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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잡설(雜說)

1950~60년대 옛날 한국영화를 보다

리매진 2021. 1. 31. 03:38

황량한 산하. 어디인지 알수 없는 거리들. 

그 배경들 사이로 낯간지러운 대사들.

남녀가 만나면 곧 이어질 듯한 나 잡아봐라.

5~60년대, 그들의 낭만과 꿈, 아픔,  희노애락이

흑백의 어두운 화면에서 간신히 살아남아 나를 반세기 전 옛날로 초대한다.

 

개인적으로 아주 단순한 데이터베이스 작업을 할 일이 생겼다.

크게 신경쓸 일도 없고 부담도 없는 아주 단순반복적인 일.

(그러나 양은 많아 시간은 잡아 먹는다)

그냥 컴퓨터 앞에 주구장창 앉아서 하면 되는데

그걸 무상무감하게 하는 것은 왠지 시간이 아까울 것 같았다.

이럴 때는 일반적으로 음악을 들으며 하는데,

이번에는 한번 그동안 못보았던 고전영화와 함께 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집중해서 할 일도 아니고 곁눈질하며 해도 충분한 상태라

ASMR처럼, 또는 옛날 라디오 연속극 듣는 것처럼 해보기로 한 것이다.

모니터 한켠에 작은 화면을 띄우고 슬금슬금 보며 그렇게 약 한달,

하루 2~3편이니 약 50여 편 이상을 섭렵한 셈이다.

 

그동안 내가 70년대 이전 한국영화를 본 것은 아마 5편도 안될 것이다.

본 것도 본 건지 아닌지 가물거리니, 어쩌면 다 이번에 처음 본 영화인 셈이다.

아마 본 것도 스킵하며 봤지. 처음부터 끝까지 정속으로 본 것은 없는 듯 싶다.

재미도 없고, 화질도 안 좋고, 대사나 연기도 이상해

아마 보다가 쭈욱 죽 넘기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이번에 마음을 비우고 가벼운 마음으로 보니 이거 은근 재미있다.

언제부터인지 또 다른 영화를 빨리 보고 싶어하는 나를 발견했다.

 

이번에 본 영화의 시대는 내가 국민학교도 들어가기 전이 배경이다.

나는 국민학교 입학 전의 기억이 몇가지 밖에 안되고, 그 당시를 알수가 없는데

그래도 이상하게 그 옛 풍경풍경들이 시린 추억처럼 다가온다.

거리풍경들이 나오면 크게 해놓고 이게 지금 어디일까 추론해 보았는데

남대문이나 시청본관, 서울역 등이 나오지 않는 한 거의 장소를 특정할 수가 없었다.

50여년 동안 참 많이도 변했구나.

 

그 당시에 오픈세트를 지어 촬영했을리가 없으니

장면장면이 바로 그 시대의 풍속화가 되었다.

옛 정취와 풍경. 그걸 느낄 수 있는 것만으로 충분한 가치를 얻는 것 같았다.

 

특별촬영의 명소는 남산, 파고다(탑골)공원, 장충단공원 등이 단골로 등장한다.

그때는 이곳들이 각별한 장소였던 것 같다.

서울은 4대문 안만 그나마 도시스럽고 그 밖은 변두리로 인데

성밖 5Km정도까지가 서울의 경계로 완전 빈민촌 상태이다.

한남동, 원효로도 종점. 하긴 마포종점이라는 노래도 나왔으니 그 언저리까지가 서울이었던 셈이다

워커힐 쪽도 가끔씩 나오는데

요즘 우리가 양평이나 가평가는 정도의 시외로 묘사된다.

 

후시녹음으로 성우 더빙이다 보니 오히려 대사가 더 쏙쏙 들어온다.

화면은 변색되어 대부분 조악하지만 오디오는 일반적으로 선명해

라디오처럼 들은(?) 내게는 오히려 더 좋았다.

문제는 성우의 음색이 같다보니 배우가 달라져도, 다른 영화를 보더라도

같은 배우를 같은 영화를 다시 보는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집중해서 보는게 아니라 곁눈질로 보니 더 그런 것 같았다.

런데 실제로 그 출연진 그대로 복사해 와서 비슷한 분위기로 만든 영화도 꽤 된다.

 

배우들은 영화의 설정보다 10살은 더 먹은 분위기이다.

20대 설정인데 배우는 30대 분위기. 여대생 설정인데 거의 여교수 분위기가 나는 식.

왜 그런지 모르지만 거의 전편이 극중 설정나이보다 10살은 더 줘야될 분위기를

배우들에게서 항상 풍긴다.

 

남자배우들은 그 당시의 배우들이 더 멋있고 남성적이다.

