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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생각

스스로 이를 뺀다던 그 소녀는 지금 어떻게 살까?

리매진 2012. 7. 25. 01:31


대학시절 명절에 집에 내려갔다 한 아이를 보았다.
친구와 선배를 함께 만나 회포를 풀고 밤이 늦어 다리 옆을 지나가는데
왠 꾀죄죄한 어린아이 한 명이 밤거리에서 떨고 있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4,5학년쯤 되는 여자 어린아이였는데 느낌에 가출소녀의 분위기였다.

 

 늦은 밤중이고 너무 어려 일단 선배의 집으로 데리고 가 밥부터 먹이고, 다음날 부모를 찾아주기로 했던 것 같다.
(지금은 이런 행동을 하기 힘들겠는데 그때는 80년대라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이렇게 했다)

꼬마 여자애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그냥 우물우물거렸던 것 같고
선배집의 분위기가 신기한지 두리번두리번거렸던것 같다.
선배집이 잘사는 집은 아니었는데 늦은 시간에도 먹을걸 내주고 화목한 분위기여서
아마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그런 풍경이라 많이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신상을 파악하기 위해 이런저런 대화를 시도하는데 이 여자애는 계속 명확한 답변을 안했던 것 같고

그때 그 여자 애와 비슷한 나이의 선배 딸이 이가 흔들리고 아프다며 하소연을 했다.
그래서 이갈이 하나 뭐 그런 이야기를 하며, 치과에 가서 빼면 된다고 그런 비슷한 이야기도 하며
어리광을 받아주는데 그 꼬마 애가 갑자기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이빨이 아플때 흔들다가 그냥 내가 빼버린다"
정확한 워딩은 아니지만 이런 비슷한 말을 했다.
자신의 이를 스스로 빼는 초등4학년 쯤 되는 여자아이.

아무에게도 자신의 이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못하고 스스로 뽑아내야하는 아이.


이상하게 나는 그말에 멍해지며 가슴이 너무나 아팠다.
대견한걸까? 아니 나는 이상하게 그게 서러웠다.

 

다음날 나는 서울로 돌아오고 그후 그 아이의 뒷처리를 어떻게 했는지는 모른다.
(좋은 선배와 친구이기에 잘 처리했으리라)
이상하게 지금까지 한번도 그일에 대해 물어본 적도 없고 그것에 대해 대화를 해 본 적은 없다.

그런데 나는 가끔씩 이제 얼굴도 기억 안나고 상황도 정확히 기억해내지 못하지만
그 소녀의 그 말이 생각나고 어떻게 살아갈까 궁굼해진다.

 

보니 어리광 한번 부리지 못하고 어릴 때부터 잡초처럼 자랐을 아이.
흔들리던 이를 스스로 뺄 때 얼마나 아팠을까?
이는 순간적으로 뺀다지만 그 전후의 통증을 그 어린 아이는 어떻게 견뎠을까?
어리광을 부리는 선배의 딸이 얼마나 부러웠을까?(아니 이상했을까)

 

어쩌면 그 아이는 아픔을 스스로 인내하고,  그 어떤 위로도 없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법을
그 어린 나이에 이미 배워버렸는 지도 모르겠다.-그 어린 소녀는 지금 어떻게 살까?

 

 

오늘 문득 그 기억이 다시 난 건 통영초등학생 살해사건의 기사를 보고서이다.(아래 한겨레신문 기사 참조)
조금만 더 아주 조금만 더 배려하고 사랑을 나누어주었다면 이런 불상사는 없었을텐데
그냥 기사를 보니 먹먹하고 안타깝기만 하다

 

나는 가족주의니 혈연이니, 조직이니 그런 걸 별로 안 좋아한다.
특히 제 가족만 어떻게 잘 되길 원하며 유난 떠는 것을 보면 문득 스스로 이빨을 뺀다던 그 소녀가 생각난다.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 버려진 또는 소외된 아이들에 대해
조금만 그 사랑의 일부분이라도 나누어주면 이 사회는 더 따뜻해질텐데.....

세상에 의지할것 없는 배곯던 아이에게 의지하나 되주지 못하고 싸늘한 주검으로 보내버리는 인간들이란,
대한민국은 이렇게 허약한 사회공동체로 성장을 이야기하며
G20이니, OECD 같은 것을 들먹이고 선진국 중 하나라고 오늘도 히히덕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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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독]살해된 통영 초등생, 새벽 5시 전화해 “배가 고파요”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43953.html

 

일용직 아빠는 밤늦게야 귀가/ 새엄마는 한달여전 집 나가
피의자 집에 자주 드나들며 냉장고 음식 꺼내먹곤 해
어려운 환경탓 보살핌 못받고 흉악한 성범죄에 그대로 노출


열살 아이는 “배고프다”는 말을 입에 달고 지냈다. 23일 만난 경남 통영시 산양읍 신봉마을 180여가구 500여명의 주민들은 한아무개(10)양을 ‘배곯던 아이’로 기억한다.

