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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저편

손편지 오가던 시절이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때 같다

리매진 2022. 6. 16. 05:02

대단한 인생은 아니지만 지나간 시절의 흔적들을
마음 내키면 하나하나 디지털화하고 있다.
아날로그 매체들이나 물리적으로 부피가 나가는 것들,
훼손되어가는 것들을 시간나는 대로 정리하는데
몇 년 전에 내 목소리가 담긴 카세트테이프를 변환하고,

앨범의 사진까지 스캔완료.
이번에는 소장하고 있던 손글씨로 쓴 편지들을 스캔했다.

분실된 것도 많겠지만 그래도 꽤 많이 남아있다.
오래된 순서로 잉크는 번져 글씨가 사라져 가는 것도 있고,
때깔들도 누렇게 변색되어가는 편지지들.
7~80년대. 3~40년 전의 유물(?)들이니 그럴 만도 하다. 
어떻게 해서 이 편지들만 남았는지 모르지만
나름 소중해서 그동안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리라.

스캔하느라 다시 한 번 훑어보면서 숱하게

"잘 모르겠다." 기억이 정확히 안 나네" 를 연발했다.
아주 오래된 일이라 그럴 수 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괜히 속상하다.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것도 발견되고.
어떤 장면은 선명하게 떠오르는데
신기하게 무슨 대화를 했는 지는 전혀 기억이 안난다.
지금 떠올린 내용도 더 세월이 흐르면 이것마저도 기억이 안날 듯 싶었다.
그래서 정리하고자 공개해도 될 만한 손편지로
이 포스팅 작업을 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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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 서 * : 연상에게 첫 까임을 당하다 ]
가장 오래된 편지다. 나 고1, 그 분 고3(1978년 9월 1일)
해수욕장갔다가 옆 캠프의 기타치는 누나에게 반했다.
눈도 약간 파랬던 것 같고, 패션도, 하는 행동도 서구적인데다
이름마저도 서구적이었다.
2년 연상인데도 겁대가리없이 대시하다가 까였다.
어떤 방법으로 대시한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좌우지간 이렇게 정중한 거절의 편지를 보내왔다.
이번에 보니 차마 교제거절이라는 말은 못쓰고 융합될 수 없다는 표현을 했다.

결론은 쉽게 말해 까불지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라다.

 

청소년기, 10대에서의 2살 차이는 무척 큰데
이 누나는 그때 얼마나 황당했을까? 햇병아리가 대시를 해오니.
그  누나친구들 3명도 나를 잘 대해주었는데
그분들은 옆에서 얼마나 우스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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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 * 희 : 그 겨울을 어찌 잊으리 ]
피아노 치는 여릿여릿한 여자에게 마음을 뺏겼다. 고1 겨울 초입에.
젠장 그런데 또 연상이다. 1년 위, 여고 2학년.
보호본능 자극하는 가련미에 요사스러움도 살짝 풍겨 홀린 것 같다.
(실제로 몸도 연약하고, 마음도 여려 나를 안타깝게 했다) 
어떤 수작(?)을 부렸는지는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어쨋든 연락하고 지내기로 했다.

그러다가 겨울여자(조해일 소설 /  김호선 연출 영화)의
이화(겨울여자 여주인공; 장미희 역)와 이미지가 비슷한 그녀와
그 겨울부터 가장 격정적이고 순수한 순정영화 한 편을 찍었다.
나나 그 누나나 둘다 겨울여자란 작품을 좋아했다.

 

영화처럼 벼라별 우여곡절, 기쁨과 아픔이 교차되는 서사가 이어졌다.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고 그 막간에도 참지 못해 서로 편지를 교환했다.
광주천변길, 공원길, 손 꼭잡고 처음 가 본 겨울바다.....

만날 때마다 서로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는 거의 기억 못하지만
당연히 공부와 진학문제 등의 고민도 털어놓았던 것 같다.

공부 등한시 한 것 같으니까 내 성적표를 자기에게 보내라고 한 적도 있었다.
내려간 등수만큼 맴매한다고.(이건 내가 개긴 것 같다. 안 보낸 것 같음)
피아노 연습을 너무해 손가락을 잘라버리고 싶었다는 말을 해
그 손은 내 손도 된다고 호 불어주며 가슴에 안아준 일도 있다.(아~ 닭살)
뭐. 감성풍부한 고등학생 때이니까. 하늘의 별인들 못 따주리.
그해 겨울은 너무 뜨거워서 우리는 두려울 정도였다.

