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무슨 블루스를 알고, 재즈를 알고 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냥 좋아하는 곡들이 있으면 수소문했고,
특별히 무슨 장르라는 것을 심각히 생각하며
음반을 구입했던 것도 아니다.
그러던 내게 처음으로 쟝르라는 걸 알게 해준 게 신촌블루스다.
신촌Blues를 통해 블루스라는 장르를 본격적으로 알 수 있게 됐고,
그것들에 대해 심취할 수 있게 한 그들의 LP음반 1/2/3집이다.
1986년, 이정선, 엄인호, 한영애 등
포크 뮤지션을 중심으로 결성된 신촌블루스는
일종의 프로젝트 밴드다.
그때 누군가 이들을 언더그라운드 밴드라고도 했는데
그러나 그 면면을 보면 10년 이상 갈고 닦은 실력자들의 집합체다.
지금 보면 후덜덜한 멤버들이다.
그런 관록의 뮤지션들이 만든 토종 블루스의 향연이
신촌블루스 앨범에서 펼쳐졌으니 손이 안 갈 수가 없었다.
▣ 신촌Blues 1집(1988/지구레코드) ▣
Side A 1. 그대 없는 거리(한영애) 2. 오늘 같은 밤(엄인호) 3. 나그네의 옛이야기(박인수) 4. 한밤중에(이정선) 5. Overnight Blues(경음악) |
Side B 1. 아쉬움(엄인호, 정서용) 2. 봄비(박인수) 3. 바닷가에 선들(이정선) 4. 바람인가(한영애) |
엄인호가 운영하던 신촌의 레드 제플린 카페에서
1986년부터 함께 놀던(?) 멤버들이 마침내 정식으로 낸 첫 음반이다.
박인수, 이정선, 한영애, 엄인호, 정서용 등이 노래를 부르는데
신곡과 기존의 노래를 블루스로 편곡한 곡들이 거의 반반이다.
*B3. 봄비-노래 박인수 / 작사작곡 신중현
1967년도 곡인 봄비를 블루스로 리메이크한 박인수의 노래는
그 끈적끈적한 여운으로 정말 봄비에 젖어들어가게 하는 것 같다
도입부의 파격적인 연주와 독보적인 창법은 경이롭기만 하다.
이슬비 나린 길을 걸으면 봄 비에 젖어서 길을 걸으면
나 혼자 쓸쓸히 빗방울 소리에 마음을 달래고
외로운 가슴을 달랠 길 없네
한없이 적시는 내 눈 위에는 빗방울 떨어져 눈물이 되었나
한없이 흐르네 봄 비 날 울려주는 봄 비
언제까지 나리려나 마음마저 어울려주네 봄 비
외로운 가슴을 달랠 길 없네 한없이 적시는 내 눈 위에는
빗방울 떨어져 눈물이 되었나 한없이 흐르네
봄 비 날 울려주는 봄 비 내리네 언제까지 나리려나
마음마저 어울려주네 봄 비 외로운 가슴을 달랠 길 없네
한없이 적시는 내 눈 위에는 빗방울 떨어져 눈물이 되었나
한없이 흐르네
이슬이 나린 길을 걸으면 봄 비에 젖어서 길을 걸으면
나 혼자 쓸쓸히 마음을 달래고 마음을 달래며
봄 비 봄 비 봄 비 봄 비
봄 비가 나리네 봄 비가 나리네 봄 비가 나리네
나한테 나리네 날 울려주는 봄 비
내 곁에 내려줘 봄 비가 나리네
▣ 신촌Blues 2집(1989/동아기획) ▣
Side A 1. 황혼(정서용) 2. 바람인가,빗속에서(엄인호,김현식) 3. 산 위에 올라(이정선) 4. 환상(김현식) 5. 아무말도 없이 떠나요(이정선) |
Side B 1. 골목길(김현식) 2. 또 하나의 내가 있다면(봄·여름·가을·겨울) 3. 빗속에 서있는 여자(정서용) 4. 루씰-LUCILLE(엄인호) |
1989년 2기 라인업으로 제작한 신촌블루스 2집은
엄인호와 이정선을 중심으로
김현식과 정서용, 봄여름가을겨울이 게스트로 참여했다
블루스는 더 짙어지고 울림은 더 높아졌다.
