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UM 블로그 폐쇄로 TISTORY에 이주당함 자세히보기

*사람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

리매진 2018. 5. 25. 03:32




평생 처음으로 봉안당에 다녀왔다.
요즘은 납골당을 봉안당이라고 하나보다.
무심히 넘길려 하는데 막판에 울음이 쏟아져 옆에 관리직원들이 있는데도 한참을 훌쩍거렸다.


요즘 우리 나이때가 일반적으로 그렇듯(아니 내가 유독 더 그런지도)
특별한 일이 있지 않으면 서로들 연락을 안한다.
일년 정도는 우습게 그렇게 소식없이 지나가는게 다반사다.
친하지 않거나 특별히 불편해서 그런 것도 아니지만
부모님을 비롯하여 모든 지인들과의 관계가 그렇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변명하지만 실상 특별하지도 않은 일에 연락하는게 어색하다.

(그래서 카톡이나 트위터 같은 것도 안 하고, 부질없는 듯한 신변잡기에 좀 무심하다)
그렇게 50대의 일상은 흘러만 간다.


며칠전 업계 후배 한 명에게서 전화가 왔다.
뭐 좀 물어보다가 막판에 건강 걱정을 해주다가 손감독님도 돌아가시고... 한다.
뭐냐? 무슨 말이냐?
모르셨어요? 아니, 감독님이 그걸 몰라요?


그렇다. 친구가 죽었다. 그것도 3월 초에.
나는 그걸 아직까지 모르고 있었다.
체크해 보니 나한테 연락이 닿지않을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알고 있는 친구의 조감독그룹은

 당연히 자기들 보다 더 먼저 연락이 갔을거라 생각하고 자기들끼리 조문하고
당연히 나는 왔다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친구와는 좀 특별한 사이다.
지연, 학연, 혈연, 직장 등 어떤 네트워크도 겹치지 않은 둘 만이 아는 관계다.
나는 그 친구의 위 조감독그룹 외에는 그 어떤 사람들도 연결되어 있지 않고
그 친구 역시 나의 그 어떤 사람들과도 네트워크가 되어있지 않다.
그러다 보니 갑작스러운 불상사에, 이런 연락에 구멍이 생겨버린 것이다.
아마 내가 갑작스럽게 불미스러운 일을 당했을 때도 그쪽과는 그럴 수 있겠다 생각이 든다.


친구가 죽었다. 그것도 두달 전에.
나는 그것도 모르고 이 봄날에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래도 친한 놈 중의 한명이었는데.
그냥 보내도 되는 사이는 아니었는데.
아마도 서울 시내의 길을 그 친구와 제일 많이 걸었지 않았나 싶다.

뒤적여 보니 작년 12월 6일 문자메시지를 나에게 남긴게 마지막이었다.

우습게도 마지막으로 나에게 보낸 문자내용은 감사, 그것도 2번이나.


그런 친구의 마지막을 나는 본의 아니게 보지못했다.
그리고 이제야 뒤늦게 화장된 봉분으로 접했다.
5월 참으로 푸르른 날, 아마 올 들어 가장 날씨가 좋았던 것 같은 날(5월 23일)
그 하늘아래에서 휘청거리다가 갑자기 복받쳐 오는 아쉬움에
눈물 한바가지를 갑자기 쏟았다.


자리를 쉬 뜨지 못하고 망연히 바라보는 그곳 전망이 그리 좋던데
너는 지금 어디에 있냐? 그곳에서도 보이냐? 기범아!!!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 -나희덕
 

우리집에 놀러 와. 목련 그늘이 좋아.
꽃 지기 전에 놀러 와.
봄날 나지막한 목소리로 전화하던 그에게
나는 끝내 놀러 가지 못했다.


해 저문 겨울날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
나 왔어.
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는 못 들은 척 나오지 않고
이봐. 어서 나와.
목련이 피려면 아직 멀었잖아.


짐짓 큰소리까지 치면서 문을 두드리면
조등(弔燈)하나


꽃이 질 듯 꽃이 질 듯 흔들리고,
그 불빛 아래서
너무 늦게 놀러 온 이들끼리 술잔을 기울이겠지.
밤새 목련 지는 소리 듣고 있겠지.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
그가 너무 일찍 피워올린 목련 그늘 아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