“친구 집에 가서 허락 없이 냉장고 음식을 꺼내 먹어서 동네 미움을 조금 사기도 했지요.” 주민 이서영(가명·62)씨 집에도 한양은 찾아왔다. “토마토 먹어도 돼요?” 이씨는 마당에 토마토를 길렀다. “먹을 걸 챙겨주는 사람이 집에 없어서, 늘 배고파서 그런 거지 싶어 ‘그러라’고 했지요.” 그 뒤 아이는 가끔 이씨 집에 왔다. 방에 들어오진 않고 마당에서 토마토만 따서 먹고 돌아갔다.

나이답지 않게 넉살좋다는 말을 들었지만, 실은 외로운 아이였다. “저녁 6시 전엔 집에 들어가지 않더라고요.” 마을 구멍가게 여주인은 해질녘 당산나무 아래 혼자 서성이던 한양을 기억한다. “새어머니가 6시까지는 집에 들어오지 말라고 했대요.”

친어머니는 한양이 두살 때 이혼했다. 건설일용직 아버지는 새벽같이 일 나가 밤늦게 귀가했다. 하루 6만~7만원을 벌었다. 열살 위 오빠는 새벽까지 동네 통닭집에서 일하고 낮엔 잠을 잤다. 다방에서 일하는 새어머니를 3년 전 맞았지만 “파리채 같은 걸로 늘 아이를 때렸다”고 여러 주민들은 말했다. 그 새어머니마저 한달 전 집을 나갔다.

한양의 아버지(58)는 “먹을 쌀이 없을 정도로 가난하진 않았다”고 힘없이 말했다. 주민들은 “쌀은 있지만, 밥 지어 먹여주는 어른이 곁에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 16일 새벽 4시55분께 한양은 잠에서 깼다. 동네 중국음식점에서 일하는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저씨는 가끔 한양에게 먹을 것을 사줬다. 한양이 전화기에 대고 “배고파요. 밥 사주세요”라고 말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아침 7시35분께 학교로 향하는 마을버스 정류장에 서 있던 한양을 주민 이서영씨는 보았다. 그러나 아이는 학교에 가지 않았다. 담임교사가 한양의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일 나간 아버지는 전화를 받지 못했다. “깨워주는 사람이 없어 늦잠을 자는 편이긴 했지만 결석한 적은 없었다”고 한양의 고모는 말했다.

시골 마을의 작은 버스는 한시간 간격으로 왔다. 늦잠 자느라 마을버스를 놓치면 한양은 주민들의 차를 얻어타고 학교에 가곤 했다. 이날 버스정류장에 서 있던 한양은 김아무개(45)씨의 1t 트럭에 올라탔다. 한양은 김씨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주민들은 “아이가 김씨 집에 가서 냉장고 음식을 꺼내 먹은 적이 있는데, 김씨 아내가 아이더러 ‘우리 집에 오지 말라’고 한 적도 있다”고 전했다. 이날 한양을 차에 태운 김씨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이날 밤 10시, 일 마치고 돌아온 아버지는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

한양에게 필요했던 것은 음식만이 아니었다. 친척들은 “사랑받지 못하고 커서 누군가 예뻐해주고 정을 주면 매우 잘 따랐다”고 한양을 회고했다. 따뜻한 정과 밥에 굶주렸던 아이는 친절한 어른을 잘 따랐다. 배고픔과 외로움은 아이의 약점이 됐다. 이를 악용한 어느 어른은 아이에게 흉측한 손길을 뻗쳤다. 실종 엿새 만인 22일 아이는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이정국 기자, 통영/최상원 김규남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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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 이필원

 

사람들의 마음 한켠에 네가 우두커니 앉아 있을 때

난 소리없이 울고 있는 소년 하나를 본다

그 어둑한 곳에서 네가 조그맣게 노래를 할 때

난 슬프게 울고 있는 소년 하나를 본다

지금 사람들은 무얼 하고 있을까

지금 어둠들은 어디로들 가고 있을까

네가 그 젖은 눈으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볼 때에

난 철길을 따라 터벅터벅 걷고 있는 소년을 본다

 

어느 예배당 모퉁이에 네가 힘없이 서성거릴 때

난 소리없이 울고 있는 소년 하나를 본다

그 십자가 아래서 네가 나를 위해 기도를 할 때

난 슬프게 울고 있는 소년 하나를 본다

지금 사람들은 무얼 하고 있을까

지금 어딘가로 어디로들 가고 있을까

네가 그 젖은 눈으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볼 때에

난 철길을 따라 터벅터벅 걷고 있는 소년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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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이 노래가 생각나 오늘 오랜만에 들어봤다.
이필원의 노래처럼 지금 사람들은 무얼 하고 있을까. 지금 어딘가로 어디로들 가고 있을까?

 

스스로 이를 빼야만 했던, 밤거리 헤매던 그 어린 소녀는 지금 어떻게 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