 

내가 고2가 되니 누나는 한창 입시준비할 고3.
마침내 폭설이 내렸다.
나는 한창 놀 때인데, 누나는 공포의 고3이 되니 문제가 꼬인다.
티격태격하다가 비상사이렌.
결별해야되나 마나 같은 걸로 대판하다가 집에까지 찾아가니,
화들짝 놀라며 나를 자기 방으로 데려갔다.
치마로 맨다리를 덮으며 조신하게 앉아 있다가
숙인 고개를 가끔씩 들어 힐긋힐긋 쳐다보기만 하는데
그게 왜 그리 예쁜지. 온 이유를 잊어버릴 뻔 했다.
그러다가 내가 뭔가 격해진 상황에서 누나의 뺨을 쳤다.
바로 들어오는 반격. 누나 뺨을 치냐며 바로 내 빰을 갈겼다.
손해봤다. 한 대 친것 같은데 나는 여러 대 맞았다.
지금까지 내 뺨을 때린 유일한 여자다.(맞나? 맞을 걸)
그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집밖에서 옆구리 툭툭치며 택시타고 가라고 돈을 쥐어준 것이
지금도 기억난다.(동전으로 받은 것 같다)
뭔가 풀러갔는데 어째 상황이 더 안좋아진 것 같지만
그후로도 아슬아슬하게 관계는 이어졌던 것 같다.

 

내가 고3이 되니 그녀는 대학 1학년.
보기만 해도 좀 불안한 조합이지 않나? 뭔가 안 풀릴 것 같은.

같은 1년 차이라도 고교생과 여대생. 단위가 틀려지니 분위기가 다르다.

누나는 다행히(?) 몸이 약해 집안의 반대로 서울 아닌 전남대로 진학을 했다.

나는 3학년이 되어서도 교복의  2자뺏지를 그대로 달고 다녔는데(객기)

결국 이 누나가  3자 뺏지로 바꿔 달아주었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길에서 남녀대학생이 지나가는 걸 보았는데

그중에 누나도 있었다.

어색하게 웃고 지나쳤는데, 그게 왜 이리 눈꼴시럽고 화나던지.(질투)
그래도 역전타를 칠 수 있다는 믿음이 그때 나에게는 있었던 같다.

 

내가 재수할 때 그녀는 대학교 2학년.
이제 1년 차이가 아니라 2년 차이다.
거기다 나는 서울로 올라와 지역도 다르게 되고.
이 정도면 끝이 뻔하지 않나.(잘 되겠냐?)

어쨋든 그해 학력고사 보는 날 만나기로 하고,
(일방적 통보인지 합의였는지는 모르겠다)
시험 다 끝난 후 광주우체국 앞에서 기다렸다.
그런데 안 나왔다. 대신 누나의 남동생이 왔다.
누나가 아프니 집으로 데려오라고 했단다.
집에 가니 그래도 일어나 저녁밥을 차려준다.

(누나의 부모님과 동생들은  이때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부모님도 계셔서 누나방에서 먹은 것 같은데

둘다 컨디션이 좋지않아 의례적인 이야기만 하다 나온 것 같다.

그리고 2월 말 서울로 올라오는 날. 전화를 했는데
무거운 침묵 끝에 누나가 이런 말을 했다.
"길영아. 이제 끝내자"(그만 하자였던가?)
이때는 나도 뭔가 안 될 것 같다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때 였지만
막상 닥치고 보니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다시 무거운 침묵이 흐르고 나는 짧게 "응" 하며 전화기를 놓았다. 
그날 내가 울었는지 안 울었는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드디어 길고 긴 겨울이 이렇게 가는구나 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어느 겨울초입에 시작한 사랑은 몇 번의 계절이 지나
또 다른 겨울 끝무렵에 끝났다.
그게 그 분과의 마지막이었다.

 

위의 사진이 그 누나.(준 거다)
본인이 아니면 알아보지 못할 사진이라 올린다.
오른쪽 아래에 FUJICOLOR 79D. 12 라고 레터박스가 찍힌 것을 보니
79년 12월, 누나 고2때 피아노연습실에서 찍은 것 같다.
한때 나의 전부였던, 공식적으로 내가 인정한 나의 첫사랑.
그 분이 나를 생각한 것보다 100배는 내가 더 좋아했다.
이상하게 그 분을 생각하면 마음이 항상 아리다.

            *겨울여자 OST A02 : 겨울노래 (김세화)
-쉬어가자. 또 울컥하네. 감정조절

-둘 다 좋아했던 영화 겨울여자의 삽입곡이다.

-눈물로 쓴 편지. 겨울이야기, 겨울사랑 등이 있는데 나는 이 노래가 더 좋다

 

 

그후로 그 분 소식은 대학졸업후 선생을 한다는 것을
건너건너 들었다.
그렇게 끝나나 했는데 80년대 중반에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무슨 문제로인가로 총장실점거농성 중이었는데
후배 한 놈이 전화 하나가 살아있다는 것이다.
시외전화도 된다고 내가 지방출신이니까 전화 할데 있으면 해보라고 한다.
87년인가 저녁때 쯤이었는데 그날 이상하게
그 누나집으로 전화를 해보고 싶은 거다.
그래서 전화를 하니 누나 아버님이 전화를 받으신다.
차마 나라고 말은 못하고 누나동생친구인것처럼 행세하며,
누나 좀 바꿔달라 하니
"몰랐냐? 우리  *희 시집가서 잘 살고 있어" 그러신다.

