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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생각

강이 되어 간다

리매진 2016. 11. 16. 04:21





그것은 강이었다. 사람의 강.
이곳을 가도 사람, 저곳을 가도 사람.
사람들 하나하나가 모여 거대한 강을 만들었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


3시 30분쯤, 광화문역은 미어터질듯 하여 종로3가역에 내려 올라가는데
대학로에서 출발한 어마어마한 시민행렬을 처음에 만났다.
조금 더 가니 탑골공원 앞에서 청소년들이 집회를 하고 있고,

그런데 이것은 겨우 시작에 불과했다.


광화문 광장은 진입이 불가능하여 서울시청쪽으로 방향을 틀었는데
미어터지는 인파로 태평로를 지나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무교동 쪽으로 돌았는데 거기에도 사람들이 꽉차 있고.
겨우 골목골목을 지나 소공로를 가니 그쪽에도.

또 어떻게 어떻게 하여 숭례문에 가니 그곳에는 농민분들이.
숭례문을 벗어나니 조금 숨통이 트이는 듯 했다.




정말 거대한 사람의 강이 그곳에 있었다.
소름끼치기도 하고, 숙연하기도 하고,
행진을 해야하는데 그게 의미가 없어졌다.
걸어서 가야할 코스가 사람으로 들어차 움직일 수가 없는 것.

마치 청와대쪽 댐에 막혀 모인 물이 흐르지 못하고 주변으로 넘치는듯한 장관이 펼쳐졌다.


본 행사 보는 것은 포기하고, 친구 만나 이곳저곳 구경하다가
2부 메인행사장인 광화문광장으 가려 하는데
가다가 보면 막히고, 가다가 보면 막히고 해서 다시 돌아 나와야 했다.
그래서 남대문 시장에서 저녁을 먹고, 을지로 입구, 종각으로 삥돌아 다시 가는데
그때마다 도로 곳곳에서 만나는 엄청난 무리의 사람들.
어떤 행렬이 메인행렬인지도 모르겠고,

끝과 시작이 어디인지도 모르겠을 무더기 무더기의 인파들...
방향이 어디인지도 모르겠고, 어떤 행렬을 따라가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겨우 광화문 광장 근처까지 갔는데 이곳도 진입실패.
포기하고 동십자각으로 해서 경복궁역 부근으로 우회.
세종대왕상 있는 부근이 메인무대여서 그 뒤쪽은 좀 한가할까 했는데
왠걸 경복궁과 그 사이도 이미 사람들로 가득차 있다.

느낌에 광화문과 시청을 기준으로

서울역, 을지로2가, 종로3가, 안국역, 독립문역, 서대문역까지의 반경에는

인파가 거의 채워진 듯 하였다.


 


엄청난 인파로 거대한 축제장 같았던 2016년 민중총궐기의 날.

그곳에서 나는 거대한 사람의 강을 만났다.
한방울 한방울의 물방울들이 내를 이루고 모여 강을 이루듯,

한명 한명의 사람들은 이렇게 거대한 강이 되어 광화문을 흘렀다.

남녀노소가 물결을 이루며 파도가 되어아우성을 쳤다



문득 정인화의 시 "강이 되어 간다"가 생각났다.
여기서 전노협(민주노총 전신)이나 노동관계의 단어를 국민으로 대치하고
이 날의 상황을 대입하면 얼추 맥락이 맞아 떨어지는 듯 하다.


*강이 되어 간다-정인화


우리가 한낱 바람에 흩날리는 빗방울일 때
우리에겐 너희 자본의 나무가 뻗어내린 흡혈의 거대한 뿌리를 향해
머리를 통채 쳐박던 비참한 과거도 있었다.


우리가 한낱 가려린 물줄기일 때
우리에겐 너희들의 조그만 손장난에도 물길이 막혀 썩어가거나
너희들의 품안으로 고이 안겨들며 쓰러지고만 기막힌 추억도 있었다.


 <중략>

그러나 이제 보라. 경인, 호남, 영남의 물줄기.
그 물줄기로 지노협을 치켜 세우고
다시 피투성이 곤두박질 헤쳐모여 드디어 강이 되었다.
우리는 이 강을 전노협이라 부른다.

착취의 성벽 무너뜨릴 거대한 강, 도도한 강. 전노협.

 <중략>


이렇게 우리는 간다.
부수고 뽑아제켜 쳐박으며 쓸어가며, 시퍼런 강이 되어 이렇게 우리는 간다.
붉은해 치솟는 저바다, 노동해방 넘실대는 저기 저 바다
계급도 착취도 없는 저기 저 우리의 바다.
간다. 기필코 간다. 강이 되어 간다





2016년 11월 늦가을.

도시에는 강이 흘렀다.

거리거리를 흘러다니던 강물은 한곳으로 모이다 못해 밖으로 흘러넘쳤다.

촛불은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광장과 도로를 흘러다닌다.


그리하여 우리는 끝내, 기어코 바다에 닿을 것이다.

당신과 내가 기꺼이 저 강물의 하나임을 잊지 않는 한....

간다. 기필코 간다. 강이 되어 간다.





강이 되어 간다 전노협진군가.w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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