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편 : 영롱한 응원봉이 만든 빛의 파도-
어둠이 깊을수록 빛은 더 밝고,
바람이 세찰수록 깃발은 더 펄럭인다.
혼란하고 답답한 시국에 나타난 빛의 향연.
황당한 계엄으로 인한 퇴행의 역사가 이 겨울에 시작되었다.
거기에 맞선 시위에는 젊은 세대의 대거 유입으로
단숨에 집회분위기를 바꾸어버렸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다채로운 응원봉의 물결과
광장을 압도하는 깃발의 휘날림.
이번 겨울에 본 그 풍경은 황홀하기까지 했다.
내가 알기로는 그동안 시위현장에 응원봉이 나온 적은 없었다.
그런데 12월 3일. 비상계엄선포 후,
12월 4일부터 집회가 매일 여의도에서 있었는데
이쪽저쪽 커뮤니티와 뉴스에서 응원봉이 나타났다는 소식이 돌았고,
이게 화제가 되기 시작하였다.
이번에 이 포스팅을 하기 위해 복기해 보니 순식간이었다.
당시의 집회 라이브를 돌려보니 12월 5일까지만 해도
전에 처럼 진짜 촛불과 핸드폰 플래시, LED 촛불이 주를 이루었고,
약간의 응원봉과 아크릴에 구호를 새긴 LED가 보였다.
본격적으로 응원봉이 보인 것은 12월 6일부터이고,
기존의 촛불과 혼재하였으나 워낙 강력하여 현장을 압도하였다.
12월 7일. 1차 탄핵소추안이 부결되던 날에는
마침내 응원봉이 대세가 되었고,
이후 탄핵집회에서 컵에 끼운 진짜 촛불은 완전히 사라졌다.
4일 만에 이루어진, 참으로 놀랍고 빠른 속도의 변화였다.
제일 먼저 응원봉을 들고 시위를 간 사람들은 누구일까?
급박한 상황에 초는 없고, 뭐라도 들고 나가고 싶은데
'특별한게 없으니까 이거라도 가지고 가야겠다' 했지 않나 싶다.
뭐라도 빛나는 것이면 되지않나 생각했을 거고,
순간적으로 눈에 뛴게 응원봉이었지 않나 싶다.
그리고 이것은 젊은 세대가 전격적으로 결합하여 가능한 일이었다.
나를 비롯하여 중장년들에게 응원봉이 있었겠는가?
![]() |
![]() |
![]() |
![]() |
응원봉 세대의 대대적인 참여로 이후 시위문화는 많이 바뀌었다.
처음에 어리둥절하던 주최측에서는 바로 집회 분위기를 전환시켰다.
신구가 조화되고, 누구나 함께할 수 있는 집회를 위한
모두의 약속을 제정하여 평등하고 민주적인 집회문화를 이어갔다.
(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집회수칙 내용은 맨 아래에)
시민자유발언과 문화공연 위주의,
형식은 가벼우나 결의는 강고한 집회.
축제처럼 시위는 진행되었고, 젊은 세대는 오픈마이크로 달려갔다.
그런데 이 어린 친구들이 생각 외로 더 열정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다.
지칠 줄을 모른다. 끈질기고 거침이 없다.
즐기며 분노하고, 연대의식도 강했다.
발랄하고 해맑은데 신박하고 야무지다.
엉성한듯 한데 재치있고, 한 번 휘몰아치면 끝장을 보고 만다.
![]() |
![]() |
![]() |
![]() |
내가 이런 세대들하고 얼마나 대화를 해보았겠나?
마냥 어린 애들인줄 알았는데 의외로 생각들이 깊다.
언뜻 보면 노래부르며 방방뛰니 정신없는 것 같지만
나름대로 시위준비를 체계적으로 하여 참가하고 있었다.
친구들끼리 "우리가 왜 시위하는 법을 알아야 하느냐고?"
"우리가 깃발 만드는 법을 왜 알아야 하는데.." 라며 푸념하기도 하지만,
만반의 준비를 하여 적극적으로 시위를 하고 있었다.
그들의 자유발언들을 들어보니, 그들도 알것은 다 알고 있었다.
그렇다. 그들은 나름대로 생활속에서 지성을 쌓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 |
![]() |
젊은 세대는 민중가요를 흥얼거리기 시작하고,
기성세대는 K-Pop를 배우느라 애먹는
세대를 뛰어넘어 공감과 공유가 이루어지는 광장.
생각지도 않은 세대통합이 얼떨결에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 비극의 시대에 광장은 역설적으로 이렇게 진화하고 있었다.
*평등하고 민주적인 집회를 위한 모두의 약속
1. 서로가 서로의 광장이고 민주주의입니다.
우리가 지키고 만들어갈 민주주의는
지금 바로 이 곳에서 시작합니다.
2. 민주주의는 성별, 성적지향, 장애, 연령, 국적 등
서로 다른 사람이 배제되지 않고
안전하고 평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곳에서 가능합니다.
3. 집회 발언 시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청소년, 이주민 등
사회적 소수자를 차별하거나 배제하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예: 여성에게 ‘마음도 얼굴만큼 예쁘다’, 청소년에게 ‘기특하다’,
장애를 빗대어 ‘눈 먼 장님과 같다’, ‘정신적 불구 상태’ 등)
4. 특정 대상에 대한 욕설이나 차별, 혐오,
외모 평가 발언 없이도 싸울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우리에겐 싸울 힘이 충분히 있습니다.
'*일상과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번 겨울에 이런 풍경도 있었다5-vlog (1) | 2025.03.05 |
---|---|
이번 겨울에 이런 풍경도 있었다4-깃발군무 (0) | 2025.03.04 |
이번 겨울에 이런 풍경도 있었다2-한남대로 키세스군단 (0) | 2025.02.17 |
이번 겨울에 이런 풍경도 있었다1-남태령의 밤 (1) | 2025.02.12 |
인생,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고 싶었는데.... (0) | 2024.1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