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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저편

밀착프린트-사라진 것들을 위하여

리매진 2015. 9. 9. 04:02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
강물이 흐르고 새가 날으던 아득한 옛날부터


장미꽃에 물방울이 맺혀 구르듯
이 세상 천지 모든 것들은
그렇게 둥그러이 그렇게 완벽한 꿈으로 젖어있나니


사라진다는 것 부서진다는 것
구멍이 뚫리거나 쭈그러진다는 것
그것은 단지 우리에게서 다른 모양으로 보일 뿐

그것은 깊은 바다 속의 물고기처럼
지느러미 하나라도 잃지 않고
이 세상 구석구석을 살아가며 때로는 파아란 불꽃을 퉁긴다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김준태 시) 중에서

 

 

어린시절 아모레에서 나오는 향장을 비롯한 화장품회사들의 사외보나
여러 잡지 등에 멋있는 사진과 글들이 있는 페이지들이 있었는데
(포토 포엠 또는 포토 에세이 등이라고 했던 것 같다)
이게 매력적이어서 스크랩을 하기 시작하였다.

아마도 이게 사진에 대한 동경을 한 계기일듯 싶다.


일생의 첫 개인카메라는 부산에 갔다가 분실(도난이 더 맞을 것 같다)하였고,
대학에 들어와 그럴듯한 카메라와 몇가지 렌즈를 구입하고(소위 말하는 필름 SLR카메라 풀세트 구성)
80년대에 열정적으로 갖고 놀았다.
주말이나 방학이면 여행겸 출사로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고,

주중에는 암실작업을 하는 생활이 젊은 시절 한때 반복되었다.

 

그때 찍은 사진들의 밀착프린트들을
(확대인화하기 전에 고르기 위하여 1:1로 썸네일처럼 필름을 인화하는 것)
일부 가지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 옛 회사동료와 사진이야기를 하다가
인화지 박스에 있던 몇 장을 들추어 보았다(한 20년 만에 펼쳐본 것 같다)


남아있는 것들은 거의가 80년대 것이고 일부 90년대 초반 것도 있었다.
오랜 만에 보니 이런 곳도 갔나 하는 곳도 있고,

어느 곳은 분명히 간 기억이 있는데 아예 없어 아쉬웠다.

그나마 있는 것도 세월이 많이 지남에 따라 엉망인데다
이제는 변색되고 화상마저 희미해 무슨 장면인지 모르는 것도 많다.


더 늦으면 이것 마저도 훼손되고 언젠가는 버려질 것 같아
주말을 이용해 스캔을 해 보았다.

다시 한번 그 쪼그만 사진들을 찬찬히 보다보니
2~30년이 지난 풍경들이라 작품성을 떠나 역사성을 지니는 것도 같다.
그리고 왜 그때 더 많이 찍고 인화해 두지 못했을까하는 아쉬움이 든다.

필름도 100피트짜리 사서 필요장수 만큼 말아썻고

필름현상 및 인화도 자가로 해서 비용지출을 줄였지만

그래도 학생때라 경제적인 부담이 있었던 것 같고,

대단한 작품도 아닌 것도 같아 그런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하니 살짝 후회가 된다.

 

옛 사진을 보다보니 여러 잡념과 함께

세상이 많이 변했구나 하는 생각과 사라진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 문득 밀려와
지금과 많이 달라진,  사라진 것들의 모습을 몇 장 추려보았다.
-사진은 블로그프레임에 맞게 자동 리사이징 된것으로 클릭하면 3배정도 커짐.

 


*돈암동 재개발구역
삼선교(한성대입구역)과 돈암역(성신여대입구역)사이 북악스카이 쪽
재개발 이전의 모습이다.
한번 올라가려면 중간 구멍가게에서 하드라도 하나 사 먹고 올라가야 할 정도로
가파른 고지대였는데 이게 사라지고 동소문동 한신한진아파트 단지가 되었다.
동소문동인데 우리는 왜 이곳을 돈암동이라고 했는지 모르겠다.

 

 


*수인선 협궤열차와 소래포구
수원에서 인천까지 다니던 내가 알기로는 국내유일의 협궤열차.
철로의 폭이 좁아서 객실에 의자를 2열 2열로 배치를 못하고
지하철처럼 마주보는 옆으로 긴 의자만 있던 서민들의 보통열차.
고난한 서민들이 발이 되어주며 모든 역에서 정차하고
한참을 가다보면 바다를 끼고 달렸다.
중간인가에 소래포구가 있었는데 내려보면 외지사람들이 거의 없는 바닷가였고,
소금창고와 나룻배들도 있었다.(아래 쪽이 아마 소래포구일거다)
협궤열차는 언제부터인진 사라졌고 소래포구는 이제 사람 바글바글한 시장통이 되었다.

 

 

 

*봉쇄된 교문돌파와 최루탄, 가투
3번이라고 써진 사진은 연대 노천극장에서의 집회와 교문돌파를 위한 공방전이고,
그 아래 사진은 시내에서의(아마 종로) 가투장면이다.
최루탄과 지랄탄, 백골단의 곤봉, 그리고 화염병과 돌이 난무하며

밀고 밀리던, 그러나 결국 밀려야 했던 모습들.
대략 까많게 몰려 있는 사람들이 경찰들이고 하얀색 계열이 학생,
뿌옇게 피어오르는 희끗희끗한 것들이 최루탄 가스들이다.
매캐한 최루가스와 투석의 격렬한 시가전은 이제 사라진듯 싶다.

