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UM 블로그 폐쇄로 TISTORY에 이주당함 자세히보기

*일상과 생각

나를 아리게 한 떡국떡과 배 한알-82세 할머니의 자식사랑

리매진 2014. 2. 13. 03:10

 

할머니는 중년의 아들을 위해 낯선 문을 두드렸다.
떡국떡 한 팩과 배 한알을 가지고.
이 문을 두드리기 위해 그 분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셨을까?
그래도 할머니의 자식사랑은 낯선 공간의 문을 기어이 두드리게 하였나 보다.
우리 부모님들의 내리사랑은 그렇게 황망한 일들을 가능하게 한다.
경외롭다고해야 하나? 안타깝다고 해야하나....


대로변에서 약간 떨어진 주택가에 자그마한 공간을 하나 가지고 있다.
집과 큰길가 사이에 거의 혼자쓰는 공간인데 주로 밤에만 이용한다.
주변사람들과 이야기 할 일도 부딪힐 일도 없이 그냥 조용히 이것저것 하는 개인공간인데
설이 지나고 며칠 후 그 밤에도 혼자 있었다.

그런데 그날 갑자기 어디선가 노크소리가 난다.
누군가의 약속도 없어서 내쪽이라 생각은 안하고 웹서핑이나 하는데
계속 노크소리가 나고 귀를 기울이니 내쪽이다.


문을 열어보니 왠 할머니 한분이 쭈삣쭈삣 서 계신다.
모르는 분이어서 의아해 쳐다보니 잠깐 들어가면 안되냐고 하신다.
얼결에 노인이라 그냥 들어오시라고 했는데 머뭇머뭇거리시며 말을 붙이신다.
옆에는 봉지하나를 들고서...
순간적으로 사무실 다니며 물건을 강매하는 사람들이 생각나 그런 분인가 보다 속단하며
이 늦은 시간에도 다니나 보다 했는데.
자꾸 뭐 하시는 분이냐고 물으신다.
쑥스러워 그냥 나도 머뭇머뭇거리는데 그뒤로 하는 말이 나를 숙연하게 한다.


할머니는 맞은편 2층집에 사는데 늘 내가 저녁때 조용히 와서 뭔가를 하는걸 보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갑자기 혹시 내가 하는 일에 사람이 필요하면 우리 아들 좀 써달라고 하신다.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해서 표정관리가 안되는데 계속 하소연을 하신다.
아들이 44살인데 오래전에 실직후(그전에 무슨일을 했다고 했는데 건성으로 들어 그건 잊어버렸다)
어디서 월세로 힘들게 산단다.
실직기간이 너무 기니 여러 문제가 발생하고, 그래서 어디라도 취업시키고 싶으시단다.


어떡하다 할머니의 가정사를 스팟으로 듣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공무원으로 퇴직하여 연금으로 사는데다

 본인의 2층집 일부를 세까지 주고 있어 사는데 지장은 없다.
딸둘은 근처 아파트에 산다
-이 말은 기본적으로 딸들은 사는데 문제가 없는 가정이다는 뜻에서 한 말씀인듯
-공교롭게도 딸 하나는 나와 같은 아파트이다
아들 한명은 아마도 떡국공장을 하는 것 같다.
그런데 44살의 아들 하나가 안 풀려 어찌해야 할 지 모르겠다.
혹시나 당신이 우리 아들 좀 연관되면 일을 하게 해줄 수 없겠는가?


할머니께서 한 말을 정리하면 대충 이런 것인데
엉겹결에 그런 할머니의 가정사와 부탁을 듣게 되니 나도 얼떨떨해졌다.
그리고 가실때 그 할머니가 주신게

이 떡국떡 한팩과(아마 아들 공장에서 만든 것인듯) 배 한알이다.

 

 

할머니는 82세라 하셨다.
그 연세에 알지도 못하는 남의 문을 두드리게한 힘은 어디서 나온걸까?
아직도 나이에 비해 정정하시고, 크게 고생도 안하신듯한 모습이던데
그 분의 자식사랑은 그 밤 모든 체면을 버리게 하셨나 보다.
본인의 안위는 큰 문제가 없는데,
이제는 모든 것 버리고 편하게 마지막 인생을 사셔도 될텐데
눈에 밟히는 자식 한명 때문에 할머니는 아직도 그 무거운 걸음을 나에게까지 하신 것이다.
어찌보면 황당한 해프닝일수도 있는, 어처구니 없는 경우일 수도 있는 일을
단지 44살 자식걱정때문에 감행하신 82세의 할머니.


가신후 생각해 보니 부모님들의 내리사랑은 우리가 상상했던 것 보다 더 큰 것 같다.
그분의 아들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무슨 반응을 보일려나?


82세 할머니는 오직 자식걱정 때문에 생면부지의 사람을 만나러
낯선 남의 문을 두드렸다. 떡국한팩과 배 한알을 들고..
그 사랑법에 순간적으로 당황하긴했지만 숙연해지기도 했다.
부끄러움도 체면도 버린 할머니의 그 끝없는 자식사랑.....
우리 대부분의 부모님이 그러시듯 이분도 안풀린 자식걱정에 평생을 두고 가슴앓이하다가
편치않는 마음으로 이세상과 작별을 할 것이다.


그런 부모님들의 마음에 우리는 얼마나 부응하고 있는 걸까?
나 역시도 그러지 못해 마음에 묵직한 돌 하나 드러눕는다.
그저 죄송스러울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