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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사담(私談)

노래2(죽창가) ; 더불어 꽃, 새, 들불, 반란이 되자 하네

리매진 2019. 10. 15. 03:31


그 남자는 어느날 텔레비전을 보았나 보다.
SBS 드라마 "녹두꽃". 그리고 본인의 페이스북에 짧은 글을 올렸다.
이후 그는 별거 아닌 그 드라마 소감의 일상적인 글에 무차별적인 폭격을 받았다.
어쩌면 조국대전의 개막은 이때 벌써 시작되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텔레비전을 보지 않아, 이런 드라마가 방영되는 지도 몰랐고, 무슨 내용인지도 몰랐다.
여러 말이 나와 찾아보니, 녹두꽃 제목처럼 전봉준과 동학혁명을 모티브로 한 드라마이고,
배경음악으로 그가 언급한 노래가 깔리고 있었다.

보면서 드는 생각이 아, 이런 사람들도 평소 집에서는 드라마를 보는구나와

어쭈 이 사람이 이 곡을 다 아네였다(대중적으로 흔한 곡은 아니다)



문제를 삼고자하는 사람들이 물고 늘어진 것은 이 노래 가사 속의 "죽창"과
반일감정을 표출하는 드라마 내용을 그가 언급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별 같잖은 소리로 씹어댔다.


*SBS 드라마 녹두꽃 24회. 문제의 노래가 나오는 장면
-"우린 갑오년에 이미 보았어” 최무성이 본 ‘인즉천 세상'



*동영상 재생창이 안 뜨면 아래 링크를 클릭(네이버TV는 본문내 삽입이 안되나 보다)

https://tv.naver.com4/v/915024


동학혁명이 반봉건 반외세의 기치로, 구체적으로 외세는 일본이니 당연히 반일일거고
농민군은 무기가 없어 죽창으로라도 싸운 걸 표현한건데 이게 왜 문제가 되는걸까?
그것이 적절히 표현된 노래를 찾다보니 제작진도 그 노래를 썼을 것이다.
그런데 그 노래를 그가 언급하자 죽창이 섬뜩하다니, 죽창을 들고 싸우자는 거냐 라는 등의
맥락을 파악하지 못한 논리로 갑자기 그를 공격하기도 하였다.
참으로 몰역사성을 가진 병신같은 멘트들의 향연인데 또 이게 일각에서는 먹혀
한참 그를 도마위에 올려놓고 칼질을 해댔다.



아마 나도 만약에 SNS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면
저 드라마를 보고 난 뒤 그와 똑같은 내용을 올렸을듯 싶다.
그 노래는 우리의 젊은 시절, 어느 한켠에서 아파하며 부른 노래였기에.
그런 노래가 공중파 드라마에서 나오는게 신기하기도 하고, 감회도 남다를 것이니.
그러고 보니 그는 나와 비슷한 시대에 비슷한 감정으로 세상을 산 것 같기도 하다.
더불어 꽃이 되고, 새가 되고, 들불이 되고, 반란이 되고 싶었던 80년대의 청춘.
피어 눈물로 고여 발등에서 갈라진 녹두꽃이 생생하게 다가왔던 시절.

어두운 밤 하늘 아래에서 이 노래를 더없이 처연하게 불러재끼던

여자애 한명이 갑자기 떠오른다.(정희였나? 영선이었던가????)



그가 링크 걸어논 곡은 안치환 버전인데, 우리는 그 이전에 이 노래를 배웠다.
우리는 이 노래의 제목을 그냥 "노래"라고 했었다.

(아마 가사 원작인 김남주의 시제목이 "노래"여서 그랬듯는 싶다)

그의 말처럼 한참 잊고 있는데, 언제부터인가 제목이 "죽창가"로 바뀐 것 같다.
노찾사 버전도 있긴 하는데, 아래의 민중문화운동연합 버전이 가장 오리지널에 가깝다.

황토빛 카세트테이프 커버도 기억이 난다.-그런데 이거 언제 없어졌지.


*노래2(죽창가) : 김남주 시, 김경주 곡 / 노래-민중문화운동연합




이 두메는 날라와 더불어 꽃이 되자 하네, 꽃이.
피어 눈물로 고여 발등에서 갈라진 녹두꽃이 되자 하네
이 산골은 날라와 더불어 새가 되자 하네, 새가.
아랫녘 웃녘에서 울어예는 파랑새가 되자 하네


이 들판은 날라와 더불어 불이 되자 하네, 불이.
타는 들녘 어둠을 사르는 들불이 되자 하네
되자 하네. 되고자 하네. 다시 한번 이 고을은 반란이 되자 하네
청송녹죽 가슴에 꽂히는 죽창이 되자 하네




두어 달 온 나라는 장관하나에 들끓었고,
오늘 그는 법무부 장관을 사퇴했다.
그리고 자연인으로 돌아가 자택의 엘리베이터 앞에 혼자 섰다.
그 뒷 모습을 보니 그가 언급했던 이 노래가 문득 떠올라
이 밤 다시 한 번 들어본다.