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
이번에 그 창문을 넘어가보니 지워지지 않은 기억들이,
창문밖에 있던 옛날이 내 가슴에 미적미적 쑥스럽게 고개를 들이민다.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다고,
세월은 가도 사진 속의 사람들은 어제인듯 나를 보고 팔장를 낀다.
언젠가는 한 번 해야되겠다는 일을 이번에 했다.
앨범에 있던 과거 사진들의 스캔.
필름시절 이런 저런 사연들로 찍어 앨범에 있던 사진들을
이번에 큰 마음먹고 다 스캔한 것이다.
2003년부터는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거라 그전까지의 사진들 스캔.
(대략 유아때부터 30대까지, 어찌보면 한세기 전 20세기의 유물이다)
2002년 남미여행까지가 필름카메라로 찍고 인화한 마지막 스냅인듯 하다.
*최초의 내 얼굴
-내 사진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이다.
-어머니와 찍은 건데 몇 살때 인지는 모르겠다.
진작부터 하고 싶었는데 게으름증과 대단한 사진도 아니다는 생각에
늘 미뤄둔 일이었다.
몇 년 전에 고교동기회장이 학창시절 사진들을 반별로 밴드에 올린다고 해서
한 번 고교시절 사진을 전부 스캔해 보낸 적이 있고,
(다들 귀찮아해서 결국 나에게 최종적으로 부탁을 한 것 같다)
아주 가끔씩 옛 자료가 필요해 몇 장씩 스캔한적도 있었는데
이번에 나머지를 다 하니 이게 보통 일이 아니다.
얼추 하루에 서너시간씩, 10일 정도 걸렸다.
전에는 몇 장 아니어서 몰랐는데, 이거 완전히 단순노가다의 전형이다.
중간에 포기할까도 했지만 그래도 끝내고 나니 흐믓하다.
타임머신 타고 옛날로 갔다 온 거 같아 뭔가 아련한 기분도 있고.
*최초의 가족사진
-이 사진은 흑백인가? 컬러인데 색이 바랜 것인가?
-중3때부터 컬러사진이 등장한 것을 보니, 이 사진은 중2때(1976년) 정도인 것 같다.
아마도 대부분 옛날 앨범을 들춰보는 것은 평생 10번도 안되지 않을까 한다.
나 역시도 그런 것 같고.
무거운 앨범을 하나하나 펼쳐보는 것도 번거로운 일이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하나하나 훑어보는 것도 왠지 민망해서 그런 것 같다.
이번에는 사진들을 한장한장 스캔하여 정리하게 되다보니
자동으로 집중하여 보게 되었다.
슬건슬건 봤을 때와는 다른 감정이 사진에서 올라온다.
참, 많은 일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였구나.
*할머니 꽃상여
-1987년. 큰댁에서 전통적인 장례로 천수를 다하신 할머니를 보내드렸다.
-일반 가정의 장례식에서 꽃상여는 당시에도 드물었던 것 같다.
요즘처럼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을 양산하는 시절이 아니었기에
사진을 찍을 정도면 그래도 무엇인가 특별한 사연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거의 다 누군지 알 것 같은데,
이름이 생각나지 않은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특히 단체사진속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연락이 끊겼고,
소식마저 알 길이 없다는 것이다.
특별히 싸우거나 대립한 적도 없는 것 같은데, 그들은 어디론가로 사라져 버렸다.
아니 내가 사라져 버린 것일까?
*10대부터 30대 초반까지의 변화
-증명사진들은 학생증이나 졸업앨범사진들
-첫 사진이 국민학교 때 같고, 마지막 사진이 1993년 5월이다.
무수한 사연들이 스캔한 사진을 타고 추억을 소환한다.
대부분은 감이 잡히는 상황이고, 어떤 사진에서는울컥울컥해진다.
가장 울컥한 것은 벌써 저 세상으로 간 사람들.....
그래도 사진으로나마 남은 사람들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그 시절을 헤매다 보니 사진 한 장 없는 몇 사람이 떠오른다.
각별한 관계였는데도 사진 한장 남기지 못한 누구누구.....
사진속에서라도 남아 있었으면 덜 아쉬울텐데, 연락할 길 없는 그들이 문득 그립다.
우리는 왜 사진 한장도 남기지 못했을까?
후회도 열정도 애증도 아름다움도 모두 지난 일이 된 나의 어느 봄 날들.
계절은 가고 겨울의 초입 선 오늘,
옛 사진들의 속삭임 위로 최성수가 술 한 잔을 건네며 노래를 들려준다.
아름다운 것도 즐겁다는 것도 모두 다 욕심일 뿐
멋있게 늙는 건 더욱 더 어려워.
얼음에 채워진 꿈들이 서서히 녹아 가고 있네.....
*위스키 온더락 (Whisky on The Rock) - 최성수
그날은 생일이였어 지나고 보니 으음 -
나이를 먹는 다는 건 나쁜 것 만은 아니야
세월의 멋은 흉내 낼 수 없잖아
멋있게 늙는 건 더욱 더 어려워
비 오는 그날 저녁 까페에 있었다
겨울 초입의 스웨터 창가에 검은 도둑 고양이
감당 못하는 서늘한 밤의 고독
그렇게 세월은 가고 있었다
아름다운 것도 즐겁다는 것도 모두 다 욕심일 뿐
다만 혼자서 살아 가는 게 두려워서 하는 얘기
얼음에 채워진 꿈들이 서서히 녹아 가고 있네
혀끝을 감도는 Whisky on the rock
모르는 여인의 눈길 마주친 시선의 이끌림
젖어 있는 눈웃음에 흐트러진 옷 사이로
눈이 쫓았다 내 맘 나도 모르게
차가운 얼음으로 식혀야 했다
아름다운 것도 즐겁다는 것도 모두 다 욕심일 뿐
다만 혼자서 살아 가는 게 두려워서 하는 얘기
얼음에 채워진 꿈들이 서서히 녹아 가고 있네
혀끝을 감도는 Whisky on the r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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