그런데 그 순간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그말을 듣는 순간 내가 멍해지다가 무너져 내려버리는 것이다.
이미 오래 전에 끝난 관계인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마음이 너무 허해 농성장을 빠져 나와 집에서  
"이문세의 그녀의 웃음소리 뿐" 이란 곡을 밤새껏 들었다.
그날 밤 내 방안에는 고교시절 그녀의 웃음소리만 가득찼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나는 늦깍기 대학생이라 학교에 있지만 그누나는 이미 졸업하여
결혼할 수도 있는 나이인데(계산해 보니 그때가 누나 나이 20대 후반)
왜 그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는지.
이미 끝난 관계이고,
나도 이런저런 여자들과 그렇고 그런 관계로 히히덕거리던 중이었는데
왜? 왜? 왜? 그 누나가 결혼했다는 것에 마음이 무너져 버린 걸까?

어쩌면 그 누나는 떠나간 줄 알았는데 계속 그시절의 사람으로,
내 한켠에 첫사랑이라는 지분을 차지하고 머물러 있었나보다.
그후로도 그분은 가끔씩 내 가슴에 왔다갔다.
이 블로그에도 알쏭달쏭하게 썼지만 2번의 포스팅이

실은 그 누나에 대한 것이다.

*먼 옛날의 내 목소리를 듣다 /  https://blog.daum.net/lgy6203/181

 

먼 옛날의 내 목소리를 듣다

성*맨션 601호 언덕길을 돌아가다가 보이는 그 곳. 불꺼진 창(이장희)을 보며 나 어떡해(센드페블스)를 외치며. 비극(Bee Gees- Tragedy)에 싸인 섬소년(이정선) 하나가 있었다. 새는(송창식) 어디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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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어느 하루의 꿈 /  https://blog.daum.net/lgy6203/207

 

겨울. 어느 하루의 꿈

어제 꿈을 꾸었다. 비몽사몽이 이어지면서 꿈은 연결되었다. 늘 꿈이 그렇듯이 긴가민가하면서 정신이 들자마자 바로 사르르 사라지는데 이 꿈은 세부적인 내용은 옅어지지만 확실하게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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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첫사랑하지 마세요.  첫사랑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그냥 2번째 사랑부터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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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경 * : 미스테리하고 미안하다 ]
고2 여름쯤에 어떡하다가 경북(대구)쪽 여자애와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여고1학년. 일년 아래다. 어느 여고생들처럼 발랄하고 수다스럽고. 공상많고.
지금 보니 감정의 기복이 심했던 것이 편지에서 나타난다.
편지는 여러 번 오갔던 것 같은데 지역이 달라 대면은 한번도 못했다.
이상하게 이 애의 편지에는 마지막에 쓴 날자가 없다.
한 통 이외에는 다 그래서 받은 순서를 몰라 헤매였다.
(대부분 사람들은 편지 마지막에 쓴 날자와 자기 이름이나 사인을 하지 않나?)

 

미스테리한게 내가 80년대 초반 암흑기(입시실패와 병역기간)에
서식지가 바뀌고 연락처 비공개로
자연스럽게 과거 인연들과 단절되었는데,
애는 어떻게 내 연락처를 알아내고 대학때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
거의 5년 이상의 공백기가 있었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드디어 상면. 안 지 거의 10년만이다.
86년(아니 87년 인가) 겨울에 대학로 오감도카페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그리고 그날 나는 그 애의 비밀(?) 같은 거 하나를 알아채고 너무너무 미안했다.
내가 위로가 많이 되어주었어야 할 사람.
지금도 그 상황을 생각하면 미안해 죽겠다.

 

그리고 그 날이 그 애와의 마지막이었다.
다시 연락한다고 했지만 나는 연락할 수 없었고,
어렵게 연락처를 알아내 내게 연락한 그녀도 그후 연락이 없었다.
어쩌면 우리는 단 한 번 만날 인연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눈내리는 대학로로 나설 때 어쩌면 우리는 이것이 첫 만남이지만
마지막 만남일 것을 서로 예감하며 그 자리에 나간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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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 * 희 ; 어쩌면 이성간 소울메이트가 이런 것일까 ]
이 친구를 안게 고2 때인지 고3 때인지 잘 기억이 안난다.
확실한건 각 학교 대표모임에 이 친구도 있었고, 그때 인연이 시작된건 맞다.
집에도 한 번 데려다 준 적이 있는데 집 옆에 호수가 있어
수변따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 시기가 언제인지는 기억이 안난다.
이번에 편지를 보니 첫 만남의 단서가 될만한 내용이 있는데
이게 어떤 상황인지 전혀 모르겠다.

