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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사담(私談)

부용산 저 멀리엔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슬픈 연가 부용산

리매진 2012. 10. 10. 01:47

 

며칠 전 신문기사를 보니 한영애가 잊혀졌던 노래 부용산을 부른단다-처음 들어보는 노래제목이다

시대의 아픔이니, 슬픈 연가니 등의 기사들을 보고 호기심에 곡을 한번 찾아보았다.

아, 좋다-별거 아닌 소품 같은데 이상하게 기품있고 싸한게, 슬픔을 엄숙하게까지 한다

 

그런데 이 노래가 꽤 된 것이다.

그동안 구전으로 전해온 것을 이동원, 안치환 등이 불러오기도 했다는데

나는 왜 한번도 못 들어보았을까?-제목마저도 처음 듣는 것이다.

 

보성 벌교사람들이 '절산'이라 부르는 부용산 자락에 누이를 묻고 돌아오면서

푸르디 푸른 하늘을 다시는 바라볼 수 없는 누이동생이 안스러워 박기동씨가 쓴 시에


엄마야 누나야 의 작곡가인 안성현씨가 사랑했던 제자 김정희(항도여중 3학년)양이 폐결핵으로 죽자

안타까운 마음에 곡을 붙여 만들었다는 노래.


*부용산(박기동詩/안성현曲)


부용산 오리길에 잔디만 푸르러 푸르러

솔밭 사이 사이로 회오리 바람 타고

간다는 말 한 마디 없이 너는 가고 말았구나

피어나지 못한 채 병든 장미는 시들어지고

그 향기롭던 너의 꿈은 간데 없고

돌아서지 못한채 나 외로이 예 서 있으니

부용산 저 멀리엔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그리움 강이 되어 내 가슴 맴돌아 흐르고

재를 넘는 석양은 저만치 홀로 섰네

백합일시 그 향기롭던 너의 꿈은 간데 없고

돌아서지 못한 채 나 외로이 예 서있으니

부용산 저 멀리엔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1940년대 후반에 대단한 인기가 있는 노래였는데 6.25 전쟁후 지리산으로 숨어들었던 빨치산들이

노랫말이 애절한데다 자신들이 놓인 처지와도 흡사하여 애창한 덕에

가장 오랫동안 금지곡이 되었다고 한다.

누이동생의 죽음을 슬퍼한 죄밖에 없는 박기동 시인은 이런 사연으로 정부의 수난에 못이겨

결국 호주로 이민을 가야했단다.


*부용산-한영애 버전

(아래 링크에서 들을 수 있다-유투브에는 없음)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9&articleId=215801


그런데 찾다보니 정작 한영애 버전보다 윤선애의 버전이 더 마음에 든다.

앞의 반주가 꽤 길고 가사는 더 짧은데 왠지 더 진솔하고 애잔한 느낌이 있어 좋다.

(가사가 부르는 가수마다  조금씩 다르다)

 

*부용산-윤선애 버전

 

 

 

*인터넷에서 검색한 노래의 히스토리

일본 관서대학 영문과를 졸업한 박기동(1917~2004)은 1948년 목포 항도여중에서 교사로 재직 중일 때

자신의 누이동생이 자식을 낳지 못한 채 24세에 폐결핵으로 요절하자

벌교사람들이 '절산'이라 부르는 부용 산 자락에 안장하고 돌아오면서 누이를 추모해 지은 시였다.


박기동시인과같은 학교항도여중에서 음악교사로 재직 중이던

월북음악가 안성현이 16살 애제자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상여가 나가는 소리를 듣고 선율을 붙였다.


"엄마야 누나야" 작곡가로 우리에게 친숙한 작곡가 안성현씨가 6.25전쟁 중에 방북 하였다가

9.17 인천상륙작전으로 목포에 돌아오지 못하고 북한에 억류된 뒤에

월북의 오해를 받는데다가 유독이 지리산 빨치산과 좌익들이 즐겨 불렀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되었다.


1960~80년대 운동권, 진보 지식인들에게 작자 미상의구전가요로 알려지면서 애창곡으로 명맥을 이었고,

1997년 가수 안치환의 음반으로 정식 발표된 이 노래는 그 동안 구전으로만 전해와

상당부분의 가사와 박자가 변형되어있었는데,

항도여중 출신 경기대 김효자 교수(93년 동국대 철학과 정교수로부터 동문회모임을 통해 건너 받게 되었다고 함)가

작곡집을 보관하고 있음이 알려지면서 원곡의 악보와 가사가 밝혀지게 되었다.


1999년 목포의부용산 살롱음악회를 시작으로 벌교 부용산에 정자와 시비가 세워졌고, 
2001년 호주에서 생활하던 박기동시인이 2절을 작성 부용산 노랫말을 완성하였다.
목포여고 교정에도 부용산 노래비(2002년 4월)가 세워졌다.

아무튼 1945년 해방 이후 전라도 목포 벌교 지역에서 많이 불리었고

48년 이후 빨치산들의 애창곡이었다는 이유로 부용산은 한때 금지곡이 되기도 했었다. (정인)

 

 

*부용산-안치환버전

이곡이 원래 오빠의 마음이고 남자의 마음이어서인지 안치환버전도 애닯다

 


24세 꽃같은 나이에 저 세상으로 간 누이동생을 묻고 오는 길에,

중학교 3학년 애제자의 요절에 안타까워했던,

그 가슴 저렸던 아픔은 이렇게

슬픈 금지곡의 역사를 지나 이제 세상에 빛을 보는구나.


그 아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잔디는 그저 푸르기만 했구나, 하늘은 푸르기만 했구나. 무심히...

부용산 저 멀리엔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