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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시대를 깨우는 백발의 사자후-백기완 선생.

리매진 2021. 2. 19. 03:55

질풍노도. 거침없이 휘몰아치는 바람의 여운.
그가 지나가는 길에는 늘 힘차고 단호한 무엇이 있었다.
시대를 온 몸으로 부딪히며, 그는 백발을 휘날리며 포효했다.
거침없는 팔뚝질과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
그렇게 한 시대를 풍운아로 살아 온 그--백기완 선생.

 

우리는 그를 선생이라고 불렀다. "선생님"이 아닌 그냥 "선생".
분명 우리보다 훨씬 연배가 높고, 경력도 넘을 수 없는 차이가 나지만

(아버님 뻘. 우리 아버지보다 연세가 많으시다)
우리는, 최소한 내 주변에서는 다들 선생이라 부른다.
처음 안 때부터 지금까지도 우리는 공식적인 자리 이외에서는
그를 백기완 선생님이 아닌 백기완 선생이라고 한다.
경우없는 일일지도 모르지만 왠지 그는 그게 어울렸다.
백기완 선생이라고 해야만 그의 야성이, 생동성이 살아있는듯 해서
아마 우리는 그랬던 것 같다.

 

대한민국 민주화과정에서 우리는 많은 재야인사들과 함께 했다.

당시에 한창이던 우리 윗 세대들은 세월이 흘러 원로가 되었다.
이제 그 분들이 슬슬 한분 한분 가시고, 이제 백기완 선생도 며칠 전에 가셨다.

 

그만큼 한복이 어울린 사람이 있었을까?
흰두루마리든 검은 두루마리든  그가 한복을 입고 나타나면
마치 도포자락 휘날리며 하늘을 날듯 했다.
걸걸한 목소리로 눈 부라리며, 사자후를 내 뿜던 그는 한마디로 상남자였다.

-요새 말로 간지철철 넘처나는.....사내대장부의 전형
나는 속없이 뒤에서 이런 말을 했다. 야~아~, 그림된다. 멋있다.

 

그렇다고 그가 엄숙한 것 만은 아니었다.
이 분 은근 걸쪽하고 해학적이다. 입도 좀 거심. 천상의 이야기꾼.
암울한 시절. 그의 넉살에 많은 사람들이 웃고 울었다.

 

 

길들여지지 않을 것 같은 야생마.
의지와 집념으로 끝까지  자기 길을 갈 것 같던 그 분.
많은 사람들이 순치되고 제도권으로 편입되어 분화되었지만
그는 우리의 예감처럼 끝까지 거리에서 힘든 사람과 함께 했다.
노구를 이끌고 늘 거리의 투사가 되는 그를 보고 늘 부끄러웠다.

 

그러나 그도 세월을 비켜가지 못했다.
갈수록 야위어가고 몸은 휘청거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단호했고 힘찼다.
80 넘은 고령에도 정신줄 놓지 않은 그 사람은
갈수록 스스로의 육신을 지탱하기 힘든게 슬슬 보였다.
그러나 끝까지 제 정신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
그가 지은 "임을 위한 행진곡" 가사처럼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가자던 약속을 그는 지킨 것 같다.

 

 

 

그 백기완 선생이 마침내 다음 세상으로 가셨다.
그분은 가셨지만 대학로에서 캠퍼스에서, 또 기억도 나지 않은 어느 거리에서
우리를 흔들어 놓았던 그 분의 모습은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이게 아마 80년대 대학로 연설. 저기 어딘가에 내가 있을 것이다

백기완 선생. 잘 가시오.
우리 젊은 날, 당신은 우리의 우상이었소.
당신의 거침없는 목소리, 당신의 힘찬 팔뚝질은 그 시대를 깨우는 사자후였소.

 

 90년대 초반. 친구 결혼식 주례로 오신 백기완 선생과.  그나마 이런 사진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