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이전 포스팅에 김수철을 다루면서
그가 담당했던 서편제 영화음악의 LP음반도 소개했다.
-소장LP이야기31-김수철( https://lgy6203.tistory.com/333 )
나이를 먹은게 자랑은 아니지만
가끔은 그동안 안 보이는 것을 보게 한다.
세월이 지나서야 얻은 감동들.
철없던 시절에는 보지 못한 것들이 가끔씩 보이는데
서편제, 이 영화도 그 중의 하나이다.
생각난 김에 다시 한 번 보고 쓰는 영화 서편제에 대한 이야기.
개봉 당시에 바로 서편제 영화를 보았는지,
아니면 비디오로 보았는지 정확한 기억은 없다.
개봉관인 단성사의 간판이 떠오르고,
영화음악 음반까지 구입한 것을 보면 보기는 본 것 같은데
특별한 영화로 생각을 한 것 같지는 않다.
이후 그냥 창(唱)하는 사람들의 애환을 그린 영화 정도로만
기억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개봉 후 20년 이상이 흐른 2010년대의 어느 날,
무슨 바람이 불어서인지 이 영화를 다시 봤다.
그리고 ‘아, 명작이구나’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한물간 전통 문화의 향수를 자극하는 영화가
어떡하다 히트친 것이겠지 않나 하는 생각도 있었던 것 같은데
이 영화는 그런 차원의 영화가 아니였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개봉당시에는 영화가 좀 지루하고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정말 진득하게 스토리를 잘 풀어냈다.
깊은 울림,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영화다.
그리고 임권택 감독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영화소개 페이지-나무위키
https://namu.wiki/w/%EC%84%9C%ED%8E%B8%EC%A0%9C(%EC%98%81%ED%99%94)
참, 잘 만든 영화다.
이런 영화를 그저 그런 영화로 치부한 내가 부끄러워졌다.
단순히 낡은 것, 지나간 것에 대한 헌사나 아쉬움이 아니라
인간사, 애환과 회한이 그 속에 깊숙이 내재되어 있다.
아마도 나는 개봉 당시에만 해도 젊어
그 깊이를 헤아리지 못하고 지나치지 않았나 싶다.
그후에도 몇 번 더 보았는데 그 깊은 맛에 감탄하고 한다.
내가 무슨 판소리를 알고 그런 사람이 아닌데
거의 들어보지 못한 창과 가락에 저절로 젖어들곤 한다.
우리의 전통적 소재와 정서, 예술혼과 장인정신을
이렇게 감동적으로 풀어낸 영화가 또 있을까?
재미있는 것은 나는 이 영화가 2시간이 훨씬 넘은 영화인 줄 알았는데
2번째 볼 때 확인해 보니 2시간이 안되었다(1시간 53분)
3번째 볼때는 영화가 왜 이리 짧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영시간은 똑같은데 순식간에 보는 것 같아
뭔가 빠졌나 할 정도로 끝남이 아쉬울 정도였다.
*서편제(1993) 복원본
-한국영상자료원 유튜브 / 한국고전영화 채널에 올라와 있다.
-성인인증을 요구할 경우 핸드폰으로 간단하게 인증받으면 된다
이 영화처럼 많은 세월이 지나 다시 보다가 그 진가를 알게된 영화가 또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메릴 스트립가 출연한
1995년작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와
1997년작 일본영화 <실락원>이 그런데
그럴 때마다 나의 정신적 미숙함을 반성하곤 한다.
딴에는 정신적으로 남보다 성숙하려고 노력했는데
이런 걸 보면 나는 한참 부족한 인생을 살았나 보다.
뒤늦게야 이런 서사를 이해하고 가슴에 들어오는 걸 보니.
가끔 영화나 소설속 주인공이 어떻게 되었을까 궁굼한 인물이 있다
<서편제> 속의 송화(배우는 오정해)도 그중의 하나다.
영화의 마지막에 송화는 의붓남동생인 동호와 판소리를 통해서
무언(無言)의 재회를 하게 되었지만 서로 모른척 한다.
그리고 길잡이 노릇을 하는 어린 여자아이와 눈내리는 둑방길을 따라
또 어디론가 떠나며 영화는 끝난다.
이제 창을 부르지 않은 시대에 허름한 시골술집에서 기거를 하던 송화,
송화와 의붓남동생인 동호는 왜 서로를 눈치채고도 모른척 했을까?
송화는 왜 그곳마저 떠났으며, 눈길따라 갔던 곳은 어디였을까?
시대가 바뀌어 아무도 찾지 않은 소리꾼 송화는 그후 어떻게 되었을까?
마지막으로 살포시 의붓동생을 올려다 보며, 송화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한마디 말이 없지만 참으로 많은 생각과 복받친 감정을 내포하고 있는 장면이다.
그녀는 그날 의붓남동생과 장단을 주고 받으며 한을 다 풀어냈을까?
눈물나는 대목이다. 가슴이 아리다 못해 숨이 멎는다.
위 장면이 영화의 거의 마지막 부분이다.
대사는 오정해이지만 창의 소리부분은 안숙선이고,
영화 마지막까지 나오는 소리는 김소희선생의 구음이라고 한다.
(다른 창은 오정해가 했지만 이부분은 그 깊은 맛을 살리기 위해
더 나은 명창 두 분을 썻다고 한다.)
그 구음의 애절함을 따라 눈은 내리고
오정해는 꼬마와 둑방길을 따라 어디론가 걸어간다.
그리고 나는 가끔씩 을씨년스러운는 들판을 보면
내리는 눈발아래 멀어져 가던 송화와 소녀가 생각나 울컥하곤 한다.
송화는 어디로 향했을까?
송화는 그후 어떻게 되었을까?
'*영화와 잡설(雜說)'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연이 없으면 아픔도 없다-내츄럴 시티(2003년) (0) | 2022.08.26 |
---|---|
클래식(The Classic , 2002)- 순수한 시대의 때 묻지 않은 사랑 (0) | 2021.09.12 |
60년대 추천 한국영화-오발탄(1961), 안개(1967), 휴일(1968), 수학여행(1969) (0) | 2021.02.05 |
1950~60년대 옛날 한국영화를 보다 (0) | 2021.01.31 |
한여름에 다시 본 겨울여자(1977년작) (0) | 2020.06.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