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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엘리트 장애인에서 나쁜 장애인이 되다-변재원

리매진 2023. 11. 6. 21:41

지체장애인, 인권활동가, 소수자 정책 연구자.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예술경영을,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을 공부했다.

어학점수, 인턴, 취업 준비에 매진하며  대한민국의 평범한 청년으로 살아왔으나

학위 논문을 쓰다가 운명처럼 장애운동을 만나버렸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국장을 맡아 처음에는 얼떨떨했지만

거침없고 멋진 동료들을 많이 만나 연대와 투쟁의 가치를 알게 되었다.

장애인의 존엄과 평등을 보장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오늘도 고민하고 있다.

 

 

어느 날 유튜브에 추천영상으로 떠 슬쩍 보다가

스킵하며 볼 내용이 아닌것 같아 자세 가다듬고 정주행한 영상.

질 줄 알지만 아직도 싸우는 사람들.

강단있고 조리있는 그의 말들에 공감이 들어 내용을 텍스트로 옮겨봤다.

11분 정도의 짧은 영상이니 그냥 링크된 영상을 보는게 더 낫다.

 

 

Q : 이력이 되게 특이하시잖아요

      한예종에서 그다음에 구글 코리아 인턴도 하셨고,

      원래 소위 '착한 장애인' 시절

      성공해야 된다 이런게 좀 있으셨다고?

 

장애를 갖고 산다는 건요

이 사회가 커다란 서바이벌 게임,

뭐 오징어 게임 같은 거라고 생각을 한다면

저는 그 안에서 최약체인 거예요.

그래서 저한테 어떤 손에 무기랄까요

뭔가 대단한게 쥐어지지 않으면

저는 다음 게임에서 탈락할게 분명한 사람인 거죠.

내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한국사회에서 생각을 해보면 제일 쉬운 건

더 좋은 학력을 갖는 거, 더 좋은 직업을 갖는 거

그게 제 삶에 되게 큰 생존의 전략이었던 것 같아요.

이런 것들이 내 삶에 되게 강력한 무기다.

이런 거 쥐면 아무도 날 무시 못해

이런 생각의 기저에는 결국 그런게 있지 않았나 싶어요.

타인보다 나아야만 내가 살아남는다.

 

      *일상이 된 '문제제기'

 

한예종에 입학했을 때 제일 먼저 실랑이 했던 거는

공공기관 에너지 절약 정책이라고 해서

엘리베이터가 있으면 1층과 4층에 섰어요.

그래서 2층은 걸어가라. 3층은 4층에서 내려서 걸어가라.

그런데 문제는 장애학생은 그렇게 할 수가 없잖아요.

 

이제는 너무 잘 해주셨는데, 잘 해줬는가 아닌가와 별개로

저는 계속 문제 제기를 해야 되는 거예요.

구글도 마찬가지죠. 구글 코리아도 이제

그 안에서 '헤비도어 이슈'라고 했는데 문이 무거워요.

그게 보안상의 이유로 문이 좀 무거운 것도 있고,

화재시에 그 예방을 위해서 문의 무거운 것도 있는데...

그 문이 무거운데 제가 문을 열 수가 없으니까

출근을 했는데 사무실을 못 들어가는 상황이 나타나는 거예요.

이 무거운 문을 어떻게 해결해야 될 것인가를 가지고도

한바탕 회사측이랑 얘기가 있었죠.

제가 그때 느꼈던 지점은 뭐냐 하면 해결이 됐냐, 안 됐냐라기 보다

나는 어딘가를 출입하는 것만으로도 문제 제기를 해야 되는구나.

 

         *엘리트 장애인에서 나쁜 장애인이 되다

 

'착한 장애인은 개인의 삶을 바꾸지만

나쁜 장애인은 제도를 바꾼다'라는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돌이켜 보면 저는 착한 장애인 시절이 돈도 더 많이 벌고

경찰서에서 전화도 안 오고 막 그랬던 거 같아요.

이렇게 딱 뒤를 돌아서 봤더니 바뀐 게 없는 거예요.

바뀐 게 없다는게 무슨 말이냐면, 저는 바뀌었어요.

저는 되게 좋아지고 사람이 가속도가 붙는달까요.