 

어쨋든 동갑내기 소울메이트가 이런 친구이지 않나 싶다.
애의 편지는 하나의 시고, 잔잔한 영화의 서사를 보는듯 하다.
정이 뚜욱뚝 묻어나고 주변을 정화시키는듯 하다.
지금 다시 봐도 이 친구의 편지는 정말 감탄스럽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꼬치꼬치 쓰는데, 눈 앞에서 참새 한마리 조잘대는듯 하다.

 

내가 입시에 실패하고 굴욕감에
일반적으로 거의 모든 이성관계는 정리되고 소식도 끊어졌는데,
편지날자를 보니 이 친구는 계속 연락하고 지냈나 보다.
그런데 그런 나의 암흑기에도 연락을 주고 받았는데
이 친구와는 연락이 왜, 언제 끊어졌을까?
지금 편지내용을 다시 봐도 특별한 갈등이 없었던 것 같은데....
그 후에 오간 편지가 분실되었는지 어쩐지 모르지만
이 친구의 편지는 1985년 쯤이 마지막이고, 연락도 이때 두절된 것 같다.
이 친구의 인적네트워크와 내 네트워크가 겹치는게 하나도 없어
그 후 소식은 알 길이 없다.
어느 날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바람처럼 사라져 버린 나의 소울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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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 귀 * ; 억수로 단아하고 귀엽다 ]
야, 부산에 와서 무슨 부여대냐? 여기가 충청도도 아니고.
야, 부산에서는 부산여자대학교를 부여대라고 불러.
모종의 거사(?)로 생애 처음, 1982년 겨울에 부산을 가
(이 이야기도 재미있어 언젠가 한번 포스팅 해보련다)
친구와 여대생을 만났는데 1년 연상의 부여대생들이었다.
(지금은 신라대학교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때도 암흑기라 미팅할 상황은 아니었는데
어떻게 그 자리가 만들어지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안난다.
그 중 한 여자, 단아하게 이쁘장한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무슨 상황에서인지 그녀가 경상도사투리로 "괜찮슴더. 물요" 하는데
그게 왜 그리 청순하고 귀여운지.
뭐든지 옷도, 손도, 치아도, 머리도 단정하고 아담한 여자가
반짝이는 눈으로 사근사근 이야기 하는데  이뻐죽겠다. 
(호주머니에 넣어 다니고 싶을만큼 앙징맞았다)
나는 요즘도 여자가 경상도사투리로 말을 하면 껌벅 죽는다.

그래서 연락하고  살자한 것 같은데
나이 차이가 있어 누나동생하기로 한 것 같다.
82년이면 나의 암흑기라 길게 가지는 않은 듯 하다.
"또 편지할께" 라고 편지 말미에 써있는데
남아있는 편지는 이거 한 통 밖에 없다.

 

그런데 이번에 편지내용을 보니 지금까지 나는
친구 종태가 그 만남을 주선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편지 속에서는 오히려 내가 해양대간 친구를 미팅시켜달라고 한 내용이 나온다.
(종태는 재수하여 82학번으로 부산한국해양대를 입학했다)
나는 부산에 아무런 연고도 없고 처음으로 간 부산인데
그러면 도대체 누가 이 인연을 시작하게 한걸까?
물어보고 싶지만 이 분도 진작 연락이 끊겼고,
친구 정종태도 오래 전에 다른 세상으로 가 의문을 풀 방법이 없다.
죽은 친구 이야기 나오니 갑자기 슬퍼지네. 인생 왜 이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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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 홍 : 일단 너는 좀 맞자 ]
성악하던 애. 한 학년 아래이다.
여고 2학년때 광주에서 서울로 전학갔다.
애가 전학가기 전 애 음악회에 같이 갔던 음악하는 내 친구가
다음 해 그 음악회에 가서 그 목소리가 없어졌다며,
아쉬워 할 정도로 실력이 있었다
나는 그정도 클래식에 조예가 없고, 지금도 애가
소프라노인지 알토인지 어느 파트였는지 모른다.

고등학교 때는 내가 연상에 집중(?)하던 때라
연하나 동급생은 거리를 두어 그냥 이뻐해 하던 애다.

전학간 후 연락 안되다가 내가 뒤늦게 대학 들어가서
다시 인연이 이어진줄 알았는데
이번에 남아있는 편지를 보니 내 암흑기에도 소식을 주고 받았나 보다.
83년의 편지가 한 통 있다.
언젠가 한밤중, 애가 살던 은마아파트에 데려다 준 기억이 있는데
그게 내가 대학생활 하기 전이었나 보다.
이때는 내 서식지가 유동적이던 때인데, 어떻게 연락하고 지냈을까?

 

어쨋든 내가 뒤늦게 대학입학 후 가끔씩 본 것 같다.
아니 그 이전부터 봤나?
그런데 이상하게  종로에서 만난 것, 삼청공원에 간 기억 외에는 없다.
그러다 거짓말처럼 갑자기 애가 사라지고,
한참 후 독일에서 항공우편이 왔다.

