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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LP이야기

소장LP이야기9-인순이 에레나라 불리운 여인

리매진 2023. 2. 17. 03:55

 

인순이의 정규 7(1987년/지구레코드) 이라는데

나는 번외 앨범, 외전 형식의 특별앨범으로 느껴진다.

앨범 전체가 한 스토리로 이어지며,

마치 노래극, 어떤 영화의 OST를 모아 둔 것 같다.

대중가요로 만든 뮤지컬 같기도 하다.

 

알다시피 인순이는 혼혈이다.

이 LP앨범은 그런 그녀의 인생과 연관하여 직접 쓴

에레나라 불리운 여인이란 자전적 동명(同名) 소설을 음악화 한 것이다.

소설 내용은 한국에서 태어난 한 혼혈 여인이 미국과 한국 사이에서 방황하다가

결국 내 뼈를 묻을 곳은 한국이라는 생각에 고향에서 자살한다라고 한다.

나는 그 소설을 읽지는 못한 것 같다.

 

결국 에레나는 인순이의 자화상인 셈이다

그녀를 위로하는 딱정벌레도 어쩌면 인순이 자신이었던 것도 같다.

인순이도 이 음반을 최고로 애정한다고 한다.

 

<SIDE 1>
1.에레나라 불리운 여인
2.밤은 모든것을 기억한다
3.비닐장판위의 딱정벌레
4.비와 개구리
5.사랑 그 에필로그
<SIDE 2>
1.밤과 황혼
2.혼자 사는 여자
3.Miss 나비를 찾아서
4.겨울찬가
5.장미들의 합창

 

앨범의 작사 작곡은 모두 최성호가 하였다.

(앞 포스팅에 소개한 명혜원의 청량리블루스 작곡가이다)

그동안 최성호의 작업을 본 인순이가 무명에 가깝던 그에게

자신의 소설과 초안을 주며 전곡을 의뢰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 보니 정말 탁월한 선택으로 이런 명반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끝없는 고독과 소외감,

세상끝에서 울려오는 단말마같은 한 여인의 외로움이 전곡을 감싸고 돈다.

80년대 어느 비오는 날, 장마철 한가운데서 이 음반을 듣다가

울컥하는 감정에 눈물을 흘릴 뻔 한 적도 있다.

그 정도로 이 음반은 나에게 감동적이었다.

스토리가 이어지니 순서대로 그냥 듣기만 하면 된다.

저절로 음악에 빠져드는 스스로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곡이 좋은데 타이틀 곡 외에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게 안타깝다.


 

 *A-1. 에레나라 불리운 여인

 (판소설에레나라 불리운 여인 중에서)

 

 

월요일 밤은 깊어가네. 불켜진 2층 작은 방 한구석에

홀로 누운 에레나여. 조금은 무겁고 가슴 답답한 이야기들

! 월요일 밤은 깊어간다네

무지개빛 인생이라고 곧 사라져 버릴

아름답게 다가와서 회상의 그림자만 가슴에 남길

 

~ 에레나 슬픈 에레나여

만약 내가 떠나가면 어디로 가려는가?

철새가 계절을 휘돌듯 그것이 나였는가? 그것이 나였을까?

~ 무지개빛 인생이여 우~~~인생이여

 

푸른 우산들이 훨훨피어 밤따라 네온을 따라 흘러가네

어딜가나 에레나여 불켜진 진열장 어린 빗방울 불빛에 빛나네

아름다웠던 지나간 날들

화요일 새벽에 밝아오네. 루빈튼 에레나...

눈물흘러 흘리는 밤. 화요일 새벽이 밝아오네


 

 *A-3. 비닐장판 위의 딱정벌레

(판소설에레나라 불리운 여인 중에서)

 

 

이봐요 에레나 무얼하나?

종일토록 멍하니 앉아 어떤 공상 그리할까

시집가는 꿈을 꾸나 돈을 버는 꿈을 꾸나

정말 에레나는 바보같아

오늘 하루 일어날 일. 딱정벌레야 너는 아니?

 

비닐장판 위의 딱정벌렌 하나 뿐인 에레나의 친구

외로움도 닮아가네

외로움이 닮아가면 어느 사이 다가와서

슬픈 에레나를 바라보네.

울지말아요. 이쁜 얼굴 이쁜 화장이 지워져요

흰 낮이 가면 마음은 설레이네

등굽은 골목마다 사랑을 찾는 외로운 사람들


 

 *A-4. 비와 개구리

(판소설에레나라 불리운 여인 중에서)

 

 

오늘 낮엔 비가 옵니다. 거리에도 지붕 위에도

얼핏 보면 안개같네요. 빌딩숲에 내리는 안개

어디선가 자꾸만 나를 부르는

귀에 익은 가까운 목소리 개굴 개굴 개구리처럼

에레나 이쁜 노래를 해요.

