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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생각

외가가 없어졌다

리매진 2021. 12. 17. 04:32

무슨 바람이 불었을까?
갑자기 외가를 들러보고 싶었다.
비가 간간히 내리고 바람이 몹시 부는 날,
외가로 진로를 바꾸어 들렀는데 외가는 흔적도 없어 찾을 길이 없었다.

병원진료 문제로 올라오신 아버지를 코로나 시국이라 대중교통으로 가시라기에 뭐해
본가에 모셔다 드리고 다음날 올라왔다.
가는 김에 광주의 친구를 만나 저녁을 하기로 했는데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어디서 쉬다갈까 하다가 문득 외가집을 한 번 가보고 싶어졌다.
광주 가는 길에 조금 돌아가면 외가집이 나온다.

마지막으로 외가집을 간게 아마 90년대 초반인듯 싶다.
이후 언젠가 마지막까지 외가를 지키던 큰외숙도 고향을 떠났다.
가봐야 아무도 없는 줄 알지만 그 동네라도 한 번 보고 싶어 갔는데
30여 년 동안 너무 변해 위치를 찾을 수가 없었다.
느낌에 외가가 있는 동네는 모두 철거되어 농경지로 변한 것 같다.
아래 사진의 논밭이 그동네로 추정.

 

외가는 면소재지에서도 한참을 들어가야 하는 아주 시골마을이었다.
전형적인 옛날의 농촌마을.
희미한 기억을 되살려 그 풍경을 그려보면
조금 큰길(지방도)가에 정류장이 있었고, 거기에서도 한참을 들어가야 했다.
그곳이 그나마 다른 세상으로 오가는 출구였는데 지금도 가게 하나만 있다.
그곳을 중심으로 동네가 형성되어 있고,
다시 논밭길을 가다가 보면 외가 동네가 있었다.
외가동네에 들어서는 입구에는 대나무 같은 것들이 거의 터널을 이루다시피한
작은 골목길(고샅길이라고 했다)이 있었고, 그 길의 중간쯤에 외가가 있었다.
길 맞은 편에 외숙 한 분의 집도 있었던 것 같다.

어느 정도 규모로 농사를 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외가집은 꽤 컸다.
지붕있는 큰 대문에 오른쪽으로 창고, 사랑방이 있었고,
마당의 왼쪽에 장독대를 비롯한 꽤 넓은 공터,
오른쪽에는 외양간과 헛간이 있었다.
본채는 왼쪽부터 부엌방, 재래식 부엌, 큰 방, 광, 작은 방이 있었고,
폭이 넓은 마루(토방)가 앞에 있었는데 꽤 높아
오르내릴때 쓰는 주춧돌(?)로 나는 오르내렸던 것 같다.

어린시절 외가에 가면 늘 북적북적거렸다.
주로 대소사때 가서 그렇게 느꼈겠지만(다 친척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지 않은 때도 항상 사람이 많았던 것 같다.

내가 알기로 어머니는 5남 5녀 중 차녀이다.
어른들이나 아이들이나 집안 가득하여 심심할 겨를 이 없었고,
마치 학교에 온 것 같은 분위기에 다들 나를 예뻐해 준 것 같다.
아래 사진이 전부 나온 것은 아니지만 그 당시의 유일한 사진이다.
(오른쪽 맨 아래가 나이고 그 위가 어머니)
누가 누구인지 다 알지는 못하지만 외할머니, 외숙, 이모, 외사촌 등이 보인다.

 

국민학교 시절까지 그랬던 것 같고,
그 이후로는 다들 도시로 떠나 결국에는 큰 외숙만 그곳을 지키셨다.
생각해 보니 그때 그분들이 다 그곳에서 살았는지 모르겠지만,
대략 70년대부터 외가동네에 있던 분들은 하나하나 이곳을 떠난듯 싶다.
나중에 보니 다들 서울 광주 등에 살고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것은 어머니와 함께 걸어서 외가에 갔을 때이다.
국민학교 입학 전에 나는 어머니와 큰집에서 살고 있었는데
무슨 일이 있어서 인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걸어서 외가에 간 일이 있었다.
큰집은 외가에서 약 5~6Km 정도(오늘 지도로 재보았다).
마땅한 교통편이 없어서 논길따라 몇시간을 끙끙대며 걸어갔던 것 갔다.
처음에는 뽕밭인가가 잠깐 있었고,
이후에는 쭈욱 논들만 끝없이 펼쳐지다 마지막에 밭이 있었던 것 같다. 
오늘 위성지도로 그 코스를 유추해 보니 지금도 그 길가는 논밭 뿐이다. 
입학 전이니까 아마도 5~7살 사이의 일이지 않나 싶은데
민가 하나 없는 논두렁따라 개울도 건너며 하염없이 걸어갔던 것 같다.
그렇게 어머니 손잡고(아마 가끔씩 업혀도 갔으리라) 외가동네쯤 가니,
작은 언덕에서 연날리며 놀고 있던 외사촌들이 우르르 반겨주었던 기억이
이상하게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아래 사진의 나무가 있는 곳이 그 언덕이지 싶다.

 

이 코스를 언젠가 어머니와 그때처럼 한번 걸어봐야 했는데
결국 하지를 못했다.
어머니는 인공관절 수술할 정도로 다리가 안좋으시니 이제는 글렀다.
무슨 의미가 있으런만 가끔씩 허한 날이면
이상하게 그 길을 걷고 싶어하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나 혼자라도 한번 걸어보고 싶은데 과연 그런 날이 올런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큰집도 큰아버지 돌아가셔서 팔리고(그곳에서 내가 태어났다)
외가도 흔적없이 사라졌으니,
내 유년의 장소는 모두 연고가 없는 곳이 되어버린 셈이다.

 

먼길 걸어오던 나를 맞아주던 외사촌들의 손짓들,
시끌벅적하던 외가집의 수많은 사람들,
토방에 앉아 곰방대 물고 담배를 피우시던 외할아버지,
매캐한 부엌의 아궁이에 불을 때던 외할머니,
장독대를 열어 재끼며 분주하던 외숙모들,
부엌방에 가득 모여있던 이모들과 누나들,
작은 고샅길에 떼로 몰려다니던 아이들.
외양간 소의 눈망울과 대나무 서로 부비며 나는 소리,
지금도 눈감으면 선명한데
이제 외가는 흔적도 찾을 길이 없다.

 

논밭으로 변해버린 그곳에 때 이른 겨울비만 간간히 내리고,
바람마저 떠밀듯이 내게 불어왔다.
한세대가 완전히 지나 풍경도, 사람도 사라진 어느 겨울날의 풍경.
언덕길에 차를 세우고 혹시나 이 언덕이 그언덕이었나? 이곳이 그곳이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언덕아래를 내려다 보다

담배 몇개피 피고 돌아섰다.

 

                  *임희숙 - 황혼의 엘레지

-과거 이야기이니 옛날 노래(60년대에 만들어졌고 이것은 1973년작)

-그쯤에 젊었던 외숙이나 이모, 삼촌, 누나들 중 어느 분인가가 좋아했을 노래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