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UM 블로그 폐쇄로 TISTORY에 이주당함 자세히보기

*일상과 생각

나는 잠깐 순간이동하여 딴 세상에 갔다 온 것 같다

리매진 2013. 6. 8. 23:37


생머리 질끈 맨 20대 풋풋한 여선생은 이제 교장선생님이 되어 정년을 눈앞에 두고 있고,
철없이 놀기 바빳던 코흘리개 꼬꼬마는 이제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50대의 장년이 되었다
지나간 40여년, 그 둘은 기나긴 세월을 지나 이제서야 얼굴을 마주했다.

 


보고 싶은 분이 있었다.
국민학교 6학년 때 나를 많이 질책하며 지도하시고 챙겨주셨던 분.
헌신적이고 정열적으로 애들을 가르쳤던 분.
담임선생님은 아니셨으나 그래도 내게는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분이었다.


기억에 가장 남고, 제일 존경하던 분이었는데
내기억으로는 중학교때 마지막으로 뵙고 그후 한번도 찾아뵙지 못했다.
늘 그게 마음에 걸리고, 가끔씩 한번 뵈야지 했는데
이 놈의 다음에, 다음에 병은 40여년을 그런 마음만 간직한 채 흘려보냈다.


그리고 이제야 얼굴을 한번 보다. 참, 긴 시간이 흐른 후에야...
정말 별거 아니고, 이리도 쉬운 일을 왜 그리 머뭇거리고 오랫동안 실행하지 못했는지.


너무 오랜 기간이 지나 아마 이제는 나를 기억하지 못할거라 생각했는데
선생님은 너무나도 정확히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어떤 과거는 나보다도 더 선연하게 기억해 놀라웠다.
그저 죄송스러울 뿐.....

 

 

한적한 시골초등학교는 바람마저 조심스럽게 지나가는 듯하다.
있는 듯 없는 듯 살랑거리는 바람에 고요가 머물고
가끔씩 보이는 아이들의 뭐가 즐거운지 지나가며 내는 까르르 소리......
그 까르륵 거리는 소리와 인사하고 지나가는 꼬맹이들의 모습이 너무 싱그러워 괜히 시큰했다
나 어릴 때도 저랬을까?
저 시간이 내게도 진정 있었을까?
그 긴 시간을 거슬러 다시 한번 그 시절로 가면 나는 행복할까?
운동장을 지나오는데 부질없는 이런저런 국민학교 옛추억 몇개가 떠올라 문득 센치해졌다.


그 꼬맹이가 이제 50대가 되어 그저 먹먹한 가슴으로 옛날이나 추억한다.
(이 초등학교가 모교는 아니다)

 

 


돌아오는 길- 관광지나 특별한 화제가 없는 평범한 시골 면소재지는 더없이 한적했다.
차에 문제가 있어 읍소재지에 수리를 맡기고 온터라 대중교통을 이용해야했다.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도 지나다니는 대중교통이 없다.


마침 길가에 파출소가 있어 물어보려 들어갔다.
파출소장인듯 한 한 사람이 이것저것 물어보더니 곧 마누라가 오니 그냥 그차로 가란다.
아까 만났던 은사님도 잘 아시고..
얼결에 음료수까지 얻어마시고 기다리고 있는데 진짜 파출소장 부인이 온다.
뭐 사양하고 말고도 없다. 그냥 당연스럽게 타고 가게 한다.
그런데 타고 보니 그분 부인이 아까 학교에서 나를 봤다고 한다.
파출소장 부인도 은사님이 계신 초등학교 선생이었던 것이다.


뭐, 이런 경우도 있나? 다 얽히고 설키고,
이분들은 이렇게 지역 공동체를 형성하고 사는가 보다.
아파트 옆 호에 누가 사는지도 잘 모르고(당연히 관심도 없고)
가끔씩 같은 층에서 내리는 이웃을 보며 흠칫 놀라는 내게는
참으로 생경한 모습이었다(당황스럽기도 하고)


그런데 이런 관계를 그분들은 당연하게 생각하는 듯하다.
나만 어색하고 쑥스러워 하는 듯....


오랜시간 지나 은사님을 뵙던 시간은 마치 세월을 거슬러 옛날로 갔다 온 것 같다.
40여년의 세월을 거슬러 과거와도 만나고,
이제는 내 주변에 없는 묘한(?) 인간관계와 선의를 보니 마음이 정화되는 듯하다.
정갈하고 파릇한 초등학교 전경처럼.....
아래 사진 속 팔장끼고 다니는 두 꼬맹이는 어쩜 저리 다정한지.
그 어린시절, 누군가에게 나도 저렇게 다정한 친구였을려나.

 

 

그리고 그날 밤에 돌아온 서울-언제나처럼 혼잡스럽다.
그리고 며칠째 날은 덥고, 거리는 시끄럽고, 이곳저곳에서 전화는 오고.
여러 갈등들로 혼란스럽고....현실은 바로 나를 잡아먹는다.

 

그리고 그 혼동사이로 문득 그 시골학교와 면 소재지 거리가 생각난다.
그 정갈한 교정과 파릇한 나무들.
-그곳에 그 옛날처럼 은사님은 계셨고,
아이들은 조그만 발걸음으로 까르르거리며 지나다닌다.
멀뚱히 있던 시골파출소에는 아무 사건도 일어나지 않을 듯 정적까지 감돌았다.
거리에는 차만 간간히 다니고 서로들 손을 흔들며 동네사람들이 간간히 지나간다.
그 위로 6월의 구름 한점없는 맑은 하늘이 온 동네를 감싸고 있었다.


나는 잠깐 순간이동하여 딴 세상에 갔다 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