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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저편

SANYO AUDIO COMONENT SYSTEM

리매진 2017. 7. 29. 02:25


때가 되면 모든 것은 사라진다. 단지 시간차이가 있을 뿐.
단지 미련이 남아 그 시점이 늦추어졌을 뿐...


얼마 전에 오래 묵은 것 하나를 퇴장시켰다.
SANYO AUDIO COMONENT SYSTEM.
거창한 거 같지만 간단한 일체형 오디오이다.
그래도 있을 건 다 있다

(턴테이블. 더블데크카셋트레코더, 라디오, AUX. PHONO 등)
이걸 한 30여 년을 가지고 있었다.



퇴장이라고 한 건 차마 버렸다는 말을 하기 싫어서이다.
내 방에 나만의 개인 오디오로서 첫 기기.
학창시절에 종로의 세운전자상가에서 샀다. 아마 2,30만 원 정도 하였던 것 같다.
80년대에 대학 한학기 등록금이 50만 원 정도였던 것 같으니
별거 아니지만 나로서는 큰 지출을 한 것이었다.

나름 여러가지 정보를 취합해 일제인 산요를 샀는데

그게 그당시에는 국산보다 월등하다고 해서이다.


무리일 수도 있었지만 그걸 산 거는, 당연히 음악을 듣고 싶어서였다.
그렇다고 내가 무슨 클래식 애호가나, 대단히 음악적 조예가 깊은 것은 아니었다.
난 단지 내가 좋아하는 곡을 언제든지 내공간에서 듣고 싶었을 뿐이었다.


처음에는 오디오 기기도 있으니 나도 클래식에 입문을 해볼까 하고
음대 다니는 다른 대학 여자애(같은 과 여자의 친구)를 소개받아 깔짝거려보았는데
나하고는 안 맞아서 포기-너무 길고 솔직히 지루하더라.
그 때 그 애가 입문용 명곡리스트를 주면서 한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클래식은 공부를 좀 해야 되요.


어쨋든 이 오디오시스템을 낑낑대고 들고와 내 방에 설치하던 날,
거기에 판을 올리니 드디어 소리가 나던 날.
그날은 정말 세상 부러운 것 없이 하늘을 날듯 기분이 좋았던 같다.



생각해 보니 어린시절, 나의 아버님에게도 그런 날이 있었다.
어느날 집에 소위 말하는 스테레오시스템이 떡하니 자리를 잡은 날.
독수리표인지 별표인지 모르겠지만 문짝까지 달린 거의 가구급인
전축(그때는 오디오시스템을 그렇게 불렀다)이 들어오고
아버지는 그날 정말 기분좋은 표정이셨다.
그날이 내가 몇 살 때인지 기억이 안나지만
아버지의 흐믓해하시던 모습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아래 사진이 그 때 전축과 비슷하다)





그날의 나도 그랬었다.
그날은 참으로 아름다운 밤이었던 같았다.
그후 좋아하던 음반들도 사고, 만족스럽게 이용하던 것인데
어느 날부터 이용하지 않아(아마도 90년대 후반부터는 거의 사용하지 않은 것 같다)
쓸데없이 공간을 차지하는 물건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차마 버리지 못한 것은 순전히 알바와 용돈을 모아 사고,
그 젊은 날 나와 함께 해준 정 때문이었으리라.


(무슨 혼령사진같은데 당시 내 방에서 음악들으며 셀카를 찍어본 거)


생각해 보면 감성이 풍부해 터질듯한 시절.
그때 거기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나는 얼마나 많은 위안을 얻고
얼마나 많은 상상의 나래를 폈던가?
밤새는 줄 모르며 음악에 빠져들으며 스스로와 나누었던 대화.

음악의 분위기에 취해 또 얼마나 몽환속을 헤매었던가?
음반 하나 올려놓고 창밖으로 보는 세상은 또 얼마나 색달랐던가?


(방구조를 보니 이건 90년대 초반같다. 이때까지만 해도 자주 애용했는듯 싶다)


그런 날을 함께 해 준 것이기에 차마 버리지 못했는데 이번에 치웠다.
차마 버렸다고는 말하기 싫어 퇴장시켰다고 했다.
SANYO AUDIO COMONENT SYSTEM.

너와 함께해서 나는 기뻤고, 뿌듯했다.
다시는 그때와 같은 감정으로 세상을 못보지만, 그래서 너와 이별을 했지만,
그래도 그 한때 너와 함께 했던 그 파릇한 감정은 내 마음 어딘가에 남아서
그때를 돌아볼 때 아마 너도 떠오를거야.


*고독(1984) : 김도향 & 이화
-그때 참 많이 들었던 곡 중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