 

 

 

 

 

*조성만 박래전 장례식
아마 위쪽은 조성만(서울대) 아래쪽은 박래전(숭실대) 장례식인 것 같다.
80년대에는 수 많은 학생들이 이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사라져 나갔다.
그들의 영혼을 달래주기 위한 장례식.
가운데 하얀소복으로 춤을 추고 있는 것은 서울대 이애주교수의 살풀이.
꽃다운 젊음이 사라진 그후로도 많은 사람들은 이땅에서 사라져 갔다.

 

 

 

*하남기와막
왜인지는 모르지만 하남에는 기와공장, 벽돌공장이 여렀 있었다.
대규모의 시설에 나무로 불을 피워 기와를 굽던 곳.

원초적인 냄새와 어떤 패턴이 좋아 이곳과 전곡의 기와막을 여러번 갔었다.
지금은 사라져 이곳이 하남의 어느 곳인지도 모르겠다.
서울과 하남 구시가지 사이였던 것 같은데 아마도 아파트단지로 변했지 않나 싶다.

 

 


*연천 전곡누드
전곡 탱크저지 방어석에서 찍었던 여자누드.
피부나 생긴게 정말 생고무처럼 싱싱한 탄력이 있던 여자.
(이렇게 건강하고 탄력있는 신체를 가진 여자는 이후 95년인가에
전성기의 신은경을 레쎄화장품 작업할 때 만나기 전까지는 보지 못했다)
누드는 이상하게 취미가 없어서 몇 번 찍고 안 찍었는데(일생에 10번도 안 찍은 것 같다)
지인이 교섭해서 테스트촬영을 이곳으로 나갔다.
얼굴도 수준급에 완벽한 몸매인데 왜 옷을 벗었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아마 20대 중후반인 것 같았는데
이 여자의 몸매도 피부의 탄력도 이제는 사라지고 없으리라.

 

 


*시회지구. 오이도.
간척이 끝나 거대한 벌판으로 남아있던 시화지구의 옛 모습이다.
반월에서 오이도까지 간척하여 섬이 육지와 붙어버린 곳.
끝이 안 보이는 황량한 모습에 간척으로 죽어버린 조개껍질이 바둑돌처럼 모습을 드러내고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은 다른 행성같은 풍경.
대낮에도 깊숙히 들어가면 방향을 잃어버려 고생하게 했던 황당할 정도로 넓은 황무지.
그 단순하고 외계스러운 풍경에 빠져 여러 번 찾았다.
그때는 그냥 오이도 가자하면 이곳이었고, 어느 쪽인지 바닷가에 몇 가구가 남아 있어 점심을 해결했다.
이 독특한 풍경도 사라지고, 이제는 아마 시화공단과 주변 아파트단지가 이곳일 것이다.

 

 


*김포 검단
김포 검단에 특이한 곳이 있다고 하여 찾아간 곳이다.
오이도는 찾기 쉬웠는데 이곳은 갈 때마다 입구 찾기에 애를 먹었다.
오이도 쪽은 아무것도 자라지 않은 사막 같은 모습이었는데
이곳은 갯벌의 지형이 남아있고 갈대나 잡풀이 부분부분 무성한
시화와 같은 간척지이면서도 지역의 생태가 달랐다.
이 풍경들도 사라지고 이곳은 어느새 검단신도시로 변해버렸다.
사진에서의 풍경만 사라진게 아니고
같이 출사나갔던 사진 속의 동걸이 형(여자와 같이 있는 사람)도

어느날 저 세상으로 사라져버렸다.

 

 


*최진실
최진실이 뜨기 전의 모습이다.
오대산에서 정지영감독의 남부군 영화촬영 때.
주연도 아니고 조연일 때인데 그래도 얼굴에서 빛이 났다.

이 애가 나중에 그렇게 대성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추위에도 생글생글거리며 이야기를 받아주는게 귀엽기만 했는데
나보다 어린게 스스로 저 세상으로 사라져버렸다.

 

 

 

 


 

이러던 한때의 열정은 취직 후 서서히 사라지고, 카메라 잡는게 뜸해지고,
아예 가지고 다니는 것 마저 귀찮아 어느 순간부터 손을 놓았지만,

그래도 그 때는 꽤 열심히 활동했던 것 같다.

특출나게 실력이 좋았던 것은 아니고,

지금 생각하니 그냥 싸돌아 다니는게 밋밋해 카메라를 가지고 다닌 것 같기도 하다.

(요즘은 89,000원짜리 삼성컴팩트 디카 하나 사서 기념사진용으로 가끔씩 호주머니에 가지고 다닌다)

 

우리는 상전벽해라고 한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한다.
이렇게 지나간 사진들을 보니 그 말들이 맞다.
몇 군데를 빼고는 어디일듯 하기는 한데 정확히 그 장소를 찾을 수도 없다.
어쩌면 그곳은 이제는 내가 간 곳이 아닌 다른 장소일지도 모른다. 의미론적에서는.

 

그러나 김준태의 시처럼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을지도 모른다.
사라진다는 것은 우리에게 다른 모양으로 보일 뿐
이 세상 어느 곳에서 파란 불꽃을 퉁길지도 모른다.


그래도 사라진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은 어쩔 수가 없다.
사라진 것들을 위하여, 그리고 볼 수 없는 그대들을 위하여 제배(祭拜).

그래 어쩌면 이 포스팅은 사라진 것들을 위한 내 방식의 애도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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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지지 않으리(김준태 작시, 이미영 작곡)
-위의 김준태의 시 일부에 곡을 붙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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