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시간 2시간 30분. 다큐인데 극영화깉다는 영화.
누가 괜찮다는 말을 해 구했는데 이거 따악 보니 중간에 포기할 것 같은 분위기이다.
언뜻 보니 그 장면이 그 장면인 것 같아서 보다가 그만둘 수도 있겠다 했다.
실제로 재미있는 영화는 아니었다.
그런데 과연 내가 스킵하지 않고 끝까지 볼 수가 있을까 했는데 단 한번의 스킵도 없이 끝까지 봤다.
영화는 중국 윈난성 어느 산간 3200m 고원지대에 사는 한 소녀의 이야기.
잉잉. 10살 여자애. 그 소녀는 그 긴 영화에서 따악 2번 웃고 2번 역정을 낸다.
그외에 잉잉은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고 아무런 감정의 기복도 나타내지 않는다.
그냥 잉잉은 어린 나이에 버거운 가사와 노동을 한번의 앙탈도 없이 그저 반복적으로 해내고
모든 것을 혼자 인내하며(영화에서는 인내마저 인내처럼 표현하지 않는다) 운명처럼 행동한다.
질척한 땅, 늘 안개가 끼어 있는 마을, 바람마저 매서운듯 고원지역.
그곳에서 10살 소녀 잉잉은 가장 부지런 하고 뭐든지 열심이며 쉴 틈이 없다.
그리고 카메라는 거의 대부분을 잉잉에게 할애한다.
그런데 묘한 서사가 있다.
잉잉이 이 영화에서 주인공으로 모든 일의 중심에 있는데 묘하게도 항상 배제된다는 것이다.
주인공인데도 장면에서 존재감이 없는 묘한 상황들.
-프레임상의 문제가 아니라 정서(?)상 항상 잉잉은 낙오된다.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다-이 영화가 주는 시사점은 어쩌면 이러한 상황인지도 모르겠다.
영화내내 한번도 울지 않았던 잉잉.
아니 울려고도 한 번 하지 않은 10살 소녀의 무덤덤한 일상의 연속.
아동문제나 미성년 노동 등의 불평등한 구조적 문제로 분노하거나 안타까워하고도 싶은데
그것마저 용납하지 않은 무덤덤한 전개.
어쩌면 그것마저 사치인 것처럼 만들어 버리는 10살소녀 잉잉의 일상.
그 일상을 카메라는 아무런 감정도, 아무런 연출도 없이 같이 따라다니기만 한다.
꾀죄죄한 옷과 오래 앓은 기침소리를 달고 다니며 아무말 없이 묵묵히 움직이는
10살 소녀의 그 아우라는 내게 아무말도 하지 못하게 했다.
불쌍하다느니, 답답하다느니 그런 말 마저 함부러 내뱉지 못하게 한 묘한 영화.
고산의 아름다운 풍광 한 장면 정도는 나올듯 한데 그런 장면 하나도 없이
척박한 땅의 척박한 삶을 감정이 아닌 사실적 묘사로만 일관하여 그대로 끝내버린 영화.
뭔가 있는듯 하기도 한데 한번도 그 메시지를 억지로 연출하지 않는,
과정만이 있는듯한 묘한 영화다.
보는 내내 그녀가 누군가의 품에서 한번 만이라도 실컷 울었으면 했다.
(영화에서는 단 한번도 우는 것은 물론 울먹이려고 하는 장면도 없다)
어쩌면 잉잉은 자기 감정을 표출하는 것 마저 사치로 여기는 건지도 모르겠다.
우는 것도 웃는 것도, 싫다고 하는 것도 좋다고 하는 것도 없는 한 소녀의 일상.
누가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10살 소녀 잉잉은 누가 안아줄까?
새옷을 입고 맑은 하늘아래 한 번 만이라도 웃는 날이 그녀에게도 왔음 빌어본다.
