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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조세희 : 난장이가 없는 세상에서 자유롭게 사시길

리매진 2022. 12. 28. 04:22

조세희 작가가 돌아가셨다.
2022년 12월 25일(향년 80세)

 


집에 있는 책을 오래 전에 정리했다.
부피가 너무 커 자리잡을데가 없고,
너무 오래되어 바스러지기 시작해 더 가지고 있을 수도 없었다.

(지금 생각하니 잘못된 판단이란 생각이 많이 든다)

개인적인 내용이 있는 것과 시집, 뿌리깊은나무 전권,
업무에 연관이 있는 책 등을 제외하고 그랬는데
그래도 차마 정리하지 못한 책이 한 20여 권이 있다.
그 중 3권이 조세희 작가의 것이다.

80년대에 학교를 다닌 사람들은 한번쯤 접했을 소설,
읽지는 않았어도 한번쯤 들어보았을 책.
"난장이가쏘아올린 작은 공"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하 난쏘공)의 후일담인듯 아닌듯

난장이 연작의 한계를 극복하려헸던 2번째 중단편 모음집

"시간여행"

 

그리고 당시에 쟝르가 모호했던 책.
산문집인지, 에세이인지, 사진집인지 모르게 제3작품집의 부제를 달고나온

 "침묵의 뿌리"

이 3권을 정리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가지고 있다.
그만큼 각별해서 일거다.

 


난장이가쏘아올린 작은 공은
도시빈민의 삶을 리얼하게 그려냈지만
나에게는 마치 잔혹동화같은 거로 다가왔었다.

오늘 그 책을 다시 꺼내보니 이게 가로쓰기 판이 아닌
세로쓰기-아래로 내려가는 글, 오른 쪽에서 왼쪽으로 읽는 책이다.
나는 그동안 지금과 같은 가로쓰기인 줄 알았는데.....
사람의 망각은 이렇게 무섭다.

 


그러면 이 책이 내가 읽은 마지막 세로쓰기 소설이였을까?
비슷한 시기에 이문열의 "그해 겨울" 김영동의 "만다라" 등을 읽었는데
이것들도 세로쓰기 책이었을까?
이 중에 "난쏘공"을 제일 마지막에 접한 것은 기억나니까
만약 그책들도 세로쓰기였다면
이 책이 내가 읽은 현대소설 중 마지막 세로쓰기 소설일 가능성이 크다.

 


내가 가진 것은 초판본이고(인지가 없어 초판 몇쇄인지는 모르겠다)
그후 가로쓰기로 다시 편집되어 판매된 것 같다.
아래 판형모음 사진을보니 하단 왼쪽 책부터 가로쓰기로 변경된 것 같은데
(초판본과 똑같은 거 같지만 표지 제목이 위에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초판본 세로쓰기 판형은 표지 제목이 중간에 있다.
46배판. 일반적인 A4사이즈 보다 작고 포켓북 보다는 크다.

 


이렇게 여러 판형을 거치며 320쇄 150만부 정도 발행되었으며,
현재도 사람들이 찾는다고 한다.
그것은 아직도 우리사회에 난장이가 있고, 소외된 사람이 있기 때문인것 같다며
조세희 작가는 그게 슬프다고 했던 것 같다.

 


"사람들은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옳게 보았다. 아버지는 난장이었다.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아버지를 보는 것 하나만 옳았다. 그밖의 것들은 하나도 옳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 어머니, 영호, 영희, 그리고 나를 다섯식구의 모든 것을 걸고 그들이 옳지 않다는 것을 언제나 말할 수 있다."

위의 난쏘공 시작 문장처럼 조세희 작가는 난장이를 난장이라고 보지 않고,
세상사람들이 옳지 않다는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의 삶도 그들에게 계속 향했던 것 같다.



침묵의 뿌리는 그 연장선상에 있던 또하나의 작품집이지 않나 싶다.
앞부분에는 글들이 나오고 뒷부분은 사진으로 채워져 있다.
이 책은 그당시에 참 독특한 형태였고, 지금 봐도 미학적으로 뛰어나다.
군더더기 없는 여백의 미가 넘쳐나는 편집,
특별한 디자인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무서울 정도로 절제된 구성에
정제된 글과 사진이 정확히 자기 자리를 잡고 있다.
소재는 어둡고 칙칙하지만 조세희의 카메라는, 시선은
조용히 그들을 어루만져주고 있었다.

 

특이하게도 겉표지 안에
이렇게 또하나의 표제가 숨어 있다

초판인쇄가 1985년 9월이고,
내 사인과 함께 86.3.29을 자필로 적은 걸로 보아
이것도 초판본을 산 것 같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나는 그 당시에 이 침묵의 뿌리 편집디자인에 매료되었다.
아무 것도 안 한 것 같지만 뭐 하나 틈이 없는 듯한,
묘한 간결미와 긴장이 그 책에는 있었다.
이것도 내가 이 책을 정리하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조세희 작가도 묘하게 이 책을 닮을듯 하다.
요란스럽지 않지만 뚜렷한 색을 가지고 자기 자리를 지키며 사신 분.
그런 그 분이 이제 우리 곁을 떠났다.

 


"지구에 살든, 혹성에 살든, 우리의 정신은 언제나 자유이다"
-난쏘공작품집 / 에필로그 편 / 340Page 중에서
-당시에 밑줄 그은 부분에 오늘도 밑줄을 그은다.

조작가님! 부디 그곳, 난장이가 없는 세상에서 자유롭게 사시길.

 


    *2023년 1월 5일 추가

조세희 작가의 책이 한권 더 있었다.

소설집 "시간여행"

오늘 우연히 책장구석을 보니 다른 책과 함께 맨 사이드에 숨어 있었다.

나는 이 책을 그동안 정리할 때 함께 내보낸줄 알았는데 아직 있었다.

그래서 내용을 조금 수정함.

 

산 날자와 사인을 보니 86년 9월 16일.

이 때는 책을 사면 속표지에 이렇게 날자와 내 사인을 했다.

1983년 11월 10일 초판 인쇄

1983년 11월  25일 초판 발행으로 되어 있는데 이거는 가로쓰기이다.

이쯤부터 문학과 지성사에서도 책을 발행할때

가로쓰기 판형으로 했나 보다.

 

 



    *조세희 소설가
1942년 경기초 가평에서 출생하였다.
서라벌예대와 경희대를 졸업했다.
196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나
그는 십 년 동안 침묵을 지키며 일체의 작품 활동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1975년 「뫼비우스의 띠」를 발표함으로써
새로 작가 생활을 시작한 그는
 「칼날」로부터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에필로그」에 이르기까지,
고통받는 소외계층 일가를 주인공으로 한
'난장이 연작'을 1978년 열두 편으로 마무리지었다.
현실과미학의 뛰어난 결합으로 평가된 이 연작은
 「난장이가쏘아올린 작은공」으로 묶여 간행되었으며,
 그 뒤 「시간여행」(문학과지성사)과
 「침묵의 뿌리」(열화당)를 출간했다.
기층 민중들의 애환을 매우 정밀하게 그렸으며,
1970년대 산업 사회의 병리를
가장 예민하고 감동적으로 포착한 작가로 정평이 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