신성일, 김진규, 장동휘, 이낙훈, 신영균, 허장강, 최무룡, 이예춘, 이대엽, 남궁원 등

기라성 같은 배우들 뿐 만 아니라 몇 작품하고 사라진 남자배우들도

지금 보다 훨씬 개성있고 남자답다. 지금 보다 더 선도 굵고 잘 생긴 것 같다.

 

여자배우들의 앳되고 깜찍한 시절을 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

내가 적은 나이가 아닌데도 이상하게도 남자배우들에 비해 그 당시의 여배우들은

거의가 중년 이상이거나 할머니 같은 인상을 나는 가지고 있다.

그런 여배우들의 파릇한 시절, 앙징맞은 연기를 보면 뭔가 부조화스러워 이상(?)해진다.

나에게는 푸근한 엄마같은 상의 도금봉이나 엄앵란이

영화속에서 앵앵거리며 소녀연기를 하는데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

 

개인기준으로 감히 말하건데 그 당시 최고의 미모는 고은아다.

김수용 감독의 갯마을(1965)을 보는데 헉 소리가 난다.

최은희, 엄앵란, 문정숙, 조미령, 문희, 도금봉 등 그시절 최고의 여배우들 중

고은아는 시대보정할 필요없는 완벽한 미녀였다. 더없이 예쁘다.

 

또 한명 눈길을 끌었던 배우는 이빈화. 당시의 팜므파탈.

순애보(1957)를 보다가 처음 인지한 배우인데, 이후로는 주로 조연으로 나왔다.

다들 한국적으로 아담하거나 어머니상의 여배우 들 중에서

발군의 개성미를 발휘한다.

당시로서는 큰 키에 섹시하고 대찬 이미지. 약간 퇴페적인 육체파.

그렇고 그런 배우들 속에서 그녀만의 색깔로 여러 조연을 하며

요염한, 성깔(?)있는 연기를 해내 눈길을 끌었다.

 

 

아래 유튜브영상은 당시 영화의 삽입곡 들 중에서 마음에 든 몇 개를 골라 본 것이다.

3개 다 처음 보는 영화이고 곡들도 처음들은 것인데 이상하게 끌리는 게 있다.

 

     *손시향 : 비오는날의 오후3시(1959)

-영화 정보 :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21202

-감독 :  박종호 / 출연 : 이민, 김지미, 최무룡, 최지희

-영상에 나오는 공원이 탑골공원같고 여배우는 김지미이다.

 

 

     *문정숙 : 검은 머리 (1964)

-영화 정보 :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9678

-감독 : 이만희 / 출연 : 문정숙, 장동휘, 이대엽, 강문

-한국형 감성 느와르. 연기는 별로지만 8,90년대 홍콩느와르 뺨칠 정도다

 

 

     *최양숙 : 초연(初戀) (1966)

-영화 정보 :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580

-감독 : 정진우 / 출연 : 남정임, 신성일, 이순재, 김순철 정민, 유계선, 한유정

-나 잡아봐라. 나무들 사이로 뛰어가고 잔디밭에 뒹구는 장면의 원조가 이 영화인듯 싶다.

 

 

유치한 대사가 시가 되고,  짠한 눈물로 떡칠이 되어 항상 신파가 되지만

그것이 오히려 진실을 담은 순수가 되어 다가오는 영화들.

늘 패턴이 같고 구질구질하지만 그게 삶이었고,

궁핍한 시대에도 사람들은 악착같이 살아야만 했다.

당시의 영화는 그 조악한 화면으로 50여년 전,

나로서는 아버지 세대의 풍경들을 하나하나 이번 겨울에 전해주었다.

 

 

첨부된 자료사진은 
피아골(1955) / 자유부인(1956) / 순애보(1957) / 여느 여대생의 고백(1958) /
구름은 흘러도(1959) / 서울의 지붕밑(1961) / 갯마을(1965) /
저 하늘에도 슬픔이(1965) / 워커힐에서 만납시다(1966) / 초연(1966) /

어느 여배우의 고백(1967) / 나무들 비탈에 서다(1968) 등에서

스크린 캡쳐한 것이다.

 

모든 영화는 아래 한국영상자료원 유튜브 채널 한국고전영화 Korean Classic Film에 있다.

https://www.youtube.com/user/KoreanFilm/featured

 

200여 편 올라와 있는데 모두 무료.

열심히 수집하여 복원하고 올려주느라 수고한 관계자 모두에게 감사.

5,60년대를 다 보면 70년대 이후의 영화도 도전해 볼련다.

 

이번에 본 것 중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었던

오발탄(1961), 안개(1967), 휴일(1968), 수학여행(1969)에 대한 포스팅은

따로 다음 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