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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생각

저 세상 친구에게 번호변경 문자를 날리다

리매진 2013. 12. 17. 04:06

 

 

그동안 쓰던 018번호가 정부통신정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바뀌었다.
이동전화 개통 후 한번도 바뀌지 않았던 번호.
특별히 번호에 애착이 가거나 한 건 아닌데
한번 정이 간 것, 또는 쭈욱 손때 묻은 것을 잘 안 버리는 습성이라
그동안 계속 그 번호를 유지해 왔던 것 같다
멍청하게 통신사도 단 한번 바꾸지 않고 ....
(아니 통신사는 저절로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한솔에서->KTF->KT로 바뀌었구나)

 

 

지금 사용하는 전화기가 3G에 폴더폰(피쳐폰)인데
이게 전화기에 저장된 전화번호가 옮겨지지 않는다고  한다.
번호변경을 3,000건까지 단체문자처럼 보내준다는데 이게 올레 홈페이지에서만 가능.
일일이 치거나  올레주소록에 올려져 있어야만 가능.


귀찮아서 그냥 내버려둘까 하다가 저장된 주소도 한번 정리할 필요가 있을듯 하여
입력된 전화번호를 까보았다.
(지금 전화기에 저장된게 아마 2000년대 초, 또는 중반 정도에 한번 대대적으로 입력하고
그 이후부터 계속 누적되어 나도 안에 어느 정도 누가 저장되어 있는지 정확히 모른다)
전화기 분실하면 연락처 다 날라가 낭패를 보는 것도 자주 봐왔고,
중간점검하는 차원에서 데이트베이스화하여 둘 필요도 있을듯 하여
엑셀로 다시 정리해 보기로 한 것이다.


정리하다 보니 생각지도 않은 번호도 나오고,
아무리 기억할려고 해도 생각나지 않은 사람도 나오고...
굉장히 많은 번호가 있을 줄 알았는데 의의로 1,000명이 안된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부대끼며 살아서 더 될 줄 알았는데.....
그러고 보면 우리는 겨우 1,000여명 남짓한 사람들과 통화하며 사나보다.
이게 평범한 사람에게 많은 숫자인지, 적은 숫자인지 모르겠다.


처음에는 3000건이 무료라서 이 정도로 번호들을 정리하려 했는데
그 이하여서 그냥 대부분은 살려두기로 했다.
사망한 사람들이나 전혀 기억나지 않은 사람들,
오타인지 번호가 불분명한 것들 정도만 정리하고.


그리고 전체에게 번호변경고지문자를 보냈다.
여기까지는 그냥 행정서류처리하듯 도식적인 행위였다.

 

 

 


그런데 하루가 흐르자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
살짝 감상에 젖긴 했지만 당연한 듯 지웠던 이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전화번호.
특히 그 중에 정종태. 좋은 친구였는데.... 법없이도 살, 마음이 따뜻했던 친구.
그리고 또 한명. 자살하기 일주일 전 밤에 나에게 전화를 했던 친구.


그냥 이름만 보면 바로 얼굴이 떠오르는데 그들은 이제 이세상에 없다.
그리고 이렇게 나의 리스트에서도 사라져 가는구나.


편치않은 마음에 다시 옛날 전화번호를 뒤졌다.
그리고 전화번호 변경 알림문자를 추가로 그 친구의 전화번호로 보냈다.
분명 그 번호는 없거나 누군가 다른 사람이 쓸건데 그냥 그러고 싶었다.


그냥 저 세상 친구에게 번호변경 문자를 남겨보았다.
오지 않을 전화이지만, 닿지 않을 것도 알지만 그래도 그러고 싶었다.
그리고 그 친구가 하늘에서 내 번호를 확인하고 씨익 웃고있을 듯 해
가만히 하늘을 쳐다보았다.


서로 다른 세상에 있지만 친구야 잘 지내냐? 나 갈때까지 잘 있으렴.
음울한 겨울하늘은 말이 없고 눈만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