유학을 간 것이다. 나하고는 한마디의 상의도 없었다.
막판에 연락을 한 것 같은데 그때는 한창 바빠 집에 거의 없었다.
당시 나는 사촌누나 집에 살았는데.
할까말까 한 전화라 내가 없으니, 그냥 끊어버리고 날랐나 보다.
(개인전화가 아닌 집전화로만 연락할 수 있었던 시절의 폐해)

 

편지를 보니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말 안하고,
전격적으로 실행한 듯 싶었다.
편지에 "혹시 나의 소식 물어보는 사람 있으면 오빠 알아서 하세요" 라고 써 있는 것 보니.
그런데 나는 이해가 갔다.
딴에는 꽤 하는 애로 치부되었는데 전기대학 떨어지고 후기대학을 가
자존심이 많이 상한 상태로 대학생활을 했는데,
결국은 유학으로 돌파구를 찾았나 보다 했다.
애가 나에게 유학을 말했을 때 나는 찬성했을까? 반대했을까?
편지 내용으로 보면 애는 내가 반대할 거라 생각한 것 같다.
"원망하실건가요? 만나면 때리실 건가요?" 라고 편지에 쓴 걸 보니.

유학생활은 힘들었나 보다.
여러 편지 중에서 푸념을 늘어놓을 때는 글씨가 막 날라 다닌다.
그때는 술 먹고 썼나?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우리는 연락이 끊겼다.

 

무슨 연유에서인지 애의 단독 사진이 나한테 있다.
일반적으로 같이 찍은 사진이나 스냅사진은 서로 갖고 있을 수 있는데
언제, 어디서, 왜 나에게 온 건지 모르지만
애만 나와 있는 프로필 사진 같은 것이 아직 남아있다.
우리는 남녀관계가 아닌데 왜 그런 사진이 나에게 있지?

(생각해 보니 언젠가 터미널에서 받은 것 같기도 하고)
나의 고교때부터의 남녀관계를 이 애도 어느 정도 안다.
모르는 줄 알았는데, 알고 있는 사실을 슬쩍 말해서 나도 놀랐다.

87년 이후 편지는 없는 것으로 보아 그때쯤 끝난 것 같고,
그후로 애에 대한 상황은 아무 것도 모른다.
실력 있고 유학도 갔으니 혹시나 발표회 같은걸 하지 않을까 하며,
인터넷 검색해 봐도 잡히는 것은 없다.
그냥 있을 애는 아닌데 독일에 눌러앉았나?

어쨋든 우리는 동생 오빠사이였다. 선 넘은적 없다.
그래서 위에 말한 사진을 공개한다.
아래 사진보고 아는 사람이면 연락달라고 해주세요.
이름은 강 홍이여요(본명임. 특이하게 이름이 한글자입니다)
그런 기적이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혹시나 해서다.
반달눈으로 눈웃음 치며 생글생글 웃다가 오빠오빠 그러면
내가 녹아내렸던 것 같기도 하다.
그 웃음 다시 한번 보고 싶다.
그리고 일단 너 좀 맞자. 이 자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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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시작한 대학생활.
원래는 81학번인데 암흑기 후 85년부터 대학생활을 했다.
늦은 것 같은데 어차피 남자들은 군대갔다와 복학하니
나중에 보니 동년배들과 엇비슷하게 졸업은 했다.
85년부터 88년. 눈치 빠른 사람들은 바로 알겠지만
가장 격렬하게 민주화운동하는 시기의 한복판을 지났다.
최루탄 매캐한 교정과 거친 투쟁의 중심인 대학캠퍼스에서도
이런 저런 관계들은 이어지고 손글씨도 오갔다.

                   [ 87학번 4총사 : 나이는 6살 차이 ]
여자들은 친한 애들끼리 몰려다니는게 특성인것 같은데
이 넷은 항상 뭉쳐다녔다.
애들이 오면 마치 4각편대가 나를 포위하는듯 했다.
어떻게 친하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오가다 만나면 항상 둘러싸고 이야기 꽃을 피웠다.
어떤, 무슨 이야기를 나누웠는지는 다 잊어버렸지만
우습게도 이런 고민을 나에게 털어놓은게 기억난다.
여대 다니는 친구들은 화장도 하고 옷도 근사하게 입어
그 친구들을 만나면 자주 뒤떨어진다는 생각을 하는데,
우리는 그럴려고 하면 남자들이 지랄해서 그러지 못해 화난다.
(남녀공학에서는 그런 면이 있기는 하다)
그래서 "뭐 어때. 하면 되지"  했더니
어느날 제대로 화장하고, 옷도 근사하게 차려입고 나타났다.
그런데 치마아래의 다리가 이뻐 종아리를 토닥거리다가
매서운 앙탈과 몰매, 집중포화(?)를 당했다.

