 것을 언약한다. 그녀와 만날 약속을 했지만 황은 떠나가 버린다.
모룡연은 황약사가 약속을 어긴 것에 분노하며 구양봉을 찾아와 동생을 대신해 복수를 하고 싶다며 황약사를 죽여달라고 한다.
그가 떠난 뒤 그의 여동생인 모룡연이 나타나 그녀의 오빠를 죽여주면 오빠가 제시한 돈의 2배를 주겠다고 한다.
구양봉은 모룡연이 여동생을 사랑한다는 것을 느끼지만 대화를 지속하는 동안

모룡연과 모룡언이 내면에 두개의 인격체를 지닌 동일인임을 확인하게 된다.

어떤 젊은 처녀(양채니 분)가 구양봉을 찾아와 그의 동생의 복수를 간청한다.
그러나 그녀가 가진 것은 달걀 한 바구니와 당나귀 한마리 뿐이었다.
구양봉은 그녀의 청을 거절하지만 그녀는 도와줄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고집한다.
도화림에서 온 시력을 점점 잃어가는 영락한 검객이 어느날 구양봉을 찾아와 살인청부일을 하겠다고 자청한다.
그는 눈이 완전히 멀기 전에 복사꽃이 피는 것을 보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갈 돈이 필요했다.
그는 아내(유가령 분)가 절친한 친구와 부정을 저지르자 집을 떠나는데 그 친구는 다름아닌 황약사였다.
가진 것 없는 검객 홍찰(장학우 분)은 구양봉의 눈에 띄어 그의 휘하에 들어가 이제는 유능한 청부검객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구양봉의 뜻을 어기고 돈도 없는 어린 소녀의 복수를 대신해준다. 그가 받은 대가는 오직 달걀 한 개뿐이었다.
마적단과의 싸움에서 손가락 하나를 잃은 그는 그를 찾아온 아내와 함께 떠난다.


이렇게 가슴에 나름의 상처를 지닌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며 세월은 흘러가고

마침내 구양봉은 형수(옛 애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는 자신의 여관에 불을 지르고 떠나간다.

 

*1994 東邪西毒-電影原聲帶 (Ashes of Time 1994 Version OST) / 전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