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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저편

어느 하루 눈꽃

리매진 2020. 2. 15. 02:23

 

 

 


올해 겨울은 큰 추위없이 무난하게 지나가는것 같다.
덕분에 추위를 잘 타는 나는 잘 지내고 있다.
상대적으로 따뜻한 겨울.
특별히 큰 눈이 내린 적이 없고, 어쩌다 내리는 눈도 금방 녹아
과연 이 겨울에 눈이 한번이나 오긴했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번 주말에 약간의 눈이 내리고 한파가 며칠 있을거라는 예보가 있긴 하지만
내 느낌에 이 역시 큰 문제없이 지나갈듯 하다.
그렇게 올해 겨울은 눈도 없고, 춥지도 않고, 맹숭맹숭하게  지나갈 듯 하다.


그런데 이렇게 맹숭한 채로 겨울이 지나가는 것 같으니 뭔가 좀 그렇다.
말로 표현하기 그런데 조금은 심심하달까.
꼭 권태로운 인생의, 하품같은 단조로움이 계절에도 묻은듯 하여
한편으로는 참, 재미없는 계절이구나하는 생각도 문득 든다.


그러고 보니 함박눈 소담하게 온 날을 본게 언제인지도 모르겠다.
블로그 기록을 보니 2013년 2월 4일 쯤에 큰 눈이 내려 그 눈을 보고
이런 포스팅을 했다.
아마 이후로는 그런 눈을 본적이 없지 않나 싶다.


눈내리는 한밤중-어느새 사평역에 그들과 함께 머물다
http://blog.daum.net/lgy6203/123

 

 

 

옛 기억으로는 눈이 엄청나게 온게 80년대 후반인가에 있었는듯 싶다.
눈이 너무 와 백야현상 비슷하게 생길 정도였으니까.
그날 신이 나 창덕궁(맞나)에 가서 사진을 찍었다.
위 아래 사진이 그날의 기록-지금 봐도 정말 푸근한 함박눈이다.

 

 

 

찾다보니 눈오는 날 오대산 가서 찍은 사진도 있다.
아래 사람있는 사진이 오대산. 정확한 날자는 모르겠다.
아마 이것도 80년대 후반이거나 90년대 초반 쯤일듯 하다.
찍힌 인물은 최진실(최진실이 아직 뜨기 전 이다. 남부군 촬영당시)

 

 

 

아래는 지리산. 파일명을 보니 2001년 12월 30일.
눈이 온다고 해서 찾아간건지, 어떡하다 눈을 만난건지 모르겠지만
달궁쪽에서 자고 다음 날 지리산 눈길을 횡단하여 여수로 넘어간 것 같다.

 

 

 

어느 하루 눈꽃은 2000년대 초반 지금은 없어진 프리챌에서 나의 닉네임이다.
그때 윈앰프로 하는 소규모 음악방이 유행했는데
(음성이 아닌 채팅으로 서로 좋아하는 음악들으며 노닥거리는 것)
입장하니 닉네임을 만들라고 해서 그 때가 겨울이라 순간적으로 만든 것이다.
나는 타이핑이 늦어 당시 유행하던 일반적인 채팅은 안했는데
음악방은 그냥 음악이나 들으며 가끔씩 대화 나누는게 좋아 밤에 가끔씩 참가했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나의 닉네임을 줄여 눈꽃이라 불렀다.
어느 하루 눈꽃처럼 그것도 겨울이 지나 시들해지고, 그 유행도 금방 지나간 것 같다.
어느 하루 눈꽃을 순간적이나마 닉네임으로 지은 걸 보면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눈을 좋아하고 겨울을 좋아했나 보다.

 

 

 그러던 내가 이제는 겨울이 추워서 싫고, 눈이 오면 불편해서 멀리한다.
뽀송한 눈을 밟아 본게 언제이더라.
눈싸움을 한게 언제이고 눈밭에 뒹굴어 본게 언제이더라.
춥거나 눈오는 날은 실내에서 콕 박혀있거나 차창밖으로 바라보는 정도로 만족.
당연히 눈찾아 헤매이는 일은 엄두도 못 낸다.

어느 하루 눈꽃처럼 살고 싶었던 나는 이제 없나 보다.
그런데 춥지도 않고 눈도 없는 무난한 겨울을 지내다 보니
문득 뭔가 이상하고 아쉽다.
감성적으로 말하면 낭만도 없고 재미도 없는 인생을 보는듯 해서
문득 시무룩해진다.


어느 하루 눈꽃처럼 기적적으로 어느 눈오는 날,
눈밭을 걸으며, 얼어가는 뺨을 부비며 벅차하는 날은 다시 안 오려나?
그런 날 다시 한번 나도 어느 하루 눈꽃으로 부활하고 싶다.
어느 하루 눈꽃이 되어 세속의 모든 것을 덮고,

비록 하루나마 온 누리의 눈이 한 번 되고 싶다.


겨울도 거의 지나가는 밤,
내일 밤에 눈이 온다는 예보를 보고 이 눈이 마지막 눈인가하는 생각에
문득 이런 저런 생각이 나서 끄적거려보았다.
그런데 내일, 진짜 눈이 올까? 저녁부터 온다는데.....

 

                *밤 눈 : 최영호 작시/ 송창식 작곡 노래

 

 

 

한밤중에 눈이 내리네 소리도 없이
가만히 눈감고 귀 기울이면

까마득히 먼데서 눈 맞는소리
흰 벌판 언덕에 눈쌓이는 소리


당신은 못듣는가? 저 흐느낌 소릴
흰 벌판 언덕에 내 우는 소릴
잠만 들면 나는 거기엘 가네

눈송이 어지러운 거기엘 가네
눈발을 흩이고 옛 얘길 꺼내
아직 얼지 않았거든 들고 오리다
아니면 다시는 오지도 않지


한밤중에 눈이 나리네 소리도 없이
눈내리는 밤이 이어질수록
한발짝 두발짝 멀리도 왔네
한발짝 두발짝 멀리도 왔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