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정태춘 박은옥, 이 둘의 노래를 들으며
마음의 위안을 삼지 않았던 사람이 있었을까?
이들의 노래를 들으며 우리는 시인이 되었고,
북한강을 거니는 나그네가 되었고,
산사를 헤매는 순례자가 되기도 했다.
시적인 가사, 읊조리는 창법, 토속적이고 한국적인 정서,
방황과 유랑의 운율로 속삭이던 해탈의 경지.
정태춘과 박은옥은 나지막하게 노래로 위로를 주며,
힘든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의 마음을 정화시켜주었다.
정태춘은 박은옥과 공동앨범을 내기 전에 이미 독집을 3장 냈었고,
박은옥도 듀엣 이전에 독집을 2장 냈었다.
그러나 이 솔로 앨범들은 성공하지 못했고,
듀엣으로 낸 공동앨범부터 히트를 치기 시작했다.
가지고 있는 것은 이 둘의 공동앨범 1집, 2집 3집과
박은옥의 데뷔앨범 LP들이다.
정태춘 박은옥의 유명곡들은 자주 들어보았을 것이므로
여기서는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곡들로 선곡했다.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음반에도 좋은 곡이 많으며,
이후에 나온 정태춘 박은옥의 곡도 한결같이 좋다.
▣ 정태춘 박은옥 듀엣 1집(1984/지구레코드) ▣
Side A 1. 떠나가는배(이어도) 2. 손님 3. 시인의 마을 4. 님은 어디가고 5. 사랑하고 싶소 6. 탁발승의 새벽노래 7. 시장에 가면 |
Side B 1. 우리는 2. 사랑하는 이에게 3. 하늘 위에 눈으로 4. 촛불 5. 나는 누구인고 6. 나그네 7. 얘기 |
둘이 결혼 후 함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후로
처음으로 낸 공동앨범이다.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정태춘+박은옥 듀엣의 역사가
공식적으로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신곡과 기존의 정태춘 독집 및 박은옥 독집에서 발표된 곡이
거의 반반으로 수록되어 있는데, 당연히 모든 곡은 둘이 만든 것이었다.
신곡은 물론, 묻혀있던 기존곡까지 다 각광받아
어느 것이 신곡인지 구곡인지,
이 앨범의 타이틀 곡이 어떤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거의 모든 곡이 사랑받았다.
위의 1집 수록곡 리스트를 보면 실감이 날 것이다.
듀엣앨범이라지만 <사랑하는 이에게>만 둘이 불렀고,
박은옥은 <우리는> <하늘 위에 눈으로> 만 솔로로 부르고,
다른 곡은 모두 정태춘이 솔로로 불렀다
*B3. 하늘 위에 눈으로-노래 박은옥 / 작사 정태춘 / 작곡 박은옥
하늘 위에 눈으로 그려 논 당신 얼굴
구름처럼 흩어져 오래 볼 수가 없네
산봉오리가 구름에 갇히여 있듯이
내 마음 외로움에 갇히여 버렸네
너무나 보고 싶어 두 눈을 감아도
다시는 못 만날 애달픈 내 사랑
하늘 위에 눈으로 그려논 당신 얼굴
구름처럼 흩어져 오래 볼 수가 없네
▣ 정태춘 박은옥 듀엣 2집(1985/지구레코드) ▣
Side A 1. 북한강에서 2. 사망부가 3. 애고,도솔천아 4. 서해에서 5. 여드레 팔십리 |
Side B 1. 바람 2. 봉숭아 3. 서울의 달 4. 장서방네 노을 5. 들가운데서 |
일년전 첫 공동앨범의 성공에 힘입어
둘의 음악적 이미지를 확고히 심어준 앨범이다.
우리의 정서를 마치 시처럼 읊는 노래들은 또 다시 각광을 받아,
그 누구도 넘보지 못할 그들만의 정체성을 갖게 했다.
첫 앨범처럼 모든 곡을 둘이 만들었다.
공교롭게도 첫 앨범처럼 <봉숭아>만 둘이 불렀고,
박은옥은 <바람> 만 솔로로, 다른 곡은 모두 정태춘이 불렀다
*B2.봉숭아-노래 정태춘+박은옥 / 작사 박은옥 / 작곡 정태춘
초저녁 별빛은 초롱해도 이 밤이 다하면 질터인데
그리운 내 님은 어딜 가고 저 별이 지기를 기다리나
손톱 끝에 봉숭아 빨개도 몇 밤만 지나면 질터인데
손가락마다 무명실 매어 주던
곱디 고운 내 님은 어딜 갔나
별 사이로 밝은 달 구름거쳐 나타나듯
고운 내 님 웃는 얼굴 어둠 뚫고 나타나소
초롱한 저 별빛이 지기 전에 구름속 달님도 나오시고
손톱 끝에 봉숭아 지기 전에 그리운 내 님도 돌아 오소
▣ 정태춘 박은옥 듀엣 3집(1988/한국음반) ▣
Side A 1. 실향가 2. 이 사람은 3. 고향집 가세 4. 아가야,가자 5. 우리의 소원은 통일 |
Side B 1. 우리가 추억이라 말하는 2. 한밤중의 한 시간 3. 사랑하는 이에게2 4. 그의 노래는 5. 얘기2 |
“戊辰(무진) 새 노래”란 앨범명으로 발표한 공동앨범 3집이다.
