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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사담(私談)

신해철-NEXT : 아버지와 나, 그 슬픈 자화상을 남기고

리매진 2014. 10. 30. 01:50

신해철에 대해서 나는 잘 모른다.
나의 신해철에 대한 기억은 20년 전에 끝났으므로 엄밀히 말하면 대단한 팬도 아니다.
그래도 그의 죽음에 감정이 흔들리는 건
스물하고도 더 많은 해 전에 그가 내게 남긴 강렬한 여운 때문이다.

 

*첫 만남; 신해철 2집

90년대 초반 신촌에는 록카페의 바람이 불었다.
주로 신촌역(지하철이 아닌 기차역) 주변, 이대 정문 다리 언덕아래에서부터
연대 정문가는 길(아마 독수리다방 부근)까지 소로에 주로 몰려 있었는데
스탠드나 좌석에서 병맥주 빨다 흥에 겨우면 그냥 일어나 춤을 추는 곳이었다
특별히 무대에서 춤추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있는 자리에서 일어나
또는 좌석 사이로 돌아다니며 자연스럽게 한바탕 춤판이 벌어지는 곳.

 

록카페는 엄격히 말하면 나는 나이제한에 걸려 출입이 불가능한 곳이었다.
아마 20대 후반정도까지가 커트라인이였는듯...
내가 30대 노안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그곳을 출입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그때 나와 친했던 어린 여자애들 때문이었다.
그애들이 자신들이 보호자라고 우겨서 어떻게 들락거렸다.
(어린 아이들이 부모동반하면 출입허용가능하는 것처럼
역으로 생각하면 자신들이 보호자이니 가능하지 않느냐며 몰아부쳐 통과시켰다

-지금 생각해 보니 참 대찬 녀석들...)

그 때들었던게 신해철의 노래였는데 2집이 너무 좋아 앨범을 샀다.

 

*신해철 2집; 재즈카페

 

 

 

*신해철 2집; 다시 비가 내리네

 

 

그런던 그가 N.EX.T(넥스트, New EXperiment Team)라는 프로젝트 그룹을 만들어
다시 내게 다가왔다.
넥스트 1집 HOME은 그 당시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앨범이지 않나싶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이고 신해철의 실험정신이 그대로 녹아 참 독특했던 앨범.
드라이브 하면서 항상 들었던 것 같다

 

 

*NEXT 1집 : 도시인

 

 

 

그리고 그 앨범의 뒷면에 들어있던 아버지와 나  라는 곡.
처음 들었을 때 눈물이 났다.
노래가 아닌 선율과 내레이션만 있던 그 곡.
신해철의 중저음이 한줄한줄 읽어가는 그 가사(?)는 나를 멍하게 했다.
아, 신해철이 그냥 노는 놈은 아니구나...
신해철은 8분 가까운 그곡에서 끝내 나를 울먹이게 했다.

 

*NEXT 1집 : 신해철 작사. 작곡. 노래:- 아버지와 나

 

 

아주 오래전, 내가 올려다본 그의 어깨는 까마득한 산처럼 높았다
그는 젊고 정열이 있었고 야심에 불타고 있었다
나에게 그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었다

 

내 키가 그보다 커진것을 발견한 어느날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서히 그가 나처럼 생각하지 않는다는걸 알았다
이 험한 세상에서 내가 살아나갈길은 강자가 되는것 뿐이라고 그는 얘기했다

 

난 창공을 날으는 새처럼 살꺼라고 생각했다
내 두발로 대지를 박차고 날아올라 내 날개 밑으로 스치는 바람사이로 세상을 보리라 맹세했다

 

내 남자로서의 생의 시작은 내 턱밑에 수염이 나면서가 아니라
내 야망이 내 자유가 꿈틀거림을 느끼면서 이미 시작되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저기 걸어가는 사람을 보라. 나의 아버지, 혹은 당신의 아버지인가?
가족에게 소외받고 돈벌어오는자의 비애와
거대한 짐승의 시체처럼 껍질만 남은 권위의 이름을 짊어지고 비틀거린다
집안 어느곳에서도 지금 그가 앉아 쉴 자리는 없다
이제 더 이상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 아내와 다 커버린 자식들 앞에서
무너져가는 모습을 보이지않기위한 남은 방법이란 침묵뿐이다

 

우리 아버지들은 아직 수줍다
그들은 다정하게 뺨을 부비며 말하는 법을 배운적이 없었다

 

그를 흉보던 그 모든 일들을 이제 내가 하고있다
스폰지에 잉크가 스며들듯 그의 모습을 닮아가는 나를 보며
이미 내가 어른들의 나이가 되었음을 느낀다

 

그러나 처음 둥지를 떠나는 어린 새처럼 나는 아직도 모든것이 두렵다

언젠가 내가 가장이 된다는 것 내 아이들의 아버지가 된다는것이 무섭다
이제야 그 의미를 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그 두려움을 말해서는 안된다는것이 가장 무섭다

 

이제 당신이 자유롭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나였음을 알 것 같다

이제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 있다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랜 후에, 당신이 간 뒤에, 내 아들을 바라보게 될 즈음에야 이루어질까

 

오늘밤 나는 몇년만에 골목길을 따라 당신을 마중나갈 것이다
할 말은 길어진 그림자 뒤로 묻어둔 채,
우리 두사람은 세월속으로 같이 걸어갈 것이다.

 

 


아버지와 나의 가사에서 우리시대의 아버지를 떠울리며 가슴 찡하던 나는
이제 신해철이 느꼈던, 보았던, 그래서 그런 노래를 부르게 했던 그 아버지의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슬프게도 우리 세대 역시 그 가사와 대부분 같은,

너무나 똑같은 자화상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런 슬픈 자화상을 송곳처럼 노래했던 신해철은
그리고 나보다 더 젊은 나이에 며칠 전 저 세상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