그런 속없는, 만나면 귀엽다고 빰이나 꼬집고 다니는 나를
그래도 이 그룹은 끝까지 선의의 관계를 유지해줬다.

 

위의 편지가 그애들이 용돈모아 레스토랑을 빌려놓고
생일선물과 함께 준 카드다.
그날이 예비군훈련날이었는데 꼭 끝나고 오라고해서 가보니
깜짝 생일축하파티였다.
"저희 모두 선배님을 몹시 ..함을 알려드립니다" 라고 써있는데
애들은 그 점점(..)칸에 무슨 단어를 대입시키기 바랬을까?

애들을 마지막으로 본 건 한 애가 일찍 결혼해 이 멤버 그대로
집들이를 하는 날이었다.(90년대 초반)
초대해 예전처럼 아무 생각없이 뭉쳤는데
여자 4명에 남자 1명. 늦은 퇴근으로 나중에 합류한 남편.
그런데 나중에 생각하니 그게 묘하게 어색했다.(모양이 좀 이상하다)
그후로 내가 의도적으로 피해 한 두 번 더 봤는지 어쩐지 모르지만
우리들의 돈독한 관계는 끊어졌다.

엄청 세월이 흐른 후 건너건너 들은 이야기로 그 중 2명은
교수같은 것을 한다고 들었다.
그럴만 하다. 애들은 열심히 공부하는 학구파들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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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 명 미 : 너를 서먹하게 한게 뭐였을까? ]
우리 학과는 야간학부가 있었다.
주간과 입학정원도 똑같은데 서로 교차해서 수강할 수도 있었다.
야간은 대부분 직장다니며 뒤늦게 입학한 애들인데
서울여상과 동구여상이 두각을 나타낸다.
지금도 그러는지 모르지만 그 당시에 두 학교는
실업계고교 전국 1, 2위라 대부분 이런 식으로라도 대학진학을 했다.

애도 그 중 한 명이다. 같은 학년인데 나보다는 2살 아래이다.
우리 과는 숫자가 많지 않아 주야간 구분없이 친했다.
동급생이라도 주간여자들은 바로 입학하는 애들이라 대부분 어렸고,
야간은 사회생활하고, 나이도 있으니 아무래도 성숙했다.
쉽게 말해 주간 여자들에 비해 더 여자같은 것이다.
그래서 주간 남자들은 야간을 기웃 거린다. 특히 예비역들은.
뭐, 나도 그 중에 하나일 수도 있다.

어떻게 친해졌는지 모르지만,
어쨋든 야간 애들 중에 제일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남녀관계는 아니고 속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그런데 애가 근본적으로 심성이 착하고, 행동이나 말도 나긋나긋해
우리 과 뿐 만 아니라 다른 과 남학생들까지 눈독 들인 사람들이 많았다.
몸매 괜찮고 패션센스도 있어 눈에 띄니, 찝적거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그럴 때 마다 애가 내 뒤로 숨어 방파제(?) 역할을 해야 했다.
애가 나하고 친하니 애를 어떻게 해보려고
나에게까지 호의를 베푸는 사람도 있었고,
대시하던 사람에게 가벼운 린치까지 당한 적도 있다.
애를 좋아했던 예비역이 술자리에서 슬슬 발동을 걸고 애가 또 내 뒤로 숨으니,
(그전부터 그 사람이 자꾸 추근된다는 하소연을 해서 알고는 있었다) 
술김에 나한테 물리적인 행위를 한 것이다.
집부근까지 쫒아오는 사람도 있어 무섭다고 해
집에도 몇 번 데려다 준 적도 있다.
애가 몸은 다 성숙해 숙녀같지만 겁도 무척 많고, 한없이 여리다.

 

이 편지는 내 생일날 애가 준 카드이다.
그런데 이번에 애가 쓴 글을 보니 애는 나를 오빠라고 불렀나 보다.
우리 때는 여자들이 남자연상들을 오빠가 아닌 형이라고 부르는게 정착되었고,
(같은 학교나 다른 학교나 상관없이 그랬고, 특히 같은 과는 100% 그랬다)
지금까지 애도 당연히 나를 형이라고 불렀다고 생각했었다.
실제로 애도 그런 것 같은데, 다른 것에도 오빠라고 되어있는 것 보면 아닌가?
남들 있을 때는 형이라고 그러고, 둘이 있을 때는 오빠라고 그랬나?
그리고 이번에 안 또 하나의 사실.
내 이름을 길영이 아닌 길녕이라고 표기 한 거.
이것도 실수로 그랬나 하고 다른 것을 보니 그것도 길녕이라고 적혀 있다.
애는 왜 그랬지? 일부러 그러는 건가? 갑자기 궁굼해 지네.