좋은 학교에 들어가니까 좋은 직장에 가는게 조금 더 쉬워지고,

아마 좋은 직장에 있다보면 또 더 많은 돈을 버는게 조금 더 쉬워지고,

이런 가속도가 붙는 게 있거든요.

 

그런데 이건 어디까지나 제 얘기에요.

다른 장애인에 대한 얘기는 아니에요.

이렇게 해서 개인의 삶을 아무리 바꿔도

딱 뒤돌아보면 사회는 그대로예요.

적막의 흐르고, 차별받는 사람은 계속 차별받고

'이렇게 사는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 때

그리고 반신반의 하는 마음으로

'저 사람들 진짜 빨갱이 아니야' 하면서

그 박경석(전장연 대표)이나 다른 사람들을 지켜봤을 때

그 사람들은 삶이 좀 구차하거든요.

막 구치소도 갔다 오고, 어디서 호소도 하고,

그런데 딱 뒤를 돌아보면 그 사람들이 바꾼 사회가 정확히 보여요.

'? 한국사회에 진짜 엘리베이터가 생겼네'

'한국사회에 저상버스가 서울 기준으로 10대 중 5대까지는 생겼네'

'? 한국사회에 진짜 특수학교가 생기고'

'그 다음에 이제 특수반이 좀 더 보급되기 시작했네'

'한국사회 장애인 주치의 사업이라는 얘기가 시작되네'

다 보여요. 그때 제가 느꼈던 건

, 이 사람들 되게 나쁜 장애인 같은데

이 사람들은 제도를 바꾸고 있구나.

개인의 삶이 윤택해지진 않았지만 제도를 바꾸고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럼 나는 착한 장애인으로 살까 나쁜 장애인으로 살까

그 고민을 많이 했는데, 전 늘 거기서 갈팡질팡 하거든요.

지금도 그래요.

그래도 제가 그때 다짐했던 건

'그럼 제도를 바꾸는 사람이 되자'

그게 무슨 거창한 직업을 이야기하는게 아니라

'적어도 나만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은 그만 하자'

그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전장연 출근길 시위

 

Q : 왜 불법적인 방법으로 싸우냐 이런 질문이 있어요?

     이 질문에 대해서 어떻게 답변하시겠어요.

 

제가 늘 드리는 이야기인데, 역설인데요.

장애인들이 지하철을 타려고 하는 순간부터

이동권에 대한 논의가 시작돼요.

더 정확히 말씀드릴게요.

장애인들이 출근길에 지하철을 타려고 해서

비장애인 시민들이 피해를 호소하거나 답답함을 느끼는 순간부터

이동권 정책에 대한 법과 예산이 얘기되기 시작해요.

이게 정말 딜레마 같은 상황인 거예요.

뭐냐면 장애인들끼리 백날 국회의원 사무실에 가고,

대통령실 앞에 가서 "장애인 이동권은 중요합니다"

"교통약자, 지하철 엘리베이터 저상버스 설치해 주세요"

백날 이야기 해도요. 그래도 이게 안 움직여요.

세상이 안 움직여요.

그런데 비장애인 승객분들이

"이거 진짜 이거 언제까지 우리 이러고 살아야 되냐"

"이거 빨리 국가가 나서서 해결을 하든지 뭘 해라"

라고 이야기하는 순간부터 국가가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장애인의 움직임이 '모든 약자' 들의 혜택으로

 

서울역에 가서 KTX 가면은 1번부터 1718번까지 플랫폼이 쭉 있거든요.

가만히 가서 엘리베이터 타는 사람들 많이 봤거든요.

첫 번째 외국인 관광객들, 캐리어를 끌고 다니니까

계단으로 이걸 이렇게 들기가 힘드신 거예요.

그러니까 당연히 '장애인 이동권 보장해라' 해서 설치된 엘리베이터는

한국 관광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수단이 되는 거고,

두 번째는 짐 옮기시는 택배사 분들,

물통이 됐든 아니면 택배박스가 됐건

그걸 계단을 가지고 내려가는 것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는게

그 노동자에게 있어서 건강에도 좋고 심지어 효율적이기까지 해요.

