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이전의 한국영화를 본다는 것은 큰 인내를 가져야 한다.
특별히 공부나 업무적으로가 아니라면 아마도 처음부터 끝까지 정속으로 보기에는
다들 무리가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러한 사람 중의 한 명인데 그래도 끝까지 정속도로 보는 그때의 영화가 있다.
삼포가는길 The Road to Sampo (1975)
70년대 중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보면 항상 빠져든다.
겨울이면 늘 생각나는 영화.
영화는 빈약(?)하다.
구질구질한 풍경들, 구질구질한 사람들. 배경이 되는 산천마저도 구질구질하다.
영화는 시종일관 빈티나는 배경에 빈티나는 사람이 꾸역꾸역 움직인다.
어쩌면 아름다운 설경일 수 도 있는 설원의 장면들도 허허롭기만 하고 을씨년스럽다.
슬픈 노스탤지어, 지난 시절의 아픈 표상같은 영화. 삼포가는 길.
영화를 보면 그 배경의 끝자락을 살아왔던 스스로의,
이제는 거의 잊혀져간 그 옛날의 풍경이 희미하게 떠오르게 한다.
거리도, 산천도, 풍습도, 지지리 궁상맞았지만 한 때 우리의 모습이었던 영화속 장면들.
그 풍경들위에 세사람의 아픈 사연들은 그 겨울보다 더 춥게 다가온다.
어느 어린 날, 찬바람 부는 한겨울 눈내리는 날에 시린 몸 겨우 녹일 때,
문득 웃풍부는 방문을 열면
어쩌면 영화처럼 삼포로 가는 그 세사람을 우리는 보고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그 당시에....
그래, 그 설원을 따라 삼포로 가는 세사람은 우리의 아버지였고, 어머니였고,
우리 옆집의 아저씨, 아주머니였는지도 몰라.
을씨년스러운 6,70년대 겨울벌판을 헤치고 봄날을 기다리던 우리 모두의 빈궁한 초상들.
그래서 더 사실감이 큰 영화,
그들이 가고자 했던 삼포에 우리는 얼마나 다가갔을까?
삼포는 따뜻했을까?
척박하고 추운 겨울설원을 그들 따라 헤매이며
올해도 나는 삼포로 가는 그들의 길에 동행했다.
이 겨울 가장 추운 날에....
=====================<다음 무비 영화정보>================
삼포가는 길 (1975)A Road to Sampo
드라마 한국 1975.05.23 개봉 95분, 청소년관람불가
(감독) 이만희 (원작) 황석영 (주연) 김진규, 백일섭, 문숙
막노동으로 하루를 사는 영달은 겨울 벌판에서 공사장을 전전하는 출옥수 정씨를 만나
그가 10년 만에 찾아가는 고향 삼포에 동행한다.
둘은 산길을 걷다가 도망쳐 나온 술집 작부 백화를 만나 고향이 없는 백화를 삼포에 데려가 주기로 한다.
가진 것도 고향도 없지만 그래서 순박할 수 밖에 없는 세 사람의 여정은 설원 위로 계속되고
마침내 목적지인 강천역에 도착한다.
그러나 정씨가 얘기한 것과는 달리 삼포는 현대화의 바람을 타고 한참 개발 중이다.
그들은 마음의 고향 삼포를 잃고 백화는 영달이 남은 돈을 털어 사준 차표를 가지고 떠나 버린다.
'*영화와 잡설(雜說)'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여름에 다시 본 겨울여자(1977년작) (0) | 2020.06.23 |
---|---|
Ce que le jour doit à la nuit(What the Day Owes the Night) (0) | 2019.06.05 |
세자매 (2012) 三姊妹 Three Sisters (0) | 2015.01.30 |
토끼 울타리 (2002) Rabbit-Proof Fence (0) | 2012.04.28 |
동사서독 (1994) 東邪西毒 Ashes Of Time (0) | 2011.08.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