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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사담(私談)

봄날은 간다

리매진 2012. 5. 23. 01:44

 

벌써 봄이 다 간건가? 어버버 하는 사이에 벌써 날이 덥기 시작한다.
언제부터인지 봄은 온듯 하면 벌써 지나가고 있다.
아, 이제야 드디어 봄이 왔구나 하는 순간, 뭐 좀 느낄려 하면
어느새 그해의 봄은 저멀리 가고 있다.

 

 

고등학교때 음악실로 이동수업하러 가면서 보던 학생탑과 중정의 그 하얀 목련꽃
-정말 그 목련꽃 그늘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고 싶었다
언젠가 하동에서 산청가는 길에서 만났던 시골 학교의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왕벚꽃.
-그 거대한 벚꽃나무 아래서 커피한잔 끓여마시고 한없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벤치에 누워있으니 떠나기 싫은 마음에 그대로 잠들고 싶었다.

 

늘 봄이면 여기저기 핀 꽃들을 바라보며 망연히 무언가를 그리워했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이 꽃은 너무 빨리 지고 현실은 언제나 아득해서 착잡하다.
어릴 때는 여린 감정에, 나이를 먹어가면서는 아쉬움으로 이 현상은 늘 반복된다.

 

항상 5월이면, 봄이 가버리는구나 생각이 들때면 더 가슴에 닿는 노래.
봄날은 간다.
제목만 같고 다른 곡인것도, 같은 곡인데 가수만 다른 것도 다 가슴을 아리게 한다.
들으면 눈감으면 뭔가 모를 아쉬운, 가슴저린 사연이 떨어지는 꽃잎따라 흩어지는듯 하다.
이렇게 음악이 마음을 울리는 걸 보니, 어쩌면 곡을 만든 그들도 봄마다 나처럼 앓았나 보다.

 

------------------봄날은 간다; 자우림 김윤아 버전(영화 '봄날은 간다' 中에서)------------

 

 

 

 

눈을 감으면 문득 그리운 날의 기억 / 아직까지도 마음이 저려 오는 건

그건 아마 사람도 피고 지는 꽃처럼 / 아름다워서 슬프기 때문일 거야, 아마도.

봄날은 가네 무심히도 꽃잎은 지네,  바람에 / 머물 수 없던 아름다운 사람들

가만히 눈감으면 잡힐 것 같은 / 아련히 마음 아픈 추억 같은 것들

봄은 또 오고 꽃은 피고 또 지고 피고 / 아름다워서 너무나 슬픈 이야기

봄날은 가네 무심히도 꽃잎은 지네, 바람에 / 머물 수 없던 아름다운 사람들

가만히 눈감으면 잡힐 것 같은 / 아련히 마음 아픈 추억 같은 것들

눈을 감으면 문득 그리운 날의 기억 / 아직까지도 마음이 저려 오는 건

그건 아마 사람도 피고 지는 꽃처럼 / 아름다워서 슬프기 때문일 거야, 아마도

 

 

----------------------심성락; one Fine Spring Day (영화 '봄날은 간다' 中에서)---------------------

 

역시 영화 '봄날은 간다' 中에서 나온 곡인데 잔잔한 아코디언연주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봄꽃아래 나른하게 있는듯 한 느낌을 준다.
무려 1936년생이신 심성락의 연주에는 그 깊은 연륜이 묻어 있는듯 해 좋아한데
특히 이분의 정규앨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 수록되어 있는 곡은 다 좋다
One Fine Spring Day도 이 앨범에 수록되어 있다

 

 

 

 
-------------------봄날은 간다; 한영애버전-----------------------

 

원래는 원로가수 백설희가 부른 곡을 한영애가 리메이크 했다.

 

한영애의 약간은 퇴페적인 분위기와 걸출한 목소리가 조화를 이루어 감칠맛 나는 한탄을 토해낸다
워낙 오래 전에 만든 곡이라 가사는 당연히 신파조인데 그 신파조가 묘하게 더 큰 울림을 불러온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 날은 간다

열아홉 시절은 황혼속에 슬퍼지더라
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봄날은 간다; 장사익버전----------------------

 

어찌보면 한영애버전보다 더 봄날은 간다의 정서를 잘 살린 것 같기도 하다.
봉건적 잔재가 남은 시대의 춘정에 못이긴 어느 처자의 아픈 정서가 그대로 전해진다.
어쩌면 가사 속의 그 처자는 가는 봄날에 지는 꽃잎을 보며,

 

자신의 감정을 못이겨 스스로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노래를 듣다 보면 그 옛날 이름모를 누이의 옷고름이,

그 옷고름으로 참고 참았던 눈물을 닦는 모습이 연상된다.

 

떨어지던 꽃잎 아래 울먹이던 그 열아홉 소녀는 어떻게 되었을까?
 

 

 

김윤아 버전에서는 뭔가 쿨하고 달관한 듯한 느낌에서 오는 시크하고 정갈한 그리움이.

심성락의 아코디언 연주에는 느리게 시골길을 걷는 어느 쓸쓸한 사람의 발걸음이,
한영애/장사익 버전에서는 앳띤 소녀의 흐느낌이 그대로 들리는 듯 한,

 

그 여러 사연들의 애절함이 묻어나는 봄날은 간다.
버전과 곡은 달라도 이 봄, 가는 봄날에 들으면 그 아련함에 한참을 먹먹하게 하는 음악.
봄날은 간다...

그리고 올해 나의 봄날도 이렇게 가고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