엽서 한 장 올 것 같아요. 어제 밤에 꿈이 좋았죠

내 꿈은요 잘도 맞아요. 슬픈 일도 행복한 일도


 

 *B-1. 밤과 황혼

 (판소설에레나라 불리운 여인 중에서)

 

 

곁에 누운 황혼이 광장 끝으로 가버리고

네거리 신호동길 저 편 애드벌룬 붉은 태양처럼 아파트 위로 지면

난 커텐을 젖히고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 보며

나즈막히 나즈막히 휘파람 부는데

새벽에 떠난 어둠은 광장 끝에서

날버린 황혼을 만나 황혼을 보내고

그 황혼이 누웠던 방에 들어와 내 휘파람 듣네

 

누구라도 좋아요 찾아올 이 없는 쓸쓸한 방

창가엔 황혼 묻은 거미만 집을 지며

~ ~, 맴을 도는 오후 음~ 맴을 도는 오후~

난 눈물 흘려요 스쳐간 옛사랑 떠올리다가

소리죽여 소리죽여 흐느끼는데.

새벽에 떠난 어둠은 광장끝에서

날 버린 황혼을 만나 황혼을 보내고

그 황혼이 누웠던 방에 들어와 또 등불을 켜네


 

 *B-5. 장미들의 합창

 

앨범은 뒷 면에서 조금 쳐지다가 이 마지막 곡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여기까지 오면 몰아의 지경에 빠져 감정을 주체하기 힘들다.

그런데 나는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이게 해피엔딩인지 새드엔딩인지 모르겠다.

분명 이별의 진혼곡인 것 같은데, 어떻게 들으면 환희의 피날레 같기도 하다.

마음이 너무 아파 그럴지도 모르지만 마치 부활의 노래로도 들린다.

음악에 취해 빠져 나오지 못하고 이 곡은 한 번 더 듣곤 한다.

그리고 어느새  그 하얀 꽃잎, 하얀 꽃차를 따라가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에레나여, 그곳이 어디서든지 자유롭고 행복하길....

 

 

떠나가네 떠나가네 하얀 꽃잎에 하얀 얼굴이

돌아서면 안 보일까 아침 햇살에 아른 거려라

종로에 봄이 와서 남산에 철쭉폈다

피인 꽃 고와서 스므살 봄이 가나

신호등 빌딩 그늘 해돋는 광화문에

떠나가네 떠나가네 하얀 꽃차에 하얀 얼굴이

정든 노래를 불러주나 슬픈 종을 흔들어 줄까

 

저 산 이 강에 저 강 이 산에 하얀 꽃잎에 하얀 꽃차에

빈 하늘에 빈 거리에 에레나 가네 아주 떠나네

저 산 이 강에 저 강 이 산에 세종로에 광화문에

빈 하늘에 빈 거리에 에레나 가네 봄이 떠나나

저 산 이 강에 저 강 이 산에


 

    *음반 뒷 면에 써 있는 인순이의 발문

문을 열어주세요

속박, 구속· 편견, 질시, 증오, 거짓. 위선이라는 이름의

어두 침침한 동굴문을 이제는 그만 열어주세요.

에레나는 내 우울한 유년, 어두웠고 어려웠던 시절의 자화상이기도 하고

나를 온갖 속박으로 부터 의식의 자유로움으로

인도케 하는 황금의 열쇠이기도 합니다.

에레나...

그녀를 통해 많은 사실보다 한가지 진실을 이야기 하고 싶었습니다.

내마음 깊게 깔린 설움과 슬픔의 앙금이 승화되어

여러분 마음에 문을 두드릴 수 있는 노래를 부르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끊임없이 노력하겠읍니다.

도시의 하늘이 회색이던 날.

'인순이' ...


 

  *A-2. 밤은 모든것을 기억한다

 

이 곡을 뒤로 빼 둔 것은 앞의 포스팅에서 소개한

<앞 면 명혜원 청량리블루스 + 뒷 면 제3시대>의 음반에서 이미 나왔기 때문이다.

뒷 면 <제3시대>의 마지막 곡  저 여인과 같다.

그러나 제목만 "밤은 모든것을 기억한다" 로 변경됐다.

결국 제3시대의 남자버전과 인순이의 여자 버전 2가지가 있는 셈이다.

색다르지만 둘 다 괜찮다. 워낙 곡이 좋다 보니.

 

 

언젠가 만나 본 얼굴, 난 문득 떠올려 보네

느리고 느린 피아노는 오늘 밤 왠지 이상하네

~ 누구일까? 저 여인, 어디서 왔나 저 여인

한동안 바라보다가 잊었던 생각이 나네

하얀 손 빛나는 입술, 낯익은 낮은 목소리

~ 느리고 느린 피아노는 이 밤을 우울하게 하네

~ 언젠가 본 저 여인 내가 기억나지 않나

오늘 밤 불빛 속에서 또다시 사랑을 찾네

 

! 누구일까 저 여인 어디서 왔나 저 여인

한동안 바라보다가 잊었던 생각이 나네

잊었던 생각이 나네 잊었던 사랑이 찾네

 


마지막으로 이 음반의 모든 곡을 또 작사 작곡한 최성호를 기억하길.

다음번 포스팅 박영민의 <애화의 푸른구두>에서도

이 분, 최성호가 등장한다.


 

▣ 인순이(1985/한국음반) ▣

하나더 가지고 있는 인순이 앨범. 6집인것 같다.

Side A
1. 눈물의 편지
2. 난 모르겠네
3. 사랑의 도전
4. 세월아 멈춰라
5. 사랑의 느낌
6. 잘있어요
Side B
1. 잊지못하고
2. 내 이별
3. 어느날의 방황과 인생
4. 갈등
5. 울고 싶어요
6. 시장에 가면(건전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