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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잡설(雜說)

인연이 없으면 아픔도 없다-내츄럴 시티(2003년)

리매진 2022. 8. 26. 04:55

"R과 함께 했던 시간 652일
앞으로 볼 수 있는 시간 78시간 12초, 11초...
몇 일 남았어? 니 수명 말이야.
....3일
리아야... 3일 뒤에 우린 무요가를 타고 있을 거야.

기억도 추억도 없는 곳으로 가는 거야.
추억이 없으면 고통도 없으니까"

내츄럴시티라는 영화의 첫 장면에서 나오는 자막이다.
나는 이 구절 뒤에 한 줄을 더 보태고 싶었다.
"인연이 없으면 아픔도 없다"

 

         *내츄럴 시티(Natural City), 2003년 제작(감독 : 민병천)
오랜 기획과 긴 제작기간. 엄청난 제작비를 투입하고도
망작(亡作)이 되어 버린 SF영화.

영화를 보면 만드느라 참 고생많았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개인적인 평은 블레이드러너의 한국판을 꿈꾸었던 것 같고,
한국영화에서는 드문 사이버펑크 분위기에 공상과학을 버무려
허무한 세계관을 담은 것 같다.

 

대략의 분위기나 스토리는 영화 OST - Main Theme를 배경음악으로 만든

유튜브영상에 잘 나타나 있다
인간의 삶을 얻으려는 사이보그를 처단해야 하는 임무를 맡고 있는
미래 경찰(MP) 유지태(R 역)는 사이보그 서린(리아 역)과 사랑에 빠진다.
서린은 유효기간 만료일을 앞둔 시한부 로봇.
이들이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은 단 열흘 뿐.
유지태는 서린의 생명(활동 기간)을 연장시키기 위해
위험한 거래를 시작하며 늪에 빠지고 마는데...

 

 


흥행에 실패한 대작(?)을 갑자기 꺼낸 것은
영화 첫 장면의 자막이 또 다시 다가와서이다.
그래서 다시 봤다.
"기억도 추억도 없는 곳으로 가는 거야.
추억이 없으면 고통도 없으니까"

무슨 메시지처럼 모든 기억을 버릴려고 하는 것 같지만
영화에서 실상은 기억을 부여잡으려는 지난한 노력들이 펼쳐진다.
영혼 더빙으로 기억메모리칲을 이식하면 그 사람(또는 사이보그)은
기억메모리의 영혼을 갖게 된다.
그 메모리만 있다면 그 기억으로 사람(또는 사이보그)은 영속되어 진다.

그러나 영화는 영속을 거부한다.
결국 주인공이 사랑한 여자(사이보그)는 연인의 기억이 제일 많은
메모리를 스스로 빼 버리고 고철이 되어버린다.
그 기억의 무게를, 추억을 감당하지 못하고 사라져 버리는 것을 택한 것이다.
그리고 그 메모리칩은 죽은 주인공의 무덤에 합사된다.
그렇게 그들의 사랑은 완성된다

.

사랑했지만 그 기억들을 버린, 그래서 사랑이 완성되는
참으로 모순적인 화두를 쌩뚱맞게 SF에 담아낸 내츄럴시티.
그들은 더없는 사랑과 그리움으로 몸부림 치지만 결국은 잊으려 한다.
모든 추억과 기억을 지우려 한다.
기억도 추억도 없는 곳으로 가려한다.


그 사랑의 무게가, 처연함이 느껴져 감히 나도 한 줄 보탠다. 
인연이 없으면 아픔도 없다.
사랑이 행복인 줄 알았는데, 인연이 즐거움인 줄 알았는데
그게 결국 아픔인 줄 알아 버려서.

늘 세상은 더 사랑해서 더 좋은 관계여서 아팠다.
기억도 추억도 사랑도 없었다면
무생물처럼 감정동요없이 살았을텐데,
인연은 자꾸만 서로를 그리워하고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세상은 영원한게 없어 마음 아프고,
결국 우리는 그 기억에 허우적거리며 고통받고 있다. 

 

R(남자주인공)의 무덤에 리아(여자주인공)의 메모리를 합사하며 이재은이 하는 말.

"너는 좋겠다.
함께 있어주고 함께 떠나주는 사람이 있어서...."

 

그들은 죽어서라도 무요가를 탈 수 있었을려나?

그곳에서 그 남자를 기억할까? 그 여자를 사랑할까?

 

          *무요가(영화 "내츄럴 시티" OST)-차은주
-무요가는 영화에 등장하는 공중 비행선. 
 현실의 디스토피아와 다르게 무요가에 탑승하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한다.

 


바람이 불어 너의 옷깃 사이로
언제나 그렇게 느꼈으니
꿈처럼 지나간 시간끝에서
너 떠난 하늘을 바라볼테니
얼마나 그리워 저 하늘 날아서
영원한 날들을 함께 할테니
그 모든 기억이 없는 그곳 그곳으로

세월이 흘러 바람 다시 느끼면
언제나 내곁엔 너일테니
꿈처럼 지나간 시간끝에서
너 떠난 하늘을 바라볼테니
얼마나 그리워 저 하늘 날아서
영원한 날들을 함께 할테니
얼마나 기다려 너 있는 곳에서
영원한 꿈들을 함께 할테니
그 모든 기억이 없는 그곳 그곳으로
그 모든 기억이 없는 그곳 그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