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전 쯤에 큰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요양원에서 4년 정도 계시다가 마침내 별세를 하신 것이다.
마음의 준비를 진작부터 하고 있어서인지
큰아버지가 돌아가실 때처럼 크게 동요를 하지는 않았다.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런듯.
큰 어머니는 대전현충원에 큰 아버지와 합장을 하였다.
4년 여 만에 다시 함께 하신 것이다.
따로 묘비를 세우지 않고 기존 큰 아버지 묘비 아래에 함께 모시는 것이
현충원의 부부합장 규정으로 보였다.
나중에 부부이름을 같이 쓴 묘비로 바뀌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장지를 떠나 오는 길에 문득 궁굼증 하나가 생겼다.
큰어머니는 큰아버지가 먼저 가신 것을 알고 계셨을까?
원래 큰 어머니의 상태가 안좋아 요양병원에 들어가셨는데
큰아버지도 문제가 생겨 같은 요양원에 모셨다.
그런데 두분의 불화(?)로 안 좋은 상황이었고,
큰아버지의 병세가 약화되어 각기 다른 층에서 생활하셨다.
그러다가 큰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셨고,
충격을 우려하여 큰어머니에게는 알리지 않기로 하였다.
그렇게 3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나는 코로나 시국 이전에 면회를 갔는데
큰어머니는 나를 정확히 알아보셨다.
나오는데 엘리베이터 앞까지 배웅해 주고,
내가 보기에는 정신은 멀쩡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가끔 큰아버지 돌아가신 것을 큰 어머니가 아냐고 물어보았는데
다들 모른다고 하였다.
3년 정도를 보지 못한 본인의 남편.
큰 어머니는 정말 큰아버지를 찾지 않으셨을까?
다들 물어 본적이 없다고 한다.
치매증상이 있다고는 하지만 신기하다.
4촌 조카인 나를 알아볼 정도의 정신인데
본인의 남편은 안 궁굼하셨을까?
우리 부모님은 그래도 허용이 된다면 자주 가셨는데
한번 쯤은 물어보지 않았을까 하는데 한번도 언급이 없었다고 한다.
이것은 무슨 현상일까?
평생을 함께 산 부부가 상대방이 별세한 것을 모르고,
없어도 물어보지 않은 것이 가능할까?
아니면 눈치채고서도 모른척 하신 걸까?
그 정신세계가 어떤건지 모르지만 나는 참으로 궁굼했다.
정말 큰어머니는 큰아버지가 먼저 가신 것을 모르셨을까?
생각해 보면 큰어머니의 삶은 우리 앞 세대,
그 흔하디 흔한 전통적인 농촌가정의 전형이었다.
남편에 종속되고, 자식만 바라보고,
친척들에게 잘하고, 시부모님들을 운명처럼 모시고.
그러면서도 말한마디 제대로 한적없는.....
누군가의 아내로, 누군가의 엄마로서
자기 주장없이 모든 걸 인내하고 살다가신 분.
그 분, 큰어머니의 이름은 "이희순"이었다.
이번에 처음 알았다-성이 같았네. 무슨 이씨였을까?
그렇게 본인 이름없이 살다간 우리 큰어머니.
현충원 규정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큰아버지 이름만 있는 묘비가
큰어머니 이름까지 각인된 묘비로 바뀌었으면 한다.
큰어머니! 큰집 갈 때마다 잘해주셔서 고마웠어요.
이제야 감사의 말씀을 전하니 죄송합니다.
궁굼해 지금 찾아보니 남편 이름 옆에 좀 더 작은 글씨로
배위 000(아내 이름)이라고 적힌 묘비들이 있는 걸 보니
다행히 묘비는 나중에 바뀌는 것 같다
(배위[配位]는 국어사전에
부부가 다 죽었을 때, 그 아내를 높여 이르는 말이라고 나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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