우리의 정서를 노래한 것은 변함이 없는데
더 시대의 삶 속에 깊숙이 들어가
그들의 애환과 번민을 노래로 들려줬다.
덕분에 곡의 심의 과정에서 애를 많이 먹었다고 한다.
가락에 더 전통적인 운율이 들어가기 시작했고,
북, 꽹과리 등 우리 악기들을 이용하는 등
양악과 국악의 접맥을 시도한 음반이다.
박은옥의 곡 <우리가 추억이라 말하는> 이외에는
모두 정태춘이 작사 작곡하였다
*B4. 그의 노래는-노래 작사 작곡 정태춘
후미진 아파트 하수구에서 왕모기나 잡으며
하루 종일을 보내는 애들
서울 변두리 학교 앞에는 앳된 병아리를 팔고
비닐봉지에 사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애들
자연이란 이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거친 벌판과 깊은 산과 긴 강물이란
여름이면 그늘 밑으로 겨울이면 양지쪽으로
숨이 차게 옮겨 다니는 저 노인들
모진 세파에 이리 깎이고 저리 구부러진 채
이제 마지막 일만 초조히 기다리는 이들
세월이란 이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덧없는 과거와 희망찬 내일이란
우우우우우 우우우우우
미친 운명은 광란처럼 나의 숨통을 조이고
나는 허덕이다 꿈을 깨고
크고 작은 역경 속에서 저 자신을 학대하며
뚫고 나서면 또 거기 시련이
휴식이란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마음의 평화와 육신의 안식이란
그의 노래는 별빛도 없는 짙은 어둠 속에서 나와
화사한 그대 향락의 옷자락 끝에 묻어
발길마다 채이며 떨며 매달려
이제 여기까지 따라왔는데
그의 노래는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슬픈 환락과 전도된 가치 속에서
그의 노래는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슬픈 환락과 전도된 가치 속에서
▣ 박은옥 데뷔 솔로 1집(1978/서라벌레코드) ▣
Side A 1. 회상 2. 바람 3. 3월 단비 4. 아하! 날개여 5. 서해에서 6. 나는 누구인고 |
Side B 1. 윙윙윙 2. 시인의 마을 3. 에헤라 친구여 4. 봄 5. 비오는 나루 6. 너와 나 (군가) |
"박은옥 새노래 모음"이란 제목하에 발행된 솔로 1집으로 데뷔 음반이다
정태춘과 결혼하기 전이나 전곡을 정태춘이 작사 작곡하였다.
아마도 이때쯤 눈이 맞아 1980년에 결혼했지 않나 싶다.
참, 어울리는 두 사람의 결합이다.
그동안 남녀 혼성듀오가 수없이 있었지만 오래가지 못했는데
이 둘만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노래도 심성도 비슷한 사람의 이상적인 결합이라서 그런 듯 하다.
이 앨범에 수록된 곡은 대부분 공동앨범 1, 2집에서 다시 살아났다.
그러나 재발표에도 수록되지 못한 곡들이 있었으니
구입 당시 기준으로 <회상> <윙윙윙> <봄> 등이었다.
이 곡들도 좋아 찾다 보니 나온게 이 앨범이었다.
그전에는 이 앨범의 존재를 몰랐고, 이미 절판된 거라 간신히 중고를 구했다.
전국DJ협회라고 낙서가 있는 걸 보니
어느 음악다방에서 사용하다가 흘러나온 것 같다.
청테이프로 보수를 하고 헤질대로 헤진 것을 보니
이 앨범도 알게 모르게 언더에서는 인기가 많았나 보다.
어쩌면 이 앨범은 묻혀버린, 매니아나 알만한 앨범이었다.
그러나 이 앨범에 수록된 곡들이
훗날 히트곡으로 대부분 살아날지 누가 알았을까?
*B4. 봄-노래 박은옥 / 작사작곡 정태춘
바람 불던 동구밖에 겨울빛은 사라지고
아지랑이 피어나는데
봄이 오면 온다 하던 그 사람은 오고 있나
어드메쯤 오고 있을까
지난 겨울 들판에서 뛰어 즐겨 하던 나를
이제 다시 그리워 할까
알지 못할 외로움에 소리 없이 떠나간 이
행여 내 생각 해 줄까
긴 겨울 하늘엔 매만 날고
외줄기 들길에는 바람이 불어
아이들이 연 날리던 동구밖에 내가 섰네
봄이 오는 소리 들으며
어드메쯤 오고 있을 그 사람을 기다리네
마을 길엔 해가 저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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