================================영화소개 : 출처-다음 영화정보====================================
세자매 (2012) 三姊妹 Three Sisters
다큐멘터리 | 프랑스, 홍콩, 중국 | 153 분 |
감독 : 왕빙
중국의 한 산골 마을, 세 자매의 일상이 시작한다.
낡은 집에서 부모 없이 살아가는 어린 소녀들은 가까운 친척 집에서 끼니를 때우며 노동으로 날을 보낸다.
기다리던 아버지가 돌아오지만 형편이 더 나아지지는 않는다.
소녀들의 지루하고 힘겨운 일상은 마치 한편의 극영화처럼 전개된다.
나이 어린 소녀들이 등장하지만 귀엽고 순박한 모습을 기대할 수 없다.
소녀들의 일상은 끼니를 해결하고, 다른 곳으로 보내지지 않기 위한 노동으로 채워진다.
소녀들을 돌보는 친척들이 털어놓는 가난한 생활의 고단함과 가난으로 인해 해체되어가는 가족의 모습이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왕빙 감독은 중국을 대표하는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들은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중간 지점에서 매우 사실적이면서도 극적인 드라마를 전한다.
<세자매> 역시 예외가 아니다. 소녀들의 반복적인 일상과 그녀들을 둘러싼 가난한 마을의 이야기는
그들을 가깝게 쫓아다니는 카메라 속에 다큐멘터리의 진솔함으로 절절한 드라마를 담아낸다.
(2012년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조영정)
=========================씨네21 우혜경 씨의 추천글========================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71209
많은 사람들이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경계에 대해서 고민하고 그 경계 속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내기 위해 애를 쓰지만, 중국의 고산 지대 산골 마을에 살고 있는 어린 세 자매의 이야기를 담은 왕빙의 다큐멘터리 <세 자매>를 보고 있으면 놀랍게도 그런 노력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를 문득 깨닫게 된다. 왕빙의 영화를 놓고 이러한 지적은 계속되어 왔지만, 그들이 놓치고 있는 핵심은 이 영화 역시 그의 이전 다큐멘터리와 마찬가지로 사실은 지극히 ‘다큐멘터리적’ 이라는 사실이다.
늘 그렇듯 그는 <세 자매>에서도 극영화와 ‘닮기’ 위한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는다. 그저 반복되는 세 자매의 일상이 때로는 그들의 뒤에서 혹은 그들이 머무는 공간 안에서 아무런 기교 없이 담긴다. 여기에는 아이들을 연출시킨 흔적도, 만들어낸 사건도 없다. 낡은 신발 사이로 상처투성이가 된 아이들의 작은 발이나 잔치에 차려진 음식 앞에서 눈치를 보느라 선뜻 자리에 앉지 못하는 배고픈 소녀의 모습을 ‘극적’으로 담을 생각도 없다. 그렇다고 편집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지도 않는다. 하지만 돈을 벌러 떠난 아버지를 따라나선 소녀들의 들뜬 새 옷이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더럽혀져 고향에 다시 돌아왔을 때, 그 옷에서 고스란히 묻어나는 시간의 진정성은 어떠한 극영화의 장치로도 설명할 수 없다. 그리고 왕빙은 그런 순간들에 주목한다.
어쩌면 왕빙은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경계가 아니라 오히려 다큐멘터리의 극단에 서서 다큐멘터리만이 담아낼 수 있는 ‘시간’에 대해 고민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는 극영화에서 죽은 시간이라고 불리는 ‘데드 타임(dead time)’이 오히려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큰 힘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말 그대로 다큐멘터리만이 가능한 삶의 시간으로서의 ‘라이브 타임(live time)’.
변해가는 도시의 모습을 담은 <철서구>(551분)나 고비 사막에서 고된 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담은 <원유>(840분), 중국역사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은 할머니의 이야기를 담은 <중국여인의 연대기>(184분), 그리고 이 영화 <세 자매>까지 긴 시간을 버티며 대상을 바라볼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시간의 진심은 왕빙의 다큐멘터리가 개척한 새로운 미학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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