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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저편

먼 옛날의 내 목소리를 듣다

리매진 2016. 10. 23. 03:40

 



성*맨션 601호

언덕길을 돌아가다가 보이는 그 곳. 불꺼진 창(이장희)을 보며
나 어떡해(센드페블스)를 외치며. 비극(Bee Gees- Tragedy)에 싸인
섬소년(이정선) 하나가 있었다.

 

새는(송창식) 어디로 날아갔을까?
겨울바다의 파도(이수만)는 왔다가 어디로 부서져 버렸나?
우리의 관계는 바람속의 먼지(Dust in the wind- Kansas)가 되어 날아가 버렸나?

 

목마와 숙녀(박인희)는 안개속으로 사라지고
끝이 없는 길(박인희)은 이제 끝났나?

돌아오지 않는 강(조용필)에 앉아
고래사냥(송창식)이나 불러제끼고
세월아(박인희)를 외치며, 아직도 환상(오정선)을 보고 있는 소년.

 

눈이 내리네(Tombe La Neige- Salvatore Adamo)...
눈이 내리면 지나간 겨울이 더 떠오를듯 하여 가슴 아픈 사람.
그의 나이 18, 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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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오래된,  소중한 추억 하나를 복원하였다.
차마 버리지 못하고 깊숙히 간직해 두었던 오디오 테잎 하나를 이번에 디지털화하였다.
테잎은 훼손되기 쉬워 진작 컨버팅할려고 했지만
내용을 들어 볼 자신(?)이 없어 미루고 미루다 이제야 전환한 것이다.
40여 년 전에 나는 그 테잎에 무슨 짓을 했을까?


고등학교때 그렇고 그런(?) 일이 하나 있었다. 소위 말하는 얼레리꼬레리.
그동안 이런 저런, 그렇고 그런 일이 있었지만
공식적으로는 이게 첫 사랑이지 않은가 한다.

첫사랑의 타이틀을 줄 수 있는 관계는
거의 누구에게나 애닯고, 격정적이고, 주체하지 못하는 감정에 들뜬 행위이다.
나 역시 그러하지 않았나 싶다.


자주 얼굴을 보면서도 718-6번지와 601호 사이를 오가던 편지.
까까머리와 단발머리, 풋풋한 소년 소녀가 두손 잡고 찾아갔던 겨울바다.
천변따라 집에 바래다 주던 그 밤길.
그 사이에 있었을. 이제는 기억도 다  나지 않지만 아마도 애틋했을 대화.
딴에는 심각하고, 뚜욱 뚝 애정에 겨웠던 내용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던 길의 허전함.


그러나 그 끝은 대부분의 첫사랑처럼 생각지도 않은 이별.
그리고 잊혀지지 않는 그리움과 정신적 공황.


그 시기에 그 분의 생일이 있었다.
헤어짐이 애매하고, 감정정리가 되지 않았던 나는 그때 특별한 선물로

내가 DJ를 보며 좋아하던 노래들을 중간중간 끼워 테잎 하나를 만들어 주기로 하였다.


그 때 한밤의 음악방송 MC로 박원웅씨가 있었는데
이 사람이 오프닝이나 클로징으로 음악깔고 멘트를 하면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모방을 한 것이다.
아래  "음악과 시와 낭만"이라는 타이틀의 음반이 마침 그때 나온 것인데
순전히 이 분위기를 따라한 것이다.
-이 분위기의 마이너, 어설픈 버전이 이번에 전환한 테잎내용이다.

-요즘이야 기계와 기술의 발달으로 이게 별게 아니지만

1979년 당시의 상황에서, 특히나 고등학생에게는 실행하기에 힘든 일이었다.

 

 


그때에는 더블테크 카세트데크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멘트용 마이크, 녹음용카세트테크, 플레이용 카세트테크, LP플레이어(소위 말하는 전축)를 준비하고
하루밤 내내 녹음을 하였다.


아주 원시적으로 녹음용 카세트데크의 일단정지를 그때 그때 누르며
마이크, 플레이용 카세트데크, 전축의 라인들을 번갈아 뺏다, 꼈다 하며 했던 작업.
2개 소스의 동시입력은 안되어 멘트할 때의 배경음악은 그냥 밖에다 깔고 했다.


눈썰미 있는 사람은 포스팅 앞부분의 내용이 뭔가 억지로 꿰맞출려 했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맞다. 내용중 가수명과 함께 있는 것이 그때 선곡한 노래들이고
내용은 그 곡명에 기억하는 그날 밤의 감정들을 엇비슷하게 대입해 본 것이다.


그렇게 만든 테잎을 선물로 주고. 하나를 복사해 놓았는데
그걸 이번에 돌려보면서 디지털 파일로 만든 것이다.
아마도 30년 이상 들어보지 않은

(언제 마지막으로 들어보았는지 아무리 기억을 할려고 해도 생각이 안난다)

 40년 가량  깊숙히 처박아둔 테잎.
소리가 날까했는데 그래도 소리가 난다.
40년 전 나의 목소리. 그리고 감정과잉의 멘트들.
소리에 신기해 하고, 그 감정의 편린들에 순간적으로 피식 웃었다.


수록시간 1시간 23분 가량,
다 전환해 놓고 처음부터 끝까지 정식으로 들어보려했는데
쑥스럽고 오글거려 그냥 쭈욱 쭉 서치하며 들었다.
특히 멘트부분의 내 목소리가 어찌나 민망한지. 내용은 더 낯간지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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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날이 있었다.
세상 모든 감정을 하룻밤에 음악과 멘트에 담아 하얗게 불태웠던.
그런 날이 40여 년 전에 있었다.
1979년 6월 어느 날-  어쩌면 그 분은 그날 밤, 나의 전부였을 것이다.

.

 

 

 

세상 모든 것은 사라진다.
세상 모든 것은 잊혀진다.

이 파일도 언젠가는 지워질 것이다. 무슨 사연에서인지.
그 분과의 순정도 무슨 사연에서인지 끝난것 처럼.


그래도 잊지 않고 싶은 기억, 차마 오글거려 제대로 듣지 못한 목소리이지만
그곳에 묻어있는 순정의 편린들은 끝까지 남았으면 한다.

 

문득 그 분이 보고 싶다. 그리고 그 분의 품에서 실컷 한번 울고 싶다.

그 울먹임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지만.

지난 날의 씻김굿처럼 그렇게 울먹이다 보면

 애매하게 정리되었던, 그 감정이 이제는 매듭지어질 듯도 하다.

 

저렇듯 서슬푸른 감정, 아프고 애뜻하고 아름다운,

그리고 어설퍼도 순수한 정열이 또 다시 있을 수 있을까?

 

부질없이 40여 년이 흘러 먼 옛날의 내 목소리를 듣다.
그리고 미칠듯이 많은게 그리워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가을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