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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예비여성법조인 우은정-OSEN(2011년 1월 24일)

리매진 2011. 1. 25. 04:04


-피플- 사법시험 합격 후 세계일주 우은정 씨

하루 16시간 독하게 공부…세계지도 보며 격려
연수원 입소 2차례 미뤘지만 내 선택 후회 없어
편견 깬 여행…앞으로 국제기구서 일하고 싶다

[이브닝신문/OSEN=장인섭 기자]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연수원 입소를 두 차례나 연기해 가며 319일간 아프리카, 중동, 남미 등 세계 24개국을 여행한 예비 여성 법조인 우은정(26)씨. 그는 이화여자대학교 법학과 3학년이던 지난 2008년 겨울,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그러나 졸업 및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한 차례(2009년), 여행을 실행에 옮기면서 또 한 차례(2010년) 연수원 입소를 연기했다.

“법조인의 길에 들어서기 전, 나만의 세상에서 벗어나 보다 넓은 세상을 경험해 보고 싶었다.”

좀 더 순탄한 길을 갈 수도 있었을 터인데 법조인이 되기 위해 지구촌을 반 바퀴 이상 돌아야 하는 ‘순례자의 길’을 택한 이유다. 오는 3월 연수원 입소를 준비하고 있는 그를 일산 사법연수원 부근 한 카페에서 만났다.
 
-세계일주 여행은 내게 주는 선물
우씨의 어렸을 적 꿈은 과학자였다. 법대를 가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일이다. 법대를 나와 수원지방법원 노동위원회에 근무하시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그는 “어린 시절의 꿈은 수시로 바뀌잖아요. 어려서부터 집에 법과 관련된 서적들이 많아 자연스럽게 법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법대진학 동기를 밝혔다.

사법시험 준비기간은 그에게도 어려운 도전의 시기였다. 학교를 휴학하고 1년6개월간은 신림동 고시촌에서 생활했다. 또 6개월은 학교 기숙사에서 공부했다. 하루 평균 15~16시간씩 독하게 공부했다. 그는 “친구들은 인턴십이나 취업을 통해 경력을 쌓고 있는데 합격의 보장이 없는 고시원 생활은 너무 힘들었다”고 회상하면서 “사법시험에 통과하면 스스로에게 세계일주를 선물한다”라며 동기부여를 했고 세계지도를 고시원 벽에 붙여두고 자신은 격려했다.
 
-아르바이트로 종잣돈 마련
사법시험에 합격 후 그는 두 차례 연수원 입소를 연기했다. 올해부터는 규정이 바뀌어 연수원 입소 연기가 불가능해 졌지만 2008년에는 학업이나 정당한 사유가 있을 경우 두 차례까지 입소연기가 가능했다. 1년 가까운 여행에 들어간 경비는 줄잡아 3000만원.

워낙 여행을 좋아했던 우씨는 학교다닐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통해 매달 10만원씩을 펀드에 들어 종잣돈을 마련했다. 이후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에는 졸업 준비와 함께 고시원 보조강사, 전화상담, 바텐더 등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통해 여행경비를 마련했다.

아르바이트도 세계여행을 위한 준비기간으로 이용했다. 이태원에서 바텐더로 일한 것도 외국인들과의 만남을 위해서였다.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다녀와 영어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이번 여행에 대한 해당국가의 정보가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미군이나 영어강사, 각국의 여행자들, 출장자, 외국인 근로자들이 모이는 곳이라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며 그들과의 이야기를 통해 “현지에 대한 살아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아프리카 등 24개국 여행
드디어 2010년 1월26일 남아프리카공화국을 기점으로 319일의 대장정에 나섰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나미비아 잠비아 탄자니아 케냐 등 아프리카 국가들과 중동, 남미 등 총 24개국에 달했다.

이 가운데는 내전과 빈곤 등으로 여행자들이 방문하기에, 특히 여자 혼자 여행하기에는 위험한 나라들도 있어 가족들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부모님과 친척들은 “연수원 기수가 중요하니까 입소부터 해라” “너무 위험한 곳만 다니는 것 아니냐”며 만류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이번 여행국들은 여행자들이 별로 없고 정보가 부족한 국가들로 이들 국가에 대한 정보는 서양시각으로 구축된 제한적인 것들 뿐인 나라들”이라며 “이들 국가의 정치, 사회, 문화 등을 직접 체험해 보고 싶었다”며 주변의 만류를 뿌리쳤다.
 
-빵 한 조각의 기쁨
몽골을 여행할 때 현지인들처럼 강물을 길어다 라면을 끓여먹고 장염에 걸려 죽을 고생을 했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현지에서는 항상 건강에 신경을 많이 썼다.

여행 중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물이 부족해 며칠씩 씻지 못했던 것이 가장 힘들었다. 땀과 먼지로 범벅이 되고 더러운 손으로 땅에 떨어진 음식을 주워 먹기도 했다. 케냐에서 에피오피아 국경까지는 트럭을 이용했다. 우기에 생긴 웅덩이에 트럭이 빠지면서 3박4일에 걸친 어려운 여정이 됐다. 씻지도 못하고 먹을 것도 없는 상황에서 주린 배를 움켜쥐고 있는데 트럭 운전기사가 얻어다 준 빵 한 조각을 먹으면서 한없는 행복감을 느끼기도 했다. 

-세상에 대한 편견을 깨는 계기
“여행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확실히 넓어진 것 같다.”

거창하고 원대한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여행을 통해 귀중한 체험을 얻었다. 아프리카를 여행하면서 한번도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 없는 인종차별의 벽이 아직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또한 그들의 어려움을 함께하면서 심각한 지구촌 인권문제에 다가서는 계기가 됐다.

또 중동의 시리아나 레바논 같은 국가들은 북한과 무기거래를 하고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아 위험한 나라라는 이미지로 방문을 망설였지만 막상 현지인들의 신사적이고 친절한 모습을 보면서 호전적일 것으로 생각했던 이슬람 문화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됐다.
 
-살아있는 값진 경험, 후회는 없다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동안 내내 스스로에게 힘이 됐던 것이 세계일주라는 보상이었다. 힘들고 지칠 때마다 아프리카 초원에 서있는 자신의 모습과 현지인들과 함께 생활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힘든 나날을 이겨냈다.

그러나 여행은 그렇게 낭만적이지만은 않았다. 관광객의 돈을 노린 현지인들의 사기행각에 마음이 상하기도 하고 나중에는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이런 경험들 하나하나가 그에겐 살아있는 값진 추억거리가 됐다.   

그는 “법조인들 사이의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지만 연수원 입소에 앞서 여행을 선택한 것에 대해 후회는 없다”며 “여행 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다시 배낭을 꾸리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인권 관련 업무 희망
그는 오는 3월, 그동안 미뤄왔던 사법연수원에 입소해 법조인으로 거듭나기 위한 담금질에 들어간다.

그는 “세상이 넓어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것들이 많지만 여행을 통해 체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다양한 시각을 갖춘 법조인이 되고 싶다”며 “앞으로 국제헌법재판소나 북한관련 국제인권 분야의 일에 종사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한편 319일간 지구촌 구석 구석을 찾아다닌 그의 살아있는 경험담은 조만간 책으로 출판될 예정이다. 

ischang@ieve.kr /osenlif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