그 다음에 세 번째로는 유아차에 대한 것들, 아이들과 어머니들

'엘리베이터 설치해라' 라고 장애인이 외쳤을 때

가장 많이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건 아이와 엄마인 거죠.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노인분들.

엘리베이터를 안 탔을 때 당연히 관절에 대한 부담이 있고

심지어 계단에서 넘어지면 낙상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그래서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라' 라고 외친건 장애인이 맞아요. 분명히.

그렇지만 같이 이용하는 거는

결국 나이 들어가는 모든 사람들인 것이 거든요.

 

          *'왜 지하철 탑승투쟁인가' 담은 책 <장애시민 불복종>

 

여기 보시면 '어떻게 질 것인가' 가 있어요

원래는 사실 제가 하고 싶은 제목은 이거였고,

아마 전장연 활동이 좀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은 좀 있죠.

뭐 가령 출근길에 꼭 그렇게 해야 되냐 뭐 이런 지점들...

그런데 보니까 이 장애 당사자분들이 너무 절박한 거예요.

국가의 이동권이 바뀔 때까지 계속 가야 되는 사람들은

제가 직접 만나 보니까 갖는 생각이

"야 어떻게 이겨 먹을까" 가 아니라

"이게 바뀔 때까지는 우리가 지치면 안 되는데

이번에는 어떻게 지지?"

저는 그 책에다가 '성대한 패배' 라고 썼는데

어떻게 성대하게 패배해야만 사람들이 더 관심을 갖고

사람들이 더 지지를 하고,

사람들이 더 국가의 책임을 물을 수 있지?....

그래서 좀 너무 역설적인 거예요.

이 사람들은 이기기 전에 질 생각을 하는 거죠.

그런데 어느 순간 좀 이해가 됐던 것 같아요.

, 그렇구나 세상에는 다 이길 수 있는 싸움만 하는 건 아니구나

어떤 사람들은 자기의 과정에서는 질지라도

역사적인 과정에서는 결국은 이기기 위한,

한 발 후퇴해야만 두 발 앞으로 나갈 수도 있는 거잖아요.

한발 후퇴하는 그 정신들이' 어떻게 질 것인가' 가 아닌가

 

          *장애운동 몰랐던 아버지가 책 읽은 뒤 보낸 메시지

 

제주도 사람들은 서울 사람을 서울 사람이라고 안 불러요.

육지 것이라고 부르거든요.

육지 것들의 정치에는 관여하지 말아라.

그거는 일종의 도식 같은 거예요.

육지 것들의 정치에 관여하면 집안이 몰살 당한다.

뭐 약간 이런 거죠.

저희 아버지는 이제 평생 금융업에 종사하셨고

그 직업의 특성상으로도 정치에 좀 관여하지 않는 지점이기도 한데

그런 어떤 가족의 특성, 지역의 특성까지 얽히면서

투쟁이라는 단어는 정말 싫어하실 수밖에 없죠.

그런 거는 속된 말로 사회에서 떼를 쓰는 사람들,

아니면 사회를 막 전복시키려고 하는 사람들,

뭐 이런 이런 사람들의 단어지

내 착한 아들이 발음할 단어는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얘기 안 하고 그냥 쓴 거예요.

그래서 쓰고 책을 그냥 보내드린 거예요.

아버지한테서 카톡이 온 거예요.

책을 읽었는데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너무 눈물이 나더라.

저는 사실 눈물이 아니라 열이 받는다더라 이럴 줄 알았어요.

"! 감히 어디서 뭐 하고 다닌 거니?"

"! 지금 뭐 길거리에서 집회 시위하고 다닌 거니?"

저는 이렇게 혼낼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 ", 너무 너무 눈물이 나더라"

그리고 "내가 해준 게 없어서 미안하다" 라고 하면서

마지막에 '투쟁입니다. 투쟁' 이렇게 쓴 거예요.

그런데 저는 이게 저한테는 좀 남다르게 다가오는게 있어요.

 

          *장애운동은 왜 과격한 방식으로 할까?

 

저는 그게 장애 운동만이 아니라 인류사가 다 그랬다고 보거든요.

예를 들면 흑인 민권 운동도 이런 건 너무 많았어요.