 

그리고 또 하나, 둘 사이에 뭔가 냉각기가 있었나 보다.
카드에 "바라는 그런 애가 되지 못하는게 죄송스러워요"고 써있는데
그 전에 보낸 크리스마스 카드에는
 "무척이나 서먹한 한 해였습니다"란 문구가 있다.
뭔가의 사건이 있었나 본데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안난다.
흐름상으로 보면 86년에 무슨 일이 있어 냉랭해졌고,
(무척이란 표현을 쓴 거 보면 작은 일은 아닌것 같은데 무슨 일이 있었을까?)
87년에 다시 회복되기 시작한 것 같다.
"그런 애가 되지 못해 죄송스럽다" 는 표현을 보니
주제넘게 내가 뭔가 그 애에게 훈계나 질책을 해
서로 틀어져 있었던 것 같기도 하는데.... 뭘까?
"그동안의 일을 사과하고 착한 명미가 되도록 노력하겠어요" 그랬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그때 있었을까?
나이도 있고, 더없이 착한 애라 내가 심하게 압박할 일도,
사과할 만큼의 일을 저지를 애도 아닌데.
둘을 한동안 서먹하게 만든 사건이 이 밤에 참 궁굼하다.

데모하러 나갈 때면 조심하라고, 절대 잡히지 말라고 항상 걱정해주고,
자기는 직장다뎌 돈 번답시고 맛있는 것도 많이 사주었던 애.
모르긴 몰라도 내가 사준 것 보다는 애가 사준게 100배는 많았을 거다. 

애는 졸업 후에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겼다.
졸업 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맞지? 맞나?)
잘 살겠지. 워낙 성격이 좋고, 남을 배려하는 천성이라
애는 무난하게 잘 살것 같다는 생각이 지금도 든다.

 

이 밤에 위에 적은 것처럼 궁굼한게 있어서 애도 사진을 올린다.
둘 사이에 부끄러운 일이나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일이 없었으니,
공개해도 될 듯 싶다.
혹시 애를 아는 사람이 이것을 보는 기적이 일어나
만나게 되면 물어보고 싶어서.(그런데 그런 일이 일어나겠냐?)
내 옆의 청자켓입은 애가 그 애, 주 명미다(왼쪽 2번째)

오늘 다시  보니, 입도 얼굴도 손도 조막만 한데 눈만 땡그랐네.
그 옆의 노란 옷 여자는 그 애의 절친인 노 영미.
이 날이 내 방에서 이루어진 생일파티 애프터인 것 같다.
그런데 위의 애들도 그렇고, 다들 내 생일은 어떻게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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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 * 숙 : 지금도 생각 많이 달고 사냐? ]
졸업 후 갑자기 날아온 엽서.
롤러코스트처럼 사연도 많고 감정기복도 많았던 후배다.
감수성 예민하고 꿈 많은, 막 성인이 된 스므살 청춘의 방황.
문제만 터지면 나를 찾아와 그 감정들 해소시켜주고
눈물 다 닦아줘야 했다.

그러다 보니 애의 이성관계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인생상담, 연애문제, 진로문제.... 주제도 참 다양해
뭐가 터질 줄 모르는 폭탄 하나를 늘 안고 사는 듯 싶었다.
달래고 어르다 보면 훌쩍거리다 여우처럼 웃는데
또 얼마 안 지나 비슷한 문제를 갖고 온다.
한 밤 중에 전화로 몇시간씩 푸념하면 다 들어주고,
어쩔 때는 팔장끼인 채로 학교에서 애의 집까지 걸어가기도 하며,
한없이 이야기를 나누곤 했던 후배이다.

생각이 많고 신경이 예민하여 그렇게 살 팔자인 것 같은 스타일.
얼굴도 전형적인 미인상이어서 인기가 많을 외모라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그리 잡생각을 많이 하고 사는지 모르겠다.
염정아의 얼굴에 턱 깍고 좀 더 동그래지면 딱 이녀석이다.
염정아의 청승버전(청순의 오타아님). 고양이상이다.

 

그래도 졸업한 나에게 잊지 않고 손편지를 보내왔다.
그동안 나에게 부렸던 어리광을 부릴 사람이 없었나 보다.
고학년이 되어서부터는 감정절제하고 많이 성숙해졌을려나?
이 엽서후 한 두 번 만났는지 어쨋는지, 이것도 기억이 전혀 안나지만
애도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겼다.
애 동기들과도 모두 연락이 끊어졌다고 한다.

뭐하고 살려나? 내가 조금 걱정하는 후배.
지팔자 지가 꼬는 스타일이라 가끔씩 걱정이 된다.
모 아니면 도라고 여우상이라, 아주 잘살거나
사연 복잡한 인생을 살거나 중간없는 둘 중 하나의 삶.
조금은 극단적인 인생을 살지 않을까 한다.

