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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이렇게 정중한 메모를 쓴 사람은 어떤 분일까?

리매진 2017. 11. 23. 01:49


새로 얻은 개인작업실에 주차하기가 여의치 않았다.
대부분 차를 가지고 다니지 않아 큰 불편은 없었는데
그래도 차량운행후 애매한 시간에는 차량을 근처에 두어야 했다.


보니 가까운 곳, 4층 건물의 1층에 늘 빈 자리가 있어
여기는 주차상황이 좀 널럴한가 보다 하고 가끔씩 실례를 했다.
차량에 전화번호를 남겨놓았는데도 연락 온 적이 한번도 없어
아, 이 건물은 주차에 여유가 있나 보다 하고, 빈자리가 있으면 당연(?)하듯 신세를 졌다.
(최소한 2자리 수 이상은 신세를 진듯 싶다)


그러던 어느날, 차를 빼려하는데 와이퍼에 아래의 메모가 꽂혀있었다.
그동안 한 번의 경고메시지도 없어서 그러러니 했는데
실상은 그 건물 어느 분인가에게는 불편을 주고 있었나 보다.



그런데 메모가 참 스스로를 부끄럽게 한다.
또박또박 손글씨로 정성스럽게, 그리고 정중하게 남겨진 메시지.
그동안 이 분은 불편을 감내하다가 이제야 그 불편을 호소한듯 싶다.
그래도 화내지 않고 예의바르게 의사를 전달한 분.
메모를 보자마자 죄송함에 몸둘바를 몰라해야 했다.
자신의 주차구획인데도 그동안 관용을 베풀어 준,
그리고 금지의 행위를 이렇게 정중하게 남겨준 그 분의 인격이 감탄스럽다.
나라면 과연 이 정도의 인격을 보여줄 수 있을까????


별 거 아닌 일이지만 기분 좋은 일.
얼굴도 모르지만 이런 사람이 근처에 있다는게 기분이 좋았다.
일단 목소리 크고, 조금의 손해도 안볼려고 하는 세상,
일단 우겨보고, 개똥같은 논리로 악다구니치는 것만 같은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다니.
-나는 아직도 세상사람의 아름다움을 다 보지 못한 것 같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주차불가 메시지가 꽂혀있으면 바로 찢어버리거나 버리는데
이 메시지는 차마 버릴 수가 없어 책상서랍에 보관해두었다.
그후로는 그 자리가 비어있어도, 한번도 실례하지 않았다.
차마 주차할 수가 없었다. 이런 분에게 불편을 주는 것은 큰 실례라 느껴서였다.


얼마 전에 후배와 주차관련이야기를 하다가
이게 생각나 다시 꺼내보니 역시나 감동스럽다.
낯 붉힐 수 있는 상황에 이런 정중함을 보여 준 그 분에게 다시 한 번 고마움을 전한다.
사람에 대한 믿음이나 애정은 어쩌면 이런 조그마한데서 생겨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배려와 신뢰로 다가갈 수 있었으면...
 

그나저나 이 분 얼굴이나 한 번 보고싶은데 누군지 알 수가 없네.
만나서 커피나 한 잔 하고픈 분. 연배가 비슷하면 친구하고픈 분.
그 건물 앞을 지나가면 얼굴도 모르는 이 분이 생각나고,
마치 그 건물에는 천사들이 사는듯 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아둥바둥사는 세상에, 별거 아니지만 기분좋은 사람 하나 있어
그래도 세상은, 아직은 아름다운 것도 같다.
갈수록 멘탈이 약해지고, 사람에 대한 실망이 늘어가는데,

 별 거 아닌 세상, 이런 좋은 사람 만나 그냥 소소하게 살고프다.




*아름다운 사람(작사 작곡; 김민기 / 노래; 현경과 영애)
 
어두운 비 내려오면 처마 밑에 한 아이 울고 서 있네
그 맑은 두 눈에 빗물 고이면
음~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세찬 바람 불어오면 벌판에 한 아이 달려 가네
그 더운 가슴에 바람 안으면
음~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새 하얀 눈 내려오면 산 위에 한 아이 우뚝 서 있네
그 고운 마음에 노래 울리면
음~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그이는 아름다운 사람이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