"흑인들이 같이 어울려서 살아야지"

"그런데 왜 하필이면 너네 시위를 하냐?"

심지어 "피부색도 검어서 무서운데

그렇게 하면 너네 범죄자처럼 보인다"

그 다음에 여성의 경우도 마찬가지예요.

"그래 너희들이 어떤 걸 주장한다는 건 좋아"

그리고 "어떤 너희들이 지금 사회적으로 어떤 차별을 받는다는 것도

부분적으로 인정할 수 있어. 그런데 너네가 왜 길거리에 나와?"

"그렇게 되면은 집에서 애는 누가 봐?"

"그러면 사회 경제활동은 대체 어떻게 흘러가?"

"너희가 그렇게 하면 사회 민폐가 되는 거야"

그러면이 민권 운동들이 겪었던 그 역사적 갈등들.

"그래 장애인 좋아 너희들 이렇게 도움이 필요한 거 알겠어"

"그런데 너네 왜 그런 고집을 부려" 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은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 만은 아니고,

사실 우리 사회의 역사가 계속 반복해 왔던

숱한 권리를 찾아가는 과정 중에서 발생하는 잡음들이라고

저는 생각을 해요.

저는 이게 반드시 부정적으로 생각될 필요는 없다.

다만 이 과정에서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설득하려고 하는 과정들이

많이 필요한 것 같고,

그러다 보니까 저와 같은 사람들은 좀 더 많이 책을 써야 되고,

그리고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더 많은 대화를 해야 되고,

시민들은 더 많이 들을 준비를 해야 되고,

또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관심을 가지고 몇 몇 장애인 지하철 관련영상을 보는데

자주 뒤에 깔리는 음악이 있었다.

현장에서 틀어놓은 노래라 잡음이 많고

잘 들리지도 않았는데 이상하게 끌렸다.

처음에는 '은하철도999' 개사했나 했는데 그건 아니었고,

어찌어찌해서 찾아내니 <열차 타는 사람들> 이란 곡이었다.

단순한 노래에 단조로운 리듬이지만 묘하게 사람을 울컥하게 한다.

노래는 아주 어눌하게 불려지는데 이는 발달장애인들이 불러서란다

 

          *열차타는 사람들

작사 : 어깨꿈, 만수, 홍명교, 김도현

작곡 : 만수

노래 : 노들노래공장+어깨꿈

 

 

열차가 어둠을 헤치고 출근길 하루가 시작되면

차가운 눈초리와 혐오 속에 장애인 인권을 외치네

(외치고 있네)

열차가 어둠을 헤치고 장애인 외면하고 지나가면

비정한 장애인 무시 속에 민주 시민 사회는 물건너가네

(물건너가네)

우리는 모두 똑같이 살아가는 사람들

우리는 모두 똑같이 사랑하는 사람들

우리는 모두 똑같이 나이 드는 사람들

우리는 모두 똑같이 열차 타는 사람들

 

열차여 기다리오 사람이 여기 있소

차가운 승강장 앞에서 장애인 권리를 외치고 있소

열차여 문 여시오 시민이 여기 있소

2001년부터 오늘까지 우리는 정당한 권리를 외치고 있소

 

평범하게 열차를 타고 싶네

평범하게 사람답게 살고 싶네

 

 

작사 작곡에 만수가 있어 내가 아는 그 애인가 해서 보니

맞다. <무키무키만만수>의 만수’(본명은 이민휘)

무키와 만수. 예명이 남자같지만 남자 아니니고 여자다.

둘 다 한예종 출신인데  '무키'는 이제 활동을 안하고,

'만수'는 영화음악 등 여러 활동을 한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여기에서 보네.(왼쪽이 만수. 오른쪽이 무키)

 

 

 

     *열차타는 사람들(뮤직비디오)

똑같은 노래인데 위 링크는 순한 맛 버전이고,

이게 전장연 활동까지 포함된 매운 맛 버전.

 

 

어디선가 이 노래가 들리면

한번쯤 그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줬으면 한다.

동정을 주라는게 아니라 그들이 왜 이러는지 생각해 보라는 거다.

질 줄 알고 싸운다지만 언제까지 지게 할 수는 없지 않는가?

 

'우리는 모두 똑같이 살아가는, 사랑하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