현란한 연주와 깊이있는 화음으로 화려(?)하기까지 하다.
듣다 보면 황홀할 정도로 빠져들게 한다.
신촌블루스 앨범 중 가장 으뜸이지 않을까 한다.
전설이 된 김현식의 <골목길>도 이 음반에 수록되어 있다.
*A1. 황혼-노래 정서용 / 작사작곡 김창완
회백색 빌딩 너머로 황혼이 물들어 오면
흔적도 없는 그리움이 스며드네
빗물처럼 이렇게 외로움에 젖네
바람도 없는 밤길을 나홀로 거닐 때면
잊혀진 듯한 모습들이 떠오르네
불현듯이 이렇게 또 하루가 지난다
회백색 빌딩 너머로 황혼이 물들어 오면
흔적도 없는 그리움이 스며드네
빗물처럼 이렇게 외로움에 젖네
이렇게 또 하루가 지난다
이렇게 또 외로움에 젖네
▣ 신촌Blues 3집(1990/동아기획) ▣
Side A 1. 비오는 어느 저녁(정경화) 2. 마지막 블루스(정경화) 3. 나그네의 옛이야기(엄인호) 4. 비오는 날(김미옥) |
Side B 1. 향수(엄인호) 2. 이별의 종착역(김현식) 3. 그댄 바람에 안개로 날리고(이은미) 4. 신촌 그 추억의 거리(연주곡) |
멤버가 많이 정리(?)되었다.
김현식, 정경화, 이은미, 엄인호, 김미옥 등
5명의 남녀 보컬리스트들이 노래를 불렀지만
어쩌면 엄인호의 신촌블루스로 안착되기 시작한 앨범이다.
앨범쟈켓 뒤에도 아예 정경화*엄인호라고 크게 써 있다.
재즈의 색채가 강화되었고, 곡들은 더 차분하고 쓸쓸하다.
제목에서부터 어떤 페이소스, 인생에 대한 연민이 느껴진다.
이 음반도 선물로 받았나 보다.
쟈켓 앞면 아래쪽에 증정자 사인이 있는 걸 보니.....
나는 그동안 까마득히 잊고, 거의 다 내가 직접 구입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보니 선물로 받은 게 꽤 있다.
소장LP이야기 시리즈의 포스팅을 위해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니
그 흔적들이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이 기회에 그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를.
어디에선들 음반 주고받은 심성처럼 아름답게 살길.
*B1, 향수-노래 작사작곡 엄인호
3집에서 정경화의 <비오는 어느 저녁>, 김미옥의 <비 오는 날>도 좋지만
이 곡이 더 신촌블루스답다. 리듬 죽여준다.
연주가 일품이고 엄인호의 보컬과 기막히게 화음을 이룬다.
푸른 하늘 아래 고향을 어젯밤 꿈속에서 나는 보았네
시냇물 맑게 흐르는 흰 구름 쉬어가는 마을엔
이젠 봄이 한창 이었네
꿈에서 깨어 나는 우네
둘러본 사방에는 아무 아무도 없어 슬픔에 울다 잠들어
또 다시 다시 찾아보는 고향 땅이 저기 보이네
이제 고향 찾아 가려네 흰 구름 앞세우고 나는 가려네
친구들 내게 달려와 잡아주는 그 손길에
이제 나는 행복하겠네
*B4. 신촌, 그 추억의 거리-연주곡 / 작곡 엄인호
3집에서 이상하게 보컬 곡보다 더 좋아했다.
가만히 들으면 내가 신촌의 대학을 나오거나 주활동지가 아니었는데도
그 거리에 대한 연민이 스멀스멀 기어오른다.
신촌기차역에서 백마역 화사랑, 장흥역, 파주 간이역 가던 날이 언제였드라.
그 날의 설레임은 아직도 기억나는데, 다른 모든 것은 변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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