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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생각

왜 서점이 낯설고 쑥스러워졌을까?

리매진 2019. 7. 3. 04:17


서점에 가면 뭔지모르지만 그냥 기분이 들뜨고
서가에 꽂혀있는 책들을 보면 흥분이 되던 때가 있었다.
각종 책들은 나 잡아봐라 그러며 유혹하는 것 같았고,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했을 때는 보물을 발견하는 것 마냥 즐거워 했다.
그런 시절이 언제인가 있었다.



지인을 만나 광화문에서 저녁을 먹고
2차로 커피샾 가자는 것을 그냥 야외에서 있자고 했다.
(나는 실내공간이 답답해, 그냥 야외벤치 같은 곳에서 담소를 즐기는 걸 좋아한다)
지인의 단골이라는 프레스센터 지하 찻집에서 음료를 테이크아웃해
시청광장으로 가니, 마침 인디밴드가 공연을 하고 있었다.
잔디밭에 신문지 깔고 앉아 잠깐 공연을 보다가
소화도 시킬 겸 걷기로 하였다.


을지로를 따라 걷는데 묘한 분위기의 디스플레이가 눈길을 끈다.
정체가 뭘까 하고 건물로 들어가 보니 "아크앤북스"-서점이었다.
을지로입구역 부근 롯데호텔 맞은편 부영을지빌딩 지하
(아마 이 건물이 원래는 삼성화재 본사였을 거다)




아크앤북스-처음 가 본 곳인데 컨셉이 특이하다.
단순히 서점이라기 보다는 복합문화공간,
또는 책 보면서 자유롭게 여러가지 할 수 있는 곳.
"독서하며 먹고 마시고 데이트도 하시라" 가 권장사항인듯 하다.
가운데 서점을 배치하고 주변으로 푸드코너 비스므리 한 것들이 여럿 있고
책 뿐 만 아니라 여러 소품들도 있고.....
늦은 시간이라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한 공간에서 다양한 것들이 가능하게
경계를 허물고 풀어놓은 것 같았다.



살짝살짝 구경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무척 자유스럽고 어울리는데
뭔지 모르지만 나는 안 어울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왠지 어색하고 겉도는 느낌.
그래, 나는 언제부터인지 서점이 낯설은 공간이 되어버렸다.


몇 년만에 서점에 들어와 본걸까? 기억이 안난다.
책은 언제 내 돈 주고 사보았던가? 얼핏 기억에 한 10년은 된 듯 싶다.
어떡하다 이렇게 되었을까?
한때는 종로서적, 교보문고를 내 집처럼 드나들고
마음에 드는 책을 찾아 삼만리를 하기도 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는 서점이 이렇게 낯설고 책을 구경하는 것마저 어색해지다니.



폐점시간이 가까워 사람들은 많지않았지만
그들은 다 무척 여유롭고 깊이가 느껴졌다.
마치 자기 집처럼 자유롭게 책을 고르고 느긋하게 책을 보는 사람들.
친구와 연인과 함께 수다를 떨기도 하고, 또는 혼자서 묵상하듯 책장을 넘기는 사람들.
밤 10시를 향해가는 그 시간. 서울 도심 고층빌딩의 지하에서는

나와 다른 사람들이 마치 세상를 관조하듯 책 앞에 있었다.
그리고 나는 왠지 모를 낯설음에 발걸음 마저 조심스러웠다.

(사진은 직원에게 물어보니 찍어도 된다고 해서 찍었다)





이 책 저책 이곳 저곳 구경하다 나의 과거를 아는 지인이 말한다.
"글 한번 써보지 그래요. 책도 한권 내 보고....."
나는 옆에서 머쓱하게 그냥 웃었다.-아, 쑥스러워라.


글도 쓰지 않고 책도 잘 보지 않는 게 언제부터이더라.
물론 요즘도 뭔가를 쓰고, 뭔가를 끊임없이 보기는 한다.
그런데  "진짜 책다운 책"을 본 것은 오래됐고
"진짜 글"을 쓴 것은 더더욱 아주 오래된 것 같다.




서점에 서있는 스스로가 쑥스러운 것은 어쩌면
얄팍한 지식과 잡문으로 그럭저럭 사는 현재의 모습이 부끄러워서 일것이다.
낯설은 서점, 선뜻 다가오지 않은 책들이

다시 나와 대화하며 가슴에 꽂히는 날이

언젠가 나에게도 다시 올려나?




*Moreza - Miss Guitar - Written and Performed by Morez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