*숙아!  쓸데없는 생각버리고 이제는 담대하게 살아라.
우습게도 지금 내가 사는 곳이 그때 너 데려다 준 너희 집 맞은 편이다.
정확히 어느 집인지는 모르지만 근처 지나다니면 네 생각 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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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보니 낯간지럽고 오글거리는 것도 많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미성숙한 시절의 10대 20대의 당시를.

지나가는 고교생이나 대학생들이 얼마나 어리게 보이는지.

그래도 우리는 남을 생각하고 살았던 것 같다.

삐뚤삐뚤한 손글씨처럼 불안정하지만 나름의 애정이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서투른 그 서사와 감성이 지금의 성숙한 우리를 만들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일종의 통과의례)

 

그런데 모르긴 몰라도 나도 어느 정도의 편지를 썼을 것 같은데,

나는 무슨 내용을 썼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게 단 한구절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것도 참, 신기한 일이다.

 

편지는 더 있는데 공개하기 애매한 것도 있고 해서
그것들은 영원히 봉인하기로 했다.
가슴 속에 묻어두다 자연스럽게 잊혀지는게 서로 좋을듯 하여.

이 포스팅도 마음의 변화가 있으면

비공개로 전환하거나 삭제할 수도 있다.

 

부피를 줄일려고 그랬는지 봉투는 대부분 없고 편지지만 있다.
의도적으로 그랬는지 수신처 주소가 다른 봉투들을 몇 개 남겨뒀다.
덕분에 나도 잊어버린 옛 주소들을  알 수 있었다.

이어보니 고등학교때부터 지금 활동공간 이전까지의  주요 궤적들이 그려진다.

(돈암동 누나집, 동방기획, 마지막 전세집, 잠깐 다녔던 두 회사 정도 빠진듯)

 

그런데 나머지 편지들은 다 어디갔을까?
버린 것 같지는 않은데 통으로 전부 없어진 사람 것도 있고, 
지금 남아있는 사람 것도 전부는 아닌 것 같다.
전에 책장 한 개 분량의 책을 기증했는데 거기에 휩쓸려 간 것도 같고.

 

그런데 지금 집으로 이사와서 분명히 본 편지도 찾아보니 없다.
(2000년대에 클래식 사건으로 옛 편지를 한 번 들쳐 본 적이 있다)
그 중 한 애에게

"야, 니가 나 없을 때 우리집 와서 음악듣고 가며 남겨둔 편지,
나한테 아직 있다" 란 말도 했는데.....
(우리 집 아는 애들은 가끔씩 내 방에 들락거렸다)

애 것도 있었으면 한 꼭지 써내려갈 내용인데 사라져 버렸다.
그 애 것 뿐 만 아니라
거기에 같이 들어 있던 사람들의 편지뭉치도 다 없어졌다.
아쉽다. 보이자 마자 그때 스캔해 놓았어야 했는데.

 

대충 보니 손편지는 90년대 초반에 끝난 것 같고,
이후는 삐삐(호출기 012. 015)로

1004(천사), 982(굿바이) 같은 암구호를 남기며 주접을 떨다가
개인휴대전화 시대가 열려 그 후로는 통화로 모든 것을 끝낸 것 같다.
내 기억으로는 90년대 중반부터는
그 이전보다 더 그렇고 그런 관계로 꽁냥꽁냥(?)한 사람들과도
손편지를 나눈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에 따라 인연의 깊이도 슬슬 얕아지고, 세속화되어 간 듯 싶다.


지금 보니 2002년 10월 15일 받은 손편지가 하나 남아있고,
내 기억으로는 2010년에 아주 꼬꼬마(꼬맹이래도 대학생이다)에게 받은
손편지가 남에게서 받은 마지막 것이다.
이것도 분명 책상서랍에 세로로 쑤셔놓은 기억이 있는데
이번에 찾아보니 없다.(어디갔지?)

 

우리는 서로에게 무슨 의미였을까?
우리는 그 많은 날, 서로에게 무슨 생각으로

그 날들을,  어느 하루를 서로에게 주었을까?
더없이 순수했던 날. 서로에게 무엇인가가 되어 위로가 되던 날들.
그 날, 아주 먼 옛날의 흔적들이 이제 바래간다.

그래. 손글씨 주고받은 시절이 어찌보면
우리의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때였는지도 몰라.
내가 그들을 안아준 줄 알았는데
오히려 내가 그들에게 기대였던 것도 같고.

 

한때는 서로를 애타게 하기도 했고,
한때는 서로에게 위로가 되기도 했고,
어느 날엔가에는 세상의 전부이기도 했던 사람들.
그러나 이제는 대부분 그 어떤 소식도 알 길 없는 그리운 사람들.
지금 생각하면 다 고맙고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불안하고 혼돈스러운 시절에 그들이 나를 품어주어
나도 빛났던 것 같다.

                *그녀의 웃음소리뿐-이문세
-80년대 어느 날 밤, 한없이 들었던 그 노래.

-오늘 밤, 편지의 손글씨들이 하나하나